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없는 그림책 28
#
산 안쪽 깊숙한 곳,
바람만 들락거리는 작은 오두막에 지혜로운 노인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사다리 선생’이라 불렀다.
오두막 벽에는 크고 작은 사다리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
어느 날, 서로 다른 고민을 가진 세 사람이 노인을 찾아왔다.
“선생님, 인생을 잘 살려면 우리가 뭘 배워야 하나요?”
#
노인은 세 사람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각자에게 사다리 하나씩을 건넸다.
첫 번째 사람에게는 발판 사이가 멀찍한 사다리,
두 번째 사람에게는 다리가 딱 하나뿐인 사다리,
세 번째 사람에게는 흔들리는 줄사다리였다.
#
“이 사다리들을 들고 마을로 가서 일하게.
답을 찾으면 다시 와서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세 사람은 의아했지만 각자 사다리를 들고 산을 내려갔다.
#
첫 번째 사람은 성격이 늘 급했다.
뭐든 빨리 하려고 서두르다가 실수를 했다.
마을 과수원에서 사다리를 세우고는,
예전처럼 한 번에 훅 두 칸을 올라가려 했다.
그 순간, 쿵!
흔들린 사다리에 몸이 휘청하며 사과바구니가 와르르 쏟아지고 말았다.
#
그때 그는 처음으로 사다리를 천천히 올려다보았다.
“한 번에 한 칸씩 올라가야 하는데…
내가 너무 서둘렀어.”
그날 이후 그는 모든 일을 '한 칸씩' 해보기로 했다.
#
두 번째 사람은 뭐든 혼자 해야 직성이 풀렸다.
“나 혼자 하는 게, 편하고 빠르니까!”
하지만 노인이 준 사다리는 다리가 하나뿐이어서
어디에 세워도 비틀비틀 쓰려졌다.
몇 번을 혼자 세워보려 했지만 사다리는 계속 넘어졌다.
#
결국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부탁했다.
“혹시… 이거 좀 잡아줄 수 있어요?”
마을 사람들은 환하게 웃으며 사다리를 잡아주었고,
그제야 사다리가 꼿꼿이 섰다.
그는 처음으로 함께 하는 것의 기쁨을 느꼈다.
“혼자 하는 게, 편하고 빠른 건만은 아니네.”
#
세 번째 사람은 힘이 장사였지만,
조금만 지루해도 금방 포기하는 버릇이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줄사다리는
잡고 버티지 않으면 단 한 걸음도 오르지 못했다.
#
새집을 고치려고 나무에 줄사다리를 걸었는데,
두 팔이 후들거리고 땀이 났지만
떨어지지 않으려면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한 칸씩 올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꼭대기에 닿는 순간,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어? 내가… 여기까지 올라왔어!”
그도 스스로 놀라 입을 벌렸다.
#
그렇게 석 달이 흐른 어느 날,
세 사람은 다시 산을 올라 노인을 찾아왔다.
노인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세 사람의 표정에 답이 다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
첫 번째 사람은 차분해졌고,
두 번째 사람은 주변을 살필 줄 알게 되었으며,
세 번째 사람은 눈빛이 한층 더 단단해져 있었다.
#
노인은 세 사다리를 모아 세워두며 말했다.
“인생을 잘 살고 싶다면 이 사다리를 기억하게.
한 걸음씩 정직하게,
서로 기대며 함께,
그리고 끝까지 버티는 것.”
#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저마다의 길로 향했다.
그들은 계속 살아가면서
마음이 조급해질 때, 나 혼자 버티려 할 때, 쉽게 포기하고 싶을 때,
가만히 사다리를 만져보았다.
그러면 노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듯했다.
*
지혜로운 노인은 나에게 어떤 사다리를 건네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