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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말리기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가게에 쓸 자몽청을 담급니다.

자몽을 깨끗하게 씻고 껍질을 벗겨낸 후, 자몽 속을 알알이 뜯어내어 설탕에 재워 놉니다. 제법 손이 많이 가는 공정이지만 맛있는 과일청을 내놓기위해 아내가 고집하는 방법입니다.


자몽 한 박스가 도착했습니다.

과일을 씻으려고 자몽을 꺼내는데 바닥에 깔린 한 알이 곰팡이가 올랐습니다. 선별과정을 거쳤을 텐데 이런 게 끼어있습니다. 포장과정중에 바닥에 눌려서일까요.

똑같이 자라 똑같이 수확했어도, 어떻게 보관되느냐에 따라 어떤 것은 멀쩡하고 어떤 것은 이리 곰팡이가 생깁니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잘라내면 속이 상한 것도 있습니다. 과일은 이렇게 참 속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과일만 그럴까요.

아마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일겁니다.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낸 친구들이라도, 세월이 지나 만나보면 삶은 다 제각각입니다.

착하고 재미있던 친구가 우울하고 외롭게 지내기도 하고, 조용하던 친구가 활달한 영업직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당황스러운 건, 착실히 살듯한 친구가 사기꾼의 삶을 살거나 정치 편향적인 외골수 꼴통이 되어있는 경우입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나름대로의 삶의 굴곡이 있었겠지요

각자가 머물던 시간에 나름대로의 빛과 어둠이 배었겠지요.


요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평범한 국민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곰팡이 슨 자몽 한 알을 집어 든 것처럼 황당합니다.

저들도 한때는 귀한 자몽 열매였을 테고,

저들도 한때는 싱그러운 초록이었을 텐데,

어쩌다 저렇게 곰팡이 가득한 모습으로 변해있을까 하고 말이지요.


알수 없는 과일 속처럼, 우리네 마음 속도 정말 알수 없습니다.

그나마 상한 자몽은 들어내어 버릴 수나 있지만, 세상의 상한 마음들은 어찌해야 할는지요.


내 마음부터 들여다 봅니다.

내 속부터 들여다 봅니다.

혹여나 나도 모르게 곰팡이 피어 오르진 않는지

오래간만에 부는 선선한 바람에, 습해져있던 가슴 한편 말려보는 오늘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가슴이 싱싱한 과일향으로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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