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반장 한번 못 해본 사람이 어디 있냐는 말이 있는데, 여기 있다. 그런 사람.
하지만 반장이 아니라 임원으로 그 폭을 넓힌다면 나도 감투는 한번 써 본 적 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초등학교 1, 2학년 때는 반에 반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 의지였는지, 부모님의 의지였는지 3학년 때에 비로소 출마를 하였고, 선거 전날 아버지와 함께 소견 발표문을 열심히 연습하였다. 우리 학교만 그랬는지 그땐 임원을 반장, 남녀 부반장, 회장, 남녀 부회장 참 많이도 뽑았다.
열심히 연습한 소견 발표문은 떨려서 처음과 끝만 제대로 했던 거 같다. 장난만 좋아했었던 아이라서 그런지, 반장처럼 안 생겨서 그런지 반장, 부반장, 회장 등은 우수수 떨어졌다. 좌절한 모습이 안돼 보였는지 주변 친구들이 불쌍하다고 찍어주고, 먼저 부반장에 뽑힌 친구가 혼란한 개표 과정 중에 한 표 슬쩍 더해주는 것도 목격하였다. 그런 주위의 노력으로 결국 남자 부회장에 뽑히게 되었다. 임원이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나에게 맡겨진 역할은 학급회의 서기였는데. 글씨 못쓰기로 명성이 자자하던 나에게 그 직책은 고통뿐이었다.
깜냥에 맞지 않는 감투는 삶을 피폐하게 한다는 교훈을 얻은 지 어언 수십 년. 코로나 정국에 홀수번호와 짝수번호로 반씩 나눠 등교를 하는 와중에도 3학년 2학기가 되자 연우네 반장선거가 시작되었다.
반 친구들을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하지?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소견발표를 동영상으로 찍어서 올린다고 한다. 과연 Z세대.
그런가 보다 하고 있는데, 연우가 반장선거에 나가고 싶다고 한다. 항상 묻혀있길 좋아하는 엄마, 아빠와는 다르게 적극적인 모습이 좋았고, 아들의 꿈을 지원하고 싶은 마음에 유명 참치캔 CM송을 개사해서 ‘투표해! 나에게 한표! 표!’란 선거송까지 만들어 동영상을 찍었다.
약 2주간의 접수 시간이 있었는데 접수 기간 동안 연우만 동영상을 보냈다고 했다. 이대로라면 무투표 당선이 아닐까 가슴 졸이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815 광화문 집회가 터지면서 한동안 등교가 중지되었고 소견발표 동영상 접수기간이 늘어나 2명이 더 지원을 했다.
반장 한 명, 남녀 부반장을 한 명씩 뽑으니 총 티오는 3명이었지만, 지원자가 모두 남자라서 1명은 떨어지는 데스매치. 두 반으로 나뉘어 있는데, 하필 연우반에서 지원자가 2명 나왔다는 슬픈 소식도 들었다. 아무래도 애들이 얼굴 한 번 더 본 친구를 찍어 줄텐데 말이다.
대통령 선거 결과 기다리듯이 떨리는 시간 끝에 선생님에게서 날아온 문자. 연우는 부반장이 되었다고 한다. 반장에 뽑힐 것을 너무 기대했던 연우는 부반장이 되었음에도 크게 좌절했고 나는 역시 표가 갈린 거라고 연우를 위로해 주었는데, 웬일 연우 반에서는 연우 혼자만 나왔다고 한다.
연우는 더욱 좌절했지만 그래도 반장은 저쪽 반이니 “차렷, 경례”는 할 수 있을 거란 기대에 겨우 멘탈을 수습할 수 있었다. 나중에 표 차이를 들어보니 반장이 된 아이는 꽤 많은 표를 가져갔는데, 그 소식을 들은 아내와 나는 동시에 ‘완전 반장처럼 생긴 아인가?’라고 생각을 했고, 나중에 연우가 화상수업을 할 때, 그 아이의 얼굴을 확인하니 과연 그러하였다.
아들아 반장처럼 생기게 못 낳아줘서 미안하다. 내년 선거에는 그런 아이가 없길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