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설에는...

by 모래쌤

여보. 설이 얼마 안 남았어.

당신 기일에 식구들 왔을 때 준영이 엄마가 언니 이번 설에 연휴 길던데 월요일도 수업을 하세요? 하더라고. 왜 묻나 했더니. 시간 되면 오시라고 그러는 거야. 거기 가면 준영이 방에서 당신이랑 둘이 잤었잖아. 하루도 아니고 이틀씩 자고 왔었는데. 이번에 가면 나 혼자 거기서 자라고? 에이. 안 갈래. 진짜 생각만 해도 싫다.


당신 기일에 식구들 왔을 때 준영이 엄마가 언니 이번 설에 연휴 길던데 월요일도 수업을 하세요? 하더라고. 왜 묻나 했더니. 시간 되면 오시라고 그러는 거야. 거기 가면 준영이 방에서 당신이랑 둘이 잤었잖아. 하루도 아니고 이틀씩 자고 왔었는데. 이번에 가면 나 혼자 거기서 자라고? 에이. 안 갈래. 진짜 생각만 해도 싫다.


당신한테 수다 떨어야지 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자꾸 당신 흉만 보는 것 같아 뭔가 쓰다가 자꾸 지우고 그렇게 되네. 어쩌겠어. 그냥 들어. 당신은 나한텐 입이 열이라도 할 말 없는 사람이야. 공수표만 잔뜩 날리고 갔으니까.







나는 딸만 삼형제고. 언니는 진작 천국 가고 동생은 미국 가고. 엄마 아버지는 나만 바라보고 사시는데. 더구나 우리 아버지는 친척이랑 왕래도 안 하시잖아. 할아버지가 예전에 난봉꾼이셨던 데다 세 번째 부인까지 얻으시고 재산을 몽땅 그 할머니가 낳은 자식한테로 넘겼거든. 우리 아버지는 그런 걸로 누구랑 법정 다툼 같은 걸 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니라 돈 욕심도 없고 그냥 다 포기하셨고, 자기가 장남인데도... 그 뒤로 배다른 그 형제들과 다 연락이 끊겼지. 아예 왕래를 안 하신 지 오래. 그러니 명절엔 정말 쓸쓸하거든. 그럴 땐 왜 친구들도 만나기가 어려운 때잖아. 다들 가족끼리 보내는데. 외식도 어렵고. 그래서 엄마 아버지랑 좀 보내고 싶은 맘이 많았어. 당신네는 7남매잖아. 큰 아주버님만 안 오시지 형제들 간에 의도 얼마나 좋아. 그러니 나 하나쯤은 한번씩 좀 빠져도 될 법도 하고. 아니면 우리 엄마 아버지랑 좀 하루 보내고 순서를 바꿔서 갈 수도 있는 거 아냐? 어머님 살아생전엔 뭐 나도 꿈도 안 꿨어. 어머님 뵈러 가끔 가는 거라 다녀와야지 하고 갔지. 근데 어머님도 안 계시고 형제들 만나러 가는 건데 좀 순서를 바꿀 수도 있지 않나 싶더라. 그래서 재작년인가 한 번은 당신 혼자 다녀오라고 그랬지. 그때는 내가 정말 단호하게 말해서였나 두통이 심해서 좀 아팠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당신이 둘째 녀석만 데리고 다녀왔었잖아.


하긴... 생각해 보니 당신도 고생 많았어. 엄마 아버지가 나를 의지하고 사셨다는 건 곧 당신도 엄마 아버지 신경 쓸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았다는 건데. 당신 입장에서 보면 장인 장모가 근처에 항상 계시니까 힘들었을 것 같기도 해. 우리 아버지가 평범하신 분이 아니라 감당하기 어렵기도 하고. 그러니 당신도 나름 할 말은 있었다는 것 인정.


아. 맞다. 용인에도 한 번 가서 어머님 아버님 성묘 하고 오자고 그랬었는데 다 물 건너갔다. 나 혼자 갈 용기가 안나. 어쩌다 그렇게 된 거냐. 너는 남편은 안 챙기고 도대체 뭘 하고 산거냐. 비난이 내 속에서 나를 막 공격하거든. 어머님도 이렇게 반응하시지 않겠어?


갑자기 그 말씀이 떠오른다.


" 아니, 아들 얼굴이 왜 그러냐. 결혼하기 전엔 안 저랬는데..."


누가 한 말인지 기억 안난다곤 하지 마. 난 엄청 스트레스받았었으니까. 결혼하고 한 달 지나 반지 때문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시고, 아들 얼굴 안 좋다고 저런 말씀을 하셨었어. 나 듣게 큰 소리로. 참 하여간 우리 어머님도 대단하시다 그렇지? 나도 지금은 어머님 앞에 가도 입이 열이라도 드릴 말씀이 없지만.







여보. 당신이 없으니. 시댁을 안 가도 뭐라 할 사람이 없는데. 좋지가 않냐. 무슨 날이 돌아오는 게 이렇게 별로일 수가. 매일 평일이면 좋겠어. 갈 데도, 만날 사람도 없는 인생. 엄마 아버지와 알콩달콩 여행 다니고 그럴 마음도 안 생겨.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철없이 자기 생각만 하시고, 엄마는 내 눈치 보느라 여념이 없고. 나 진짜 불효녀야. 걱정 안 끼치고 싶어 웃는 낯으로 대하려 애쓰다가 어느 순간 포기해 버렸어. 그래서 요즘은 그냥 연락도 좀 덜 드리고, 덜 만나고 그래. 팽팽하게 감았던 태엽이 풀린 기분이야. 여행 안 간 지 오래됐어. 저번에 준이가 친구들이랑 제주도 갔었거든. 걔들 간 숙소가 너무 좋았대. 누워서 밤하늘의 별을 다 봤다더라고. 거기 우리 가족 다 가도 너무 좋겠더라고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흐르잖아. 이제 나에게 그런 행복은 없잖아.


좋은 음식점을 알게 돼도, 예쁜 가페를 알게 되어도, 좋은 여행지를 알아도 제일 먼저 당신이 생각났었어. 다음에 당신이랑 가려고. 실제로 카페나 음식점은 내가 다른 선생님들 통해 알게 되면 당신이랑 갔었잖아. 그다음엔 가족들 다 데리고 또 가고. 당신은 별로 어디 돌아다니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닌데 난 거의 서서 사는 인간형이라 내가 엄청 끌고 다녔잖아. 시시때때로 틈만 나면. 엄마 아버지까지 다 모시고. 모든 것이 한 때라는 말이 이렇게 적용이 될 줄이야.







그래서 올해 설 연휴에 나는 책을 읽을 거야. 엄마 아버지 얼른 뵙고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서 시간을 보낼 예정이야. 읽고 싶었던 책도 읽고, 수업 준비도 하고, 그리고 당신한테 수다도 떨고.


멍하고 창밖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는 건 추억을 소환해. 그건 또다시 나를 괴롭히고. 어차피 살아야 한다면 살아내야 할 테니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거지. 요즘 두통이 또 엄청 심해. 한 시간 수업이 비어서 당신한테 수다 좀 떨어야지 헸는데, 어깨며 머리며 너무 아프다. 이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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