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형@ 오늘 드디어 올라갔어.
이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할 수 없다니.
믿을 수가 없다. 나는 아직도.
우리 자랑스러운 큰아들 자랑 좀 해 보자.
당신이야 뭐 자꾸 들어도 좋아하는 이야기들이니까
부담이 없다.
10개월 되자 서서 걸음마를 떼던 아이
4살짜리를 카시트에 앉혀놓고
이런저런 신세타령을 해도
다 알아듣는 듯한 반응을 보여
(믿거나 말거나)
엄마를 위로하던 아이
할아버지 화실의 넓은 합판 위.
거실 테이블 위.
공원에 가면 있는 공연무대.
보이는 곳마다 올라가 그렇게 소리 지르며
찬양을 하던 아이.
열경련을 일 년에도 몇 번씩 했었고.
구급차를 여러 번 부르게 한 아이.
6살 때 심한 열경련으로 죽다 살아난 그 순간.
"주 나의 구원자"
라고 자기 입으로 말한 아이.
그러더니 그렇게 찬양팀을 만들고 사역을 하나...
학교 가기 전에도 보는 사람들마다 얘는 영재 검사를 해 봐라
그런 소리 듣고
잘생겼으니 어린이모델 시켜 보실 생각 없냐는 제안까지 받았지.
그럴 때마다 참 으쓱한 마음이 들었잖아.
우리 둘이 참 기분 좋았지.
학교 들어가면서부터는 또 공부를 그렇게 잘하고
매일 학교에서 돌아와 책 읽고,
문제집 알아서 풀고, 성실함을 보여준 아이.
학교에서는
생활태도가 바르고.
친구들을 도와주고.
반에서 조금 부족한 면이 있는 친구들이 왕따를 당하고 하는데
늘 그런 친구들이 얘 주변에 머물며 따르고 그랬잖아.
때때로 아들이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본인 스스로 그걸 떨쳐내질 못하고.
자기가 안 도와주면 걔들은 어떻게 하냐는 식이었으니까.
웃기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일들도 많았는데 그렇지?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 기억나?
당신도 내 이야기 듣고 엄청 웃었잖아. 기억하지?
학부모 상담주간이 있어서 갔는데
큰애 그림이 반 뒤 게시판에 전시가 되어 있었어.
선생님이 아이가 그림도 잘 그린다고 칭찬을 하셨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가,
"선생님께서 형@는 뭐든지 칭찬을 많이 하시더라.
그림도 걸려있던데?
잘 그린다고 칭찬하시더라고."
그랬더니 아들 왈,
"엄마, 선생님이 엄마가 왔는데 그냥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지
그럼 못한다고 해?
나보다 잘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애가 영감 같았어. 정말.
5학년 때 담임은 학부모 상담 주간이라 갔더니
"목사님 가정이라고 집에서 너무 다른 친구들한테 양보하고 배려하라고
자꾸 그렇게만 가르치시면 아이가 힘들 수 있어요 어머니.
형@는 너무 애들한테 다 양보를 해서 친구들은 좋아하지만
제가 볼 땐 형@가 너무 안타까워서요."
엥? 무슨 말씀이시지?
좀 당황했었어 그때.
전혀 몰랐지. 걔가 그러고 있는지는...
집에 와서 물어봤더니.
"엄마, 우리 아빠가 목사님인 거 애들이 다 알고.
우리 교회 나오는 애들도 있는데.
내가 어떻게 해. 잘해줘야지..."
헉!
준비물 같은 건 여유 있게 챙겨가서 안 가져온 친구들 있으면
나눠주라고도 했었지만.
누가 괴롭히거나 할 때는 한두 번은 몰라도
그냥 두면 안 된다. 혼자 안되면 엄마 아빠한테 꼭 말해라.
학교는 안 가도 된다.
막 이렇게 이야기했고.
때때로 나는 누가 혹시라도 막 때리거나 하면
너도 때려도 되는 거다.
책임은 엄마가 진다 그런 이야기도 했었거든!
암튼 그날 학교 가서 좀 혼나고 와서 기분이 별로였던 기억이 나고.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했던 것 같아.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거의 전체 1등을 놓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본인이 자신에 대한 목표치가 너무 높아졌어.
우리도 뭐 기대를 하게 된 게 사실이었지.
예상치 못하게 입시에 어려움을 겪으며 아이가 많이 힘들었잖아.
우리도 참 힘들었다. 옆에서.
뭘 해 줄 건 없고.
서울대 1차 붙고 그 뒤로 고난의 연속
학원은 잘 안 다니고 혼자 하려고만 하는 애라
재수학원도 안 가겠다고 하고 집에서만 그렇고 있으니.
보는 우리도 속이 터졌고 마음이 아팠지.
당신은 더 힘들었겠어.
그걸 더 많이 봤으니까.
재수 때 납치당한 한양대를 딱 일주일 다니고
보따리 싸서 다시 내려왔을 때
참 어이가 없어서.....
하지만 우리가 뭘 어쩌겠어.
본인이 해온 세월이 있어 포기가 안된다는 것을...
그렇게 또 1년이 지나고
작년엔
우리 모두 힘든 시간을 보냈잖아.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아 엄마 따라다니느라 힘들었고. 3월이 지나도록
자리 잡고 공부를 시작할 수가 없었고.
아빠를 잃고 정신적으로 무너진 동생도 챙겨야 하다 보니
이래저래 많이 힘들었던 거야.
나는 이제 더 버틸 힘이 없었고.
아들이 빨리빨리 자기 인생 자리 잡고 살길 바라는 마음이라.
이제 그만!!!!
외쳤지. 먹히더라고. 감사하게도.
본인도 이제 할 만큼은 했다고 생각하는 눈치고.
그 새
주님께서 하실 일 많이 하셨고. 아이 통해서.
아이도 그동안 컸고.
그래서 오늘 드디어 제대로 대학생활이 시작된 거야.
여보.
당신 절친 성덕교회 이목사님이랑 진짜 1년 만에 통화했나 봐.
아이들 대부노릇해주시겠대.
힘닿는대까지 당신 자식들이 더 생겼다 생각하고 있다고.
둘째도 올라오게 되면 와서 쓰면 된다고.
그게 당신 보내고 주님이 주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씀만이라도 너무 감사한 일이지.
나는 많이 헤매고 있고
애들은 좋은 교회 목사님 만나 많은 사랑받고 있다고 했더니
"사모님은 더 헤매셔도 되고요.
마음이 좀 편해지시길, 잘 버텨주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시대.
그렇게 이야기해 주시니 고맙더라고.
난 다들 나한테 뭐라 할 것 같아 무섭거든.
아무튼 애가 갈 데가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기숙사도 신입생이 아니라 안된다고 하지.
학사관도 마땅한 자리가 없어 걱정이었거든.
방을 구해주는 건 정말 어림도 없는 일이잖아.
당신 덕분이네. 다....
나 때문에 잘 된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게 좀 그렇다...
수업 시간표도 잘 짰대.
목요일까지 수업하면 내려올 거야.
와서 과외도 하고.
교회도 섬기고
청소년 집회도 섬기고.
다시 월요일 아침에 올라가고.
일단 이번 학기는 그렇게 해 보기로 했어.
바빠지면 못 온다 하겠지.
억지로 되나.
지금은 여기에만 마음이 가득해서.
일단은 그렇게 하라고 했어.
여보. 더 집이 많이 비겠어.
그게 제일 걱정.
우리 냥이 솔이도 걱정.
혼자 종일 있어야 할 텐데.
당신이 있으면 딱인데.
아무 걱정이 없는데.
왜 그리 빨리 급하게 부르셨을까?
또 결혼기념일이 다가와 여보.
이게 무슨 일인지?
당신은 거기서라도 당신 똑 닮은 길치 아들
서울 가서 길 잃지 않게 기도 해줘.
학교생활 잘 적응하도록 같이 있어주고.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