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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 이성부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비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목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봄- 이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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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봄의 시를 쓰기엔 이른듯했는데, 오늘 날씨로 봐선 봄이어도 한참 지난 봄 같습니다.


살아온 계절과 변한 계절의 틈 사이에서 여전히 혼란스러운 시절입니다.

딱히 기후온난화로 인한 계절의 변화까지 이야기하지 않아도, 봄이란 계절이 원래 정체불명의 변덕스러운 계절입니다.

그러기에 기후온난화는 없었을 당나라 시기에 이미 춘래불사춘 春來不似春을 이야기했으니 말입니다.


그 봄 같은 날씨에 이성부 님의 봄 한 구절을 그려봅니다.

봄이란 녀석이 이렇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제 할 일 다하고, 늦잠도 자고 게으름도 피우다, 바람이 겨우 깨워야 눈 비비며 어기적 어기적 그렇게 오는 이 녀석이 봄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두 팔 벌려 반깁니다.

상처하나 어깨에 얹고, 흉터하나 손 끝에 그린채,

먼 길 돌아 먼 데서 그렇게 세월을 이기도 돌아온 봄이니 말이지요.

그 봄에서 당신을 봅니다.

먼 길 돌아 온 그 봄을 안아 봅니다.

먼 길 돌아 온 당신을 안아 봅니다.

그렇게 가슴에 봄을 들여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가슴에 따스한 봄기운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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