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블릿 조공 사건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쓰는 것을 좋아했다.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정리할 때도 있고, 모임에서 있었던 일을 sns 등에 재미있게 쓰면 사람들(주로 친인척)이 반응해 주는 것도 좋았다. 재미있는 사람이고 싶은데 현실에서의 모습보다 글에서 좀 더 재미를 뽑아낼 수 있는 사람이어서 더 그랬던 것일 수 있겠다.
그런 걸 떠나서 일상의 소소한 기쁨들을 적어두면, 나중에 그걸 보고 추억에 빠지기도 하고, 좋았던 기억이 다시 되살아 나기에 틈틈이 적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그럭저럭 글을 좀 쓴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는데, 내가 보기엔 너무 모자란다.
주위에 훌륭한 사람은 너무 많고, 나는 티끌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언가를 쓴다는 생각을 못해봤다.
이런 마음을 아내에게 말하니 적극적으로 글을 쓰는 것에 찬성을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생긴 동네 책방의 글쓰기 모임을 추천해주어 일주일에 한 번, 글쓰기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용서점, 써용 모임. 모임에 참석한 지 벌써 반년 정도 되었다.
지난 써용 모임에서 와이님이 말했다.
무언가를 시도해 봐야 결과가 나온다고.
자주 듣는 말인데, 그날따라 유독 마음에 꽂혔다.
아내는 얼마 전부터 브런치를 써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했었다. 나는 이미 하루 평균 방문자 0.3명, 평균 조회수 1이 나오는 블로그를 보유하고 있는데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겸손이 심해져서 그런지. 무엇을 하려고 하면 '내가 감히?'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와이님의 말을 듣고 나니 브런치에 글을 써 본다고 뭐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차피 글 쓰는 것도 좋아하는데, 글을 올리고, 좋은 글이라면 반응이 있을 것이고, 아니라면 조회수 1로 쓸쓸히 사라지겠지만, '그때 해볼걸..'이라는 후회는 없을 테니까.
잘 나가는 블로그를 포기하고 브런치에서 새롭게 시작해 보기로 했다.
블로그를 항상 텍스트로만 채우는 나와는 달리, 편집이 가능하고 그림도 그릴 수 있는 인재(a.k.a 아내)도 있어서 나는 글을 쓰고, 편집과 그림은 아내에게 맡기기로 했다.
아내는 그림을 그려준다며 컴퓨터에 태블릿을 설치했다. 원래 가지고 있던 태블릿이 이상하게 펜만 없어졌고, 태블릿이 워낙 구형이라 그 펜을 다시 구하는 게 새 태블릿보다 더 비쌌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태블릿 펜을 찾아온 집안을 뒤집었지만, 결국 새 태블릿을 사 바치게 되었다.
공교롭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난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아내가 그림을 그려준다고 말한 거 같기도 하고... 뭔가 석연치 않다.
부처님 손바닥 위에 있는 느낌이다. 결혼하고 종종 느꼈던 이런 느낌... 이 게임의 진정한 승자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