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없는 그림책 29
#
아주 오래전,
다른 어떤 검보다 단단하게 빚어진 한 검이 있었다.
그 검의 바람은 단순했다.
가장 강한 손을 만나서
가장 강한 검이 되는 것.
#
어느 날,
거인 같은 사내가 그 검을 잡았다.
압도적인 힘.
누구도 맞설 수 없는 존재.
검은 확신 했다.
“이 손이라면, 나는 틀림없이 최고가 될 거야.”
#
거인은 검을 휘두르며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취했다.
힘과 힘이 겨루는 세상에서
검은 거인과 함께 언제나 승리했다.
검은 자신을 최고의 검이라고 믿었다.
#
그러나 어느 날, 한 목동이 나타났다.
손에는 돌멩이 몇 개뿐.
작고, 약해 보이고,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그는 거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
돌 하나가 날았다.
그리고 거인은 쓰러졌다.
검은 단 한 번도 쓰이지 못한 채,
땅 위에 떨어져 있었다.
목동은 떨어진 검을 주워
거인의 목숨을 끊었다.
#
'이건 뭐지?'
검은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강한 손을 만나면 강해질 것이라 믿었지만,
정작 쓰러진 것은 그 손이었고
자신은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
'내가 뭘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지?'
#
검은 성전으로 옮겨졌다.
전쟁의 소리는 사라지고, 고요만이 남았다.
검은 그 속에서 마음을 비우고
잠잠히 머물렀다.
'진정 강한 것은 무얼까?'
#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한 남자가 성전에 들어섰다.
겉보기엔 초라했고, 세상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는
이상한 평온과 단단함이 있었다.
#
검은 금세 그를 알아보았다.
예전에 거인을 쓰러뜨린 자,
그 목동.
청년이 된 그는
여전히 정의의 편에서 싸우고 있었다.
그가 검을 손에 잡았다.
#
검은 그와 함께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최고’가 되려는 욕망이 아닌
옳은 일을 위해 쓰인다는 보람이
검을 더 활력 있고 빛나게 했다.
#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은 그 청년을 왕이라 불렀다.
다윗왕.
그리고 그의 곁에서 함께 싸운 검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왕의 검으로 불리게 되었다.
'아, 내가 왕의 검이라니...'
*
내 칼자루를 누구 손에 쥐어줄 것인가
내 삶의 방향을 어디로 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