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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려운 것을 코로나가 해냈다.

by 재원

이 글은 용서점을 통하여 [부천 도시 이야기 기록 네트워크 도시유영]에 기고한 글입니다.



우리 아이는 입이 짧다. 먹는 걸 크게 좋아하지도 않고, 먹는 속도도 느리다. 어릴 때 핫도그를 먹는 거 보고 속이 터지는 줄 알았다. 다람쥐도 아니고 핫도그를 갉아먹고 있었고, 시간이 많이 지나도 손에는 핫도그가 계속 들려있었다. 탄산음료를 먹을 때도 2/3 정도만 먹고 나머지는 항상 남긴다. 다 먹지도 않을 것을 과감하게 한 캔 까는 걸 보면 왠지 아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활동량은 엄청나게 많은데, 길을 갈 때 갈지자로 가는 건 기본이고, 남의 가게 데크를 점프로 넘어간다던가, 그 사이로 빠져나간다던가... 3보 이상은 파쿠르를 하면서 간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니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살이 안 찐다. 얼굴은 통통한데 몸은 말라서 많은 오해를 사기도 했다. 그래서, 이 아이가 살이 찐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그 어려운 것을 코로나가 해냈다.


학교가 끝나면 놀이터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놀다가, 태권도에 가서 운동하고 오던 아이가 바뀌었다. 학교를 가지 못하고, 가끔 갈 때도 놀이터에서 놀지 못하고, 태권도는 코로나 때문에 많은 기간 휴원을 하니 활동량이 확 줄었다. 집에서 아빠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그 운동량은 코로나 이전과 비할 바가 아니었는지 어느 날 보니 애가 후덕해져 있다.

"아 얘도 살이 찌기는 하는구나."

먹는 칼로리에 비해서 소모하는 칼로리가 없으니 당연히 살이 찌는 것일 텐데도 걸음마 시작 후 항상 마른 모습만 보여 오던 아이가 후덕해져 있으니 왠지 낯설기도 했다.


‘많이 안 먹고 말라서, 살이 좀 있어야 키로 갈 텐데.’라는 고민이 있었는데 코로나로 그 고민이 해결되었다. 오히려, 지금은 너무 살이 찌면 키가 안 큰다는 말이 있어서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자식 문제에는 이러나저러나 고민하게 되는 것인가?


코로나는 아이에게 살만 준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새로운 변화를 주었다. 마스크를 쓰고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삶이라던가, 학교를 가지 않고 화상으로 수업하는 것 같은 변화가 아이와 함께 한다. 특히 화상수업을 하는 모습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학교를 안 간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일주일에 며칠만 학교를 가고, 나머지는 화상으로 수업을 하는 것이 크게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화상수업을 할 때도 화면을 열심히 보고 있다. 그게 본인의 얼굴이 나오는 게 신기해 화면을 보는 건지 아니면 수업을 열심히 듣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열심이다.


내가 어릴 때, 미래 사회를 상상할 때 늘 등장하던 재택근무, 화상수업이 실제의 삶이 되어서 우리 옆에 와 있다는 게 너무 놀랍다. 날이 춥거나 더워도 문제가 없고, 등교 때 지각을 할까 봐 헐레벌떡 뛰지 않아도 된다. 수업이 끝나면 바로 뿅 하고 집으로 올 수 있는 세상이라니.

효율적인 세상이긴 하지만, 친한 친구들과 만나지 못하는 아이는 슬프다. 코로나가 잠시 잠잠해져서 등교일 수가 늘어나 반 친구들을 모두 만날 수 있었을 때, 아이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 친구들과 간식을 사 먹고, 이야기하며 집에 오는 하굣길이 아이에게는 너무 소중했던 것 같다. 코로나가 확산되어 다시 화상수업 체제로 돌아가자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는 아이는 많이 속상해하였다. 학교에서는 지식을 쌓는 것만이 아니라 친구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할 텐데, 효율적인 삶은 감정적인 유대를 약하게 하는 것 같다.


어제까지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고,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이 당연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경험과 편리함을 얻기도 하지만, 소중한 추억들을 잃기도 한다. 예상했던 상황은 아니었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이것도 추억으로 남을까?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한다.

확찐자.jpg 연우의 멘탈 보호를 위해 이 그림은 크게 과장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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