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노라면 May 31. 2022

삼십 세 - 최승자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내 꿈은 말이야, 위장에서 암세포가 싹트고

장가가는 거야, 간장에서 독이 반짝 눈뜬다.

두 눈구멍에 죽음의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

피는 젤리 손톱은 톱밥 머리칼은 철사

끝없는 광물질의 안개를 뚫고

몸뚱아리 없는 그림자가 나아가고

이제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은

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 묻고

흰 손수건이 떨어뜨려지고

부릅뜬 흰자위가 감긴다.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 우리 철판깔았네


삼십 세 / 최승자

--------------------------


삼십 세라는 시에서 최승자 시인은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흰 손수건 떨어뜨리고, 부릅뜬 흰 눈자위 사이로 그렇게 서른은 죽음과 삶 사이에서 비집고 온다고 합니다.


거칠 것 없던 청춘을 보내다, 어느 날 서른을 마주합니다.

꿈을 꾸던 눈꺼풀은 번쩍 뜨이고,

우스워 보이던 세상의 문은 이제 밀기에도 버겁고,

의기소침해진 굽은 어깨가 출근길 차창에 비치고,

아무리 달려도 허우적거리기만 하는 듯한 그런 서른을 맞이합니다

이제 꿈을 깨고 세상을 보아야 하는 서른을 맞이합니다

 

서른만 그렇게 올까요.

마흔도 쉰도,

그렇게 위태하고 아슬하게 내 삶의 단층을 이루며 다가옵니다.

하나의 시기를 접고 건너가는 시기, 사춘기에서 서른으로, 서른에서 마흔, 마흔에서 쉰으로, 나이의 단층을 넘어가는 시기를 말이죠.


그 시기엔 모든 것이 예민해집니다.

그 시기엔 많은 것이 불안해집니다.

겪어보지 못했기에, 예상하지 않았기에, 모든 것이 흔들립니다.

익숙하던 시절과는 다른 새로운 시기로 넘어갑니다.


그 불안한 단층 사이로 또 한 걸음 내딛습니다.

때론 그 단층을 견디지 못하고,

때론 그 단층을 훌쩍 넘으며,

그렇게 우리의 서른은, 마흔은, 쉰은

우리의 시간은,

휘청이며 흔들리며 다가옵니다.

단층의 사이에 양발을 걸친 채,

주저앉을 수도

그저 나아갈 수도 없는,

처음 맞는 '서른' 같은 그런 오늘입니다.

 

세월의 단층에서 서성거리는,

그 막막함에 주춤거리는,

모든 이들의 오늘을 응원합니다.


#삼십세 #최승자 #서른 #단층 #세월

#사노라면 #사는이야기 #손그림 #감성에세이 #시  #수묵일러스트 #묵상 #묵상캘리 #김경근 #캘리에세이

이전 16화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 이정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