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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마을 새 식구

그림 없는 그림책 27

by 수형

시계 마을 새 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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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시계 마을에 새로운 식구가 생겼습니다.
그건 아주 작고 가느다란 시계 바늘 하나였어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 시계 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식구가 생겼다는 소식에 무척 기뻐했습니다.

작은 바늘이었지만,

마을에는 언제나 일손이 모자랐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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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시계 마을 사람들은 점점 실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새 식구가 좀처럼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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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새 식구는 말도 거의 하지 않았고,
혼자서 조용히 있는 걸 좋아했습니다.

무엇보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성격이 문제였죠.


바쁘게 돌아가는 시계 마을 사람들에게
그런 모습은 참 답답하고 불만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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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마을에서 가장 성격이 급한 초침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습니다.


“저런 사람은 우리 마을에 필요 없어요!
일도 안 하면서 괜히 자리만 차지하고 밥만 축내잖아요.
어서 내쫓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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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분침도, 점잖은 시침도,
그리고 시계 마을의 열두 숫자들도

초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맞아.

저 친구는 숫자들처럼 제자리에서 시간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우리처럼 움직이면서 일하는 것도 아니잖아.”


새 식구는 그저 게으르고 쓸모없는 존재처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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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사는 숫자 ‘열둘’만은
그 바늘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았습니다.

‘열둘’은 조용히 생각했어요.


“새 식구는 왜 말도 없고 조용하지?
혼자만 있으면 지루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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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정오가 되자
숫자 ‘열둘’이 깜짝 놀랄 만한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 시계 마을에 종을 달자!
정해진 시간이 되면 ‘땡!’ 하고 종을 울리면
중요한 시간을 절대 잊지 않을 거야!”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정말 멋진 생각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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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곧 걱정이 생겼습니다.


“그 종을 누가 쳐?”


“스물네 시간이 지나야 한 번 칠 수 있잖아.
그렇게 오래 한 자리에서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스물네 시간이나?

난 못 해!"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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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숫자 ‘열둘’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 일을 새 식구에게 맡겨보면 어떨까?”


모두가 놀랐습니다.

“저 친구가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차피 다른 사람은 아무도 원하지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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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새 식구는 정말 놀라울 만큼
그 일을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정확하게 종을 울렸고,
덕분에 시계 마을에서는

중요한 시간을 놓치는 일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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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계 마을 사람들은 그 누구도

새 식구를 쓸모없는 바늘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새 식구에게

자명종 바늘이란 이름도 만들어주었습니다.

자명종 바늘은

시계 마을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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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새 식구의 약점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숫자 '열둘'의 마음 덕분이었습니다.


그 마음이 시계 마을을

더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

존재에 대한 겸손한 시선.

새로운 우주를 발견하는 아름다운 인내와 열정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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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