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인의 결혼식에 갔어요.
지방에서 해서 기차를 예매하고
아침 일찍부터 용산역으로 갔지요.
저의 일상은 아주 단출해요.
매일 집과 아르바이트하는 편의점만 왔다 갔다 하죠.
앞머리는 핀으로 넘긴 채 맨얼굴에 마스크,
운동복에 두툼한 카디건을 걸치고
슬리퍼를 신고 다녀요.
혼자 매장에 우두커니,
교대할 때만 잠깐 대화를 나눌 뿐
저는 제 할 일만 하면 되어요.
무료하다면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난 날이지요.
결혼식에 가려고
화장에 귀걸이에 머리도 손질했어요.
슬랙스를 꺼내 입고
마지막이 언제였는지
가늠이 안 되는 코트도 꺼냈어요.
뽀얗게 먼지 쌓인 구두는
물티슈로 한 번 쓱 닦고 신었어요.
무궁화호를 타고 3시간을 달려서
낯선 곳에 도착했어요.
결혼식장에서 옛 지인들을 만나 어색하게 웃고
신부에게 축하를 건넸어요.
모든 것이 밝았고 환했어요.
다 같이 식사를 할 때였어요.
오랜만에 만난 사이에 으레 있는
근황토크가 시작되었지요.
구석에 앉은 저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지금 무슨 일해? 아직도 그 회사 다녀?”
누군가 제게 물었어요.
“아, 아니. 그냥 카페에서 일해.”
“ㅇㅇ이가 재능도 많고 잘하는 것도 많잖아.”
받아들이기엔 과한 칭찬을
눅눅한 튀김과 겨우 삼켜 넘겼어요.
그날 일과는
오전 10시 용산역에서 출발해서
저녁 7시 집에 도착하는 걸로
끝마쳤지요.
‘나는 왜 그때 그런 말을 했을까?’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을
왜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싶었어요.
과거에는 일을 하지 않고
쉴 때도 쉰다고 당당하게 말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거짓말을 했어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보다는 ‘바리스타’가
소위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나 봐요.
편의점 아르바이트 하기 전엔 1년 정도
카페에서 일하긴 했거든요.
혹시나 질문이 깊어지면
그때 기억을 회상해서 대답할 생각이었죠.
결국 나라는 존재는 같은데
그걸 외면한 건 아닌가,
그때 나는 왜 나를 부끄러워했을까 했죠.
알맹이는 같은데
저는 저 자신을 겉으로 포장하고 싶었나 봐요.
결혼식이라는 공간, 지인들,
엄밀히 따지면 안부도 잘 묻지 않는 사이의 사람들,
먼 지인과 더 먼 지인들 사이에서.
회사를 다니는 그들은
항상 멋진 옷을 입고 화장도 예쁘게 하겠지요.
전 그날이 애를 써서 저 자신을 포장한 날이었지만요.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은 위축되지 않으려는
나름의 발버둥일지도 모르겠다 싶었어요.
그러면서도 제 자신이,
거짓말을 한 제 모습엔 실망했고
비겁하다고 여겼어요.
그들은 저와 헤어진 뒤로 저를 잊었을 테고
저라는 화제는 그들에게
인터넷 가십거리 보다 못할 텐데
왜 나는 그렇게 행동했을까 싶었어요.
편의점에 진열된 상품은
소비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전문가들이 선별한 이름들이
자기주장을 하는 것 같아요.
어니언맛, 제로슈가, 빠다, 갈릭 등등
일부러 영어를 쓰기도 가벼운 단어를 붙이기도 해요.
‘버터가 되고 싶은 빠다’
‘슈가가 되고 싶은 설탕’
‘어니언맛이 되고 싶은 양파맛’
결국은 똑같은 건데
불리는 상황과 부르는 사람에 따라서
뉘앙스가 달라질 때가 있어요.
물론 명명하는 것의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죠.
그러나 겉치레에만 집중하다 보면
중요한 걸 놓치기 일쑤예요.
결국 나라는 사람은 그대로인데
괜히 겉모습만 거대하게 만든 꼴이랄까?
그럼 그 겉모습을 스스로가
감당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누군가 제게 무슨 일 해?라고 물으면
이제는 당당하게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가까운 사람들한텐 솔직하게 말해도
부끄럽지 않은데
어중간한 사이의 사람들한테는 아직 무리인가 봐요.
언젠가 다시 질문을 받은 날까지
전 세 가지 선택지를 고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이대로 안주하다가 또다시 거짓말을 하든가
아니면, 그때까지 부럽지 않게 맷집을 쌓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일을
도전해서 결과를 만들어 내거나.
ps. 오늘 아기 고양이를 구조해서
그림 작업을 완성하지 못했어요.
그림은 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빠르게 추가할게요.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