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세계 속에서라도

by 모래쌤

여보

그거 하나는 해결됐어.

잘 됀거겠지?

몰라 나는.

뭐든 당신 있었으면 더 잘 해결하지 않았을까

이게 맞나.

하면서도 늘 그런 맘이야.

허방을 딛는 기분이어서

자꾸 불안하기만 해


어쨌든 해결은 됐어.


엇그제 그 일 때문에

군산까지 다녀왔거든.

안쉬고 갔다와도 왕복 7시간

너무 힘들어.

나도 늙었나봐.

운전 오래하는게 이젠 너무 힘들어.









당신이 왜 전에 좀 오래 운전하면

다리게 쥐가 난다는 둥 그랬었잖아.

휴게소에 내려서 요란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종종 걸음으로 뛰는 것도 걷는 것도 아니게

좀 웃긴 포즈로 몸 푼다고 그러면

내가 핀잔을 줬었지.

뭔 운전을 그리 힘들어 하냐고.

재밌지 운전이 하면서.

비켜 내가 할게

막 이러고.






그 때 당신이 내 나이였지 싶다.

나도 그 나이게 된거야.

세상에

목은 안그래도 뻣뻣하던 게 더 하고

두통 안그래도 심한데 더 심하고

오른쪽 발에 쥐가 와서

달리다가 멈출수도 없고

혼났어.


액셀에 올려놓은 발을 떼서

방정맞게 다리를 털고

발을 꼼지락 거려 보고

새끼 발가락부터 발 오른쪽에 저림이 나타나더라고

그래서 자꾸 발을 까불었지.



다행히

졸음쉼터가 나와서

멈추고

예전의 당신처럼 제자리에서도 뛰고

스트레칭도 하고

다리 풀고 막 난리를 쳤어


나 고관절이 아프잖아 요새

그래서 더 포즈가 엉거주춤했지.

거기 차 대놓은 사람들이 아마 저 아줌마 뭐하나 했을거야.








시간 대서 가느라 맘이 바빴거든.

역사 특강 막바지라 그 수업을 뺄 수가 없어서

12시 땡하고 부리나케 출발했는데

카메라가 많아도 너무 많더라

구간단속도 많고

한번은 아무래도 찍힌 것 같아.

당신 있었으면 너네 엄마 또 딱지 끊었다고

애들 앞에서 한바탕 내 흉을 봤을텐데.

없으니 뭐랄 사람도 없고

에라 밟자.








올 때는 좀 여유 있게 오려고 했는데

큰 애네 크로스티 찬양팀이 어디 교회 집회 인도하러 갔는데

중요한 장비를 우리차에 뒀다는거야.

헉!


이제 서울가서 갸 혼자 우찌 지낼지

걱정이다. 여보.


감사하게도 일이 금방 끝났고,

시간을 재 보니

부지런히 가면

개들 집회에 지장없이 갖다줄 수는 있겠더라고.


큰 아들 덕에

올 때도 조바심치며 왔네.

잘 전달해줬어. 물론.

나 긴장 놓지 말라고 그런 것이겠지?

고속도로만 타면 자꾸 잠이 오는 나를 위해.









예전엔 그 바람에 목 터지게 노래를 부르며

운전하곤 했지 왜.

다행히도 당신은 내 노래를 좋아해줬고.

이번엔 준이가 실컷 불러줬어.

차 출발과 동시에 잠들었다가

도착과 동시에 깨나는 아이가

한숨도 안잤어.

할머니랑 약속했대

엄마 옆에서 안졸게 잠 안자고 이야기 해 주기로.

거짓말같지?

믿어도 돼.

나도 신기하긴 했어.








나는 요새 노래 안들어.

찬양도 안들어.

뭘 들어야 한다면

뉴스가 제일 나.

요즘 뉴스는 사상 최악이라.

막 화내기 좋거든.

그래야 눈물이 안나.

이놈에 아들내미 녀석은 엄마가 울거나 말거나

지 좋아하는 슬픈 발라드들을 연신 틀어대더라고.

걔가 음악 코드까지 나랑 똑같잖아 여보.

감성충.

에효.


먹던 생수병 마이크인냥 붙잡고

지가 목 터져라 노래도 부르대


나도 몇번은 같이 따라 불렀네

얼마만인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어.

'지친하루'라는 노래 좋더만.



화장실 잠시 들러 또 달리다

기름 넣고 또 달리다 그랬는데.



아무 희망이 없이

계속 달리던 델마와 루이스가 생각나더라

슬픈 결말이어서 충격받았던 어렴풋한 기억만 있는

아무 관련도 없는 그 영화의 분위기가 떠올랐어.


당신이 옆에 없다는 것을 실감할 때마다

바람이 가슴을 뚫고 들어오는 것 같이 춥고

심장을 칼로 샥~

아프고.

막막한 그 기분을 어찌 설명해야할지...

말도 안됀다는 생각밖엔.


8시간도 넘는 운전에

다리 엄청 까불거려 쥐를 쫓았고

그 때마다 더 당신이 떠올랐는데

그나마 둘째녀석 데리고 간 보람이 있어

덕분에 잘 왔지.



해가 질 무렵

갈 때 봤던 마이산이 한 층 더

괴이하게 느껴졌어.

말의 귀를 닮아서 마이산이라고

아들한테 설명듣고.

맞아맞아. 아는건데...


예전에도 우리 그 얘길 한 것 같거든.










아들이 지나가다 길에서

어떤 할머니와 할아버지 부부를 봤대.

아주 노인들이었는데

두 양반이 손을 꼭 붙잡고 가더라나

근데 그게 너무 보기 좋았대.


진짜 생각없지? 우리 아들?


그래서 내가 그랬지

"약올리네.

나도 그렇게 살려고 했는데.."

그랬더니


" 에이~ 엄마 아빠는 아닌 것 같았는데?..."

하더라고.


내가 워낙 무뚝뚝하고 멋이 없는 여자라.

당신한테 잘 못했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어.

좋은 데 가면 제일먼저 당신 생각나서

그다음에 꼭 당신이랑 같이 갔었고.


낭만이라곤 없는 당신인데도

어딜 가든 항상 같이 다니고 싶어했잖아.


애들 키워놓고

엄마 아버지 질 챙기고

시간이 날 줄 알았다고.

우리 둘만의 오붓한 시간이...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나 싶고.

앞으로 나는 기댈 곳 하나 없이 어찌 사나싶고

후회스럽기만 해 여보.










이럴 줄 알았으면....










초등 5학년 아이들 수업할 책인데

<마지막 레벨 업>

이 책에 가상세계에 사는 애가 나와

아빠가 게임 회사 대표.

부인과 딸을 함께 타고 있던 자율 주행차가 사고가 나고.

부인은 즉사.

딸은 뇌만 살았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는데

그 뇌만 가상세계랑 연결을 해서

자기가 만든 게임 세상 속에 살게 했어.

떠나보낼 수가 없는거지.

모두가 자기 책임인 것 같고.


그래서 그 가상세계 안에

딸이랑 살던 동네까지 구현해 놓고.

그 속에 접속해 들어가서 만나는거지.


결국에는 그 생활을 못견뎌 아이가.

아빠가 마음대로 조작하는 감옥같은 곳을.

아빠가 친구를 만들어 주겠다며

얘가 어쩌다 그 안에서 마음을 주는 아이를 만나면

게임 중독이 되게 해.

그리고 가상세계로 아예 들어와 살게 하려 하지.

끔찍한 사랑. 휴....











주제와 관계없이

나도 그냥 그렇게 가상세계에서라도

좀 만나고 싶더라고.


예전에 왜 고스트라는 영화 있었잖아.

우리 젊을 때.

페트릭 스웨이지 나오는.

영매가 그 남자의 영혼을 맞아들여

부인을 만나는 장면 있었지.


그렇게 실제적인 만남이

진짜 그리운 것이구나.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이 그리 많았구나

깨달아지네...



꿈에 당신이 왔다가는 그런 거 말고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

못 다한 이야기.



미안해.

나는 여전히

내가 필요한 순가에만 당신을 찾는 것 같다.


아침에 눈 뜰 때

온몸이 아파 누가 좀 주물러 주면 좋겠다 싶을 때

혼자 학원에서 퇴근할 때

청소해야 할 때

차 고쳐야 할 때


잠자리에 들 때 특히

당신이 내 등뒤에 있어야 안 무서운데.

아무도 없으니 자꾸 무섭잖아.

벽에 붙어서 잔다니까.

겁쟁이가 더 겁이 많아졌어.



혼자 뭘 척척 하는게 없는 인간이었더라고.

호가호위해왔던거야. 알고보니.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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