결혼 전 회사가 꽤 먼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출퇴근 시간을 아껴 자기 개발을 하겠다는 멋진 계획을 세우고 회사 근처의 고시원에 입주하였다. 컴퓨터, 침대만 있고 내 몸 하나 제대로 움직이기 힘든 그곳은 공부에만 열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다만, 내 컴퓨터에는 전설적인 게임인 와우가 깔려있었고. 난 가족의 방해 없이 렙업을 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을 찾게 되었다. 자기 개발을 위하여 고시원에 들어갔지만, 내 케릭의 랩업만 열심히 하던 와중. 고시원에서 회사로의 출퇴근은 자전거로 하고 있었는데, 항상 아슬아슬하게 출근하다 보니 출근 시에는 항상 자전거 RPM을 풀가동한 상태였다.
그날도 엄청 빠르게 차도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좀 내려가 있는 횡단보도 경계석을 지나 인도로 올라가려는데 각도가 안 맞았는지 인도로 들어가지 못하고 앞바퀴 옆면이 경계석에 긁히면서 미끄러졌고, 자전거가 옆으로 넘어졌다.
속도가 속도인지라 나는 앞으로 날았고, 양팔을 내밀어 충격을 흡수하며 (그 와중에 출근 생각에 옷과 몸을 지키면서) 넘어졌다. 다 큰 어른이 자전거 타다 넘어진 것이 몹시 부끄러웠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일어서서 몸을 툭툭 털려고 하는데 오른팔에 힘이 안 들어가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 팔인데 내 마음대로 안 움직이고, 억지로 움직이려 하면 숨이 막히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일단, 회사에는 출근길에 사고가 나 병원에 간다고 말한 후 생각해보니, 이렇게 아픈 때는 어딜 가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119를 불러야 하는 상황은 아닌 것 같아서 일단 택시를 타고 기사님에게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다행히 기사님께서 센스 있게 정형외과로 데려다주셨다.
병원에 가니 팔이 빠진 것 같다고 하는데, 이른 시간이라 의사는 출근하기 전이었다. 나의 아픔을 경감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 나는 그저 팔의 각도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최대한 아프지 않은 포즈를 찾아낼 뿐... 출근 시간이 늦는 애먼 의사 선생님만 원망하며 시간이 지났고, 출근한 의사는 그 원망을 알아차려서일까? 빠진 팔을 이리저리 돌려서 끼워 넣는데, 팔을 돌릴 때마다 뼈와 뼈, 뼈와 관절이 부딪치고 긁히는 듯한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태어나서 그렇게 아픈 적은 처음이었다.
영화에서 멜 깁슨은 팔이 빠지면 벽에 어깨를 부딪쳐 끼워 넣던데 그건 너무 영화적 과장이 심하다. 팔이 빠지면 실제로는 움직일 수도 없게 아프다.
뭐든 처음이 힘들다고 했던가? 한번 빠진 팔이 그 후에는 어이없이 빠지기 시작했다.
한 번은 눈 오던 어느 날 밤. 술 마시고, 괜히 날 보고 짖는 개한테 기분이 안 좋아져서 경고의 의미로 눈을 뭉쳐 던졌는데, 내 팔도 같이 던져졌다. 다행히 그때는 동생이 같이 있어서 119 불러주어 응급실로 갔다. 그날 응급실에서도 팔의 재조립이 시작되었는데. 비명을 지르는 형을 진상처럼 쳐다보던 동생의 싸늘한 눈빛이 생각난다. 패주고 싶었다나?
또, 가족들과 여름휴가로 연천 쪽에 놀러 갔을 때는 배드민턴을 치다가 팔이 빠져서 보건소로 달려갔는데. 지방의료의 열악함을 몸소 느꼈다. 보건소까지 가는데만 4-50분이 걸렸고, 가장 팔이 안 아픈 강시 자세에도 차가 흔들릴 때마다 고통이 심했다. 팔을 재조립하는 고통의 시간을 걱정했는데. 다행히 보건소에서는 경험이 많은 분이 계셨는지 내 어깨를 침대 끝에 딱 붙게 위치시키고 팔에 무거운 추를 다시더니 팔에 힘을 빼고 있으라 했다. 잠시 시간이 지나니 뚝 하는 소리와 함께 팔이 살짝 빠지는 느낌이 들더니 다시 어깨로 끼워졌다. 아니 이렇게 고통 없이 팔을 끼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니... 셀프 치유법을 발견하는 값진 순간이었다.
그 후 한동안 내 팔은 제자리에 있었고, 나는 무사히 결혼을 하게 되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피곤에 찌든 남편이 불쌍해 보였는지 아내는 등 마사지를 해준다고 하였다. 목부터 척추를 따라서 꾹꾹 눌러주는데 어깨 근처를 누르다가 내 팔을 또 뽑아버렸다.
안마 시작 후 1분 만에 내 어깨를 뽑아낸 것을 보면 아내에게 뭔가 어두운 과거가 있는 것도 같았지만 무서워서 묻진 못하였다. 다행히 나는 보건소에서 배운 셀프 치유법을 알고 있었고, (집 침대는 낮아서 높이가 안 나와서) 책상 위에 엎드려서 꼴은 사나웠지만 고칠 수가 있었다.
아내에게 남편(은 개복치 같으니)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준엄한 경고를 해주고 보니 귀찮게 안마 같은 것 해주지 말라는 준엄한 경고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