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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물든 단풍처럼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봄꽃은 힘찹니다.

봄꽃은 시작입니다

세상을 향해 자유롭게 뻗어 오릅니다.

그리 세월이 흘러

지난여름의 뜨거움을 견뎌내고

지난여름의 폭우를 맞아내고

지난여름의 태풍을 온몸으로 견뎌 낸 후

온몸에 세월을 담아

온몸에 시간의 물을 들여

가을 단풍이 듭니다

단풍을 보면 지난 세월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합니다

우리네 삶도 그럴까요

뜨거운 청춘의 에너지가 가득하던 시절을 보내고,

이젠 하고 싶은 일보다 해 온 일이 더 많아지듯,

할 수 있었던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가슴속엔 희망의 자리보다 추억의 자리가 점점 더 커지고,

새로운 세상에 두근거리는 마음보다

세월의 단층을 넘는 심신의 변화에 낯설어지고 어색해지는,

반짝이던 감성보다 신체적인 어색함이 더 짙어지는 나이가 되면,

그렇게 우리에게도 가을이 온 거라고 느껴질 때

어느새 우리에게도 잘 물들 단풍 같은

각자의 빛이 입혀져 있을 겁니다


우리가 지내온 여름의 뜨거움과,

우리가 맞아온 여름의 소나기와,

우리가 견뎌온 여름의 태풍을 그대로 몸에 새긴 채,

각자의 아름다운 빛으로 물들어 있을 겁니다

그 어느 날에,

파란 하늘을 향해 올라가던 떡잎의 시간보다

가지 끝에서 아래를 내려보는 시간이 더 많아지는

단풍의 시간이 올 때,

나는 어떤 빛으로 물들어 있을지

그때의 내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다울지

그때의 내 단풍엔

지난 세월을 이겨낸 고운 빛이 물들어 있을지

이 가을에 생각해 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아름다운 단풍을 응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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