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랑 말 못 하고 지낸 지 377일 지났어. 와 이게 말이 돼?
늘 바쁜 상황을 만들어내는 나 때문에 당신은 내 옆에 있으면서도 외롭다는 소리를 잘 했었는데... 그 때 난 하나도 안외로웠거든. 내가 바쁘게 일하다가 고개들어보면 당신은 항상 거기 있었으니까. 같이 앉아 있어도 당신은 당신대로 나는 나대로 앉아서 책 보고 그랬지. 같이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는 것도 우리 잘 못했었던 것 같아. 내가 무언가에 한 번 딱 꼿히면 그 얘기를 몇 시간이고 했었지만. 그러면 당신은 그얘길 또 그냥 한 없이 들어 주었어. 그냥 딱 들어주기만 하는 거였지만 말이야.
제일 오래 우리가 말을 안하고 지냈던 기간이 아마 결혼반지 사건 때문이었을걸. 결혼 전에 내가 당신과의 결혼이 정말 하나님의 인도하심인지 응답을 받겠다며 잠수 탔을 때도 한 달은 안 됐던 거 같거든. 반지사건 때는 진짜 한 달이었어. 당신이 내 앞에서 엉엉 우는 바람에 아휴. 뱃속에 큰 애도 있었으니까. 허니문 베이비라고 말만 들었었지. 나한테도 그런 일이 생길 줄이야. 아무리 우리가 늙어서 결혼한 것이지만. 내가 그 때 33살이었으니까 당신은 나보다 5살이 연상이니 38세였고. 만혼이긴 하나 1년은 신혼생활을 하며 서로를 알아가고 가정의 틀을 만들자. 하면서 얼마나 많은 계획을 했어. 가능한 일이 아니었지. 피임이라는 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으니까. 이런 얼떠니우스들 같으니라고. 어쨌든 우리 귀한 큰 아들을 받았으니 두고두고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해. 시간을 많이 절약해 주신 것이니까. 늙어서 학부모 노릇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냐고.
여하튼 당신이 그때 내 앞에서 엉엉 울지만 않았고 내 뱃속에 우리 귀한 큰 아들만 없었다면 내 성질에 그만 됐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었지. 결혼반지를 시어머니랑 셋이 똑같은 걸 낀다는 게 말이됀다고 생각해? 죽을 때까지 그거 우려먹으면서 당신 괴롭히려 했는데 이렇게 반칙을 쓰다니. 어쩔 수 없어. 생각날 때마다 이렇게 글로라도 써서 안 잊고 당신 만날 때까지 기억하고 있을 거야. 결혼하고 한 달 지나서 어머님댁에 갔었잖아. 그때 내 옆옆 자리에 어머님이 계셨는데 식사하실 때 얼핏 어머니 손가락의 반지가 눈에 들어온 거야. 근데 그 싸한 느낌이라니... 내가 끼고 있는 반지랑 똑같은 것 같더라고. 가슴이 쿵쾅거렸지만 다시 봤지. 똑같아. 진짜 똑같더라고. 헉!
집에 와서 내가 물었지.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당신의 변명을 들어볼래?
"내 반지가 좀 크게 나왔었잖아. 그거 줄이러 갔을 때 영숙이가 ( 둘째 여동생 영숙아가씨가 당시 종로 3가 큰 보석상에서 일할 때라 모든 예물을 거기서 했었고, 그 아가씨가 모든 일을 꾸몄다는 식으로 변명을 늘어놨지 아마) 엄마도 평소에 이런 반지 끼고 싶어 하셨으니까 이건 엄마 드리고 오빠 거는 새로 해 줄게 하잖아 그래서 그러자고 한 건데. 내 생각이 짧았어. 미안해 여보."
이건 정말 비상식적인 일이라고. 내가 그렇게 끔찍하다는 시월드에 들어간건가 싶고. 이 사람은 대체 누구 편에서만 이야길 하는지... 당신이 너무 멀게만 느껴지더라고. 더구나 아버님께서 우리 결혼하기 3년 전 돌아가시는 바람에 4남 3녀 중 가장 마지막에 장가를 간 당신한테 많이 의지하신 건 알아. 늘 순종적인 셋째 아들이고 목사님이 될 아들이라 더더욱 의지하고 사신 건 알겠는데. 이건 의지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잖아. 결혼반지를. 이게 무슨 경우냐고. 내가 결혼을 인생에 몇 번 하냐고? 결혼반지라고 하는 것은 평생에 그거 하나라고. 그런데 그걸 셋이 나눠 낀다고? 내 결혼이 길거리에 뒹구는 휴지조각 같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고 갑자기 모든 게 다 억울하고 허무하고 기가막히더라고. 그런데 당신의 사과라는 건 그 정도였어 그냥.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지 나는 이해가 안 돼.
휴..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화가 나네.
나 결혼반지도 없잖아 그래서. 그거 다 갖다 버렸지. 그리고 한 달을 말을 안 했는데. 집에 돌아가고 싶었는데 와 정말 너무 돌아가고 싶었는데... 그래서 그렇게 서둘러 아들을 보내셨나봐 얼른 가서 막아!! 그러셨나... 주님은 내 편이 아니고 늘 당신 편이신것 같더라고. 그 때도 지금도...
죽기 전에 꼭 영숙 아가씨한테 확인할 거야. 처음엔 내가 바보 같아서 당신도 원망했지만 그 아가씨도 진짜 속으로 많이 원망했거든. 미친 거 아니야 하면서. 근데 겪어보니 그 아가씨가 그렇게 막 이상한 사람이 아니더라고. 당신 가족들 중에서도 특히 예의 바르고 똑똑하고 정확한 사람이던데. 근데 그 사람이 그런 판단을 했다고? 더구나 그렇게 큰 보석상에서 그런 일을 하던 사람이. 비상식적인 그런 일을 그렇게 했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두고두고 그 때 일이 생각 날 때마다 아주 곰곰이 생각해 봤거든. 어머님이 아마도 "그거 나 줘라" 하셨을 것 같아. 그걸 아무도 제지하지 못한 걸 테고. 그래놓고는 나한테는 당신이 그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은 거지. 바보야 바보.
"엄마, 새로 해드릴게요. 결혼 반진데 이걸 엄마가 하신다는 게 좀 이상해 보일 수 있고. 집사람한테도 이야기 안 한 일인데 오해할 수도 있고요."라고 딱 잘라 말했어야지... 바보야 진짜.
당신이 옆에 있었으면 오늘 나한테 또 한 시간 설교 들을 뻔했다.
하고 싶다. 한 시간 설교. 너무 그립다. 이 얘기 들으면 당신 민망해하면서 너네 엄마 저거 평생 우려먹을 것 같다며 어후어후 했을 것이고, 나는 당연하지 안 그럴 줄 알았어? 내 결혼반지 어떻게 할 거야? 하고. 큰소리 뻥뻥쳐댔을텐데. 애들은 아빠가 잘못했네. 왜 그랬어. 뭐 맛있는 거라도 사줘야 하겠네. 했을텐데.
오늘 너무 심심한데 당신 앞에 앉혀놓고 막 퍼부어주고 싶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세상 사람들한테 다 물어봐 내가 이상한가 당신이 이상한가. 나니까 참고 살았어. 안그래 ? 맞지 ? 대답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