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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채 Oct 25. 2020

같은 부재

우리는 가족이라서, 서로를 절대 이해할 수 없다.

휴지통 밑바닥에 깔린 라면봉지


 냉장고를 열자 샐러드 야채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날이 더워 샐러드 야채를 잔뜩 사다 두었건만 날씨가 쌀쌀해 더이상 차가운 샐러드는 먹고 싶지가 않다. 스프를 끓여먹고 남은 돼지고기 덩어리, 반토막 난 당근, 한 번씩 먹고 남은 샐러드 드레싱, 새로 사다둔 후무스, 아몬드우유..출출한 배를 채우기엔 부족해보이는 것들 뿐이다. 퇴근하면서 장을 보려고 했지만 업무가 너무 많았던데다 부고문자에 정신이 팔려 마트에 들려야 한다는 걸 새카맣게 잊고 집에 왔던 거였다.


'오늘은 어쩔 수 없다.'


 찬장 문을 열고 안쪽 구석에 감춰둔 신라면 한 봉지를 슬쩍 꺼낸다. 한동안 위염으로 고생을 했던 터라 한인마트에서 잔뜩 쟁여둔 라면을 눈에 띄지 않게 숨겨놨었다. 하지만 이렇게 날이 서늘하면 라면이 절실해진다. 이곳 음식들 중에도 속을 따듯하게 데펴줄 음식은 있다. 그래도 속이 뻥 뚫리는 개운한 맛은 라면에서밖에 느낄 수가 없더라. 계란까지 깨 넣어 끓인 라면을 냄비째로 식탁에 올려둔다. 그 옆에는 조금씩 아껴먹던 배추김치를 나란히 올려놓는다.


 혜인은 평소 라면을 두 개씩 먹었다. 하나만 먹어서는 배가 전혀 차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내 상식으로는 라면 하나로 배가 부르지 않을 만큼 배가 고픈거라면, 든든하게 밥을 챙겨 먹는 게 맞았다. 심지어 혜인은 라면을 일주일에 두 번씩 먹었다. 오랜 자취경험 끝에 깨달은 건, 건강이란 게 끝도 없이 망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부터는 틈틈이 과일과 채소를 사다먹었고 패스트푸드를 줄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혜인은 입에서 땡기는 건 그게 무엇이든, 지금이 몇 시든 가리지 않고 먹었다. 언젠가부터 혜인은 라면을 먹고나면 내게 들키지 않기 위해 라면 봉지를 쪽지 모양으로 꼬깃꼬깃 접어 휴지통 밑바닥에 숨겨두었다. 하지만 혜인이 집안 곳곳에 묻은 라면 냄새까지 휴지통 속에 숨길 수는 없었고, 개코인 나는 혜인이 쳐 박아둔 라면 봉지 두 개를 번번히 찾아내곤 했다.



가족이 아니었다면 널 상종도 하지 않았을거야


 혜인이와 나는 같은 부모를 두었다는 것빼고는 모든 면에서 달랐다. 고등학교 시절 혜인이는 이과를, 나는 문과를 선택해 혜인은 자연대학으로, 나는 사회과학대학으로 진학했다. 혜인은 다리가 길었고 나는 허리가 길었으며, 피부가 하얗고 눈 밑에 애교살 없이 큰 눈을 가진 혜인과 달리 나는 까만 피부와 작은 눈, 그리고 눈 크기만큼 두터운 애교살을 가지고 있었다. 


 혜인은 최소한의 인간관계만 유지하며 틈만 나면 고향으로 내려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일주일에 3-4번씩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서울 곳곳을 쏘다녔고, 해외로 나갈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다. 혜인은 책 두 권만 들어도 어깨가 무겁다며 온갖 애교를 떨어 결국 옆사람이 제 가방을 들게 했지만, 그러면서도 절대 미움을 받지 않았다. 반면, 목석같은 나는 아빠 어깨에 걸친 쌀가마니를 넘겨 받아 거뜬히 들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이었다. 탁구부터 요가까지 몸을 움직이는 일이라면 모두 좋아하는 나와 달리 혜인은 와식생활을 즐겼다. 매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부모님께 받는 용돈을 만 원 한 장 줄이지 않았지만, 혜인은 용돈을 받지 않고 아르바이트비를 생활비로 쓰는 효녀였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자주 그런 말을 했다. 니가 가족이 아니었다면 상종도 하지 않았을거야. 우리는 가족이라서, 이해하기 힘든 서로를 평생 어거지로 부둥켜 안고 살았다.

 


혜인은 엄마에게 더 잘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혜인은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시작했다. 하루에 12시간을 넘게 잤고, 자지 않는 시간에는 울거나 누워있었다. 윤기가 흐르던 피부엔 가뭄이 졌고, 영혼이 할퀴고 간 자리에 난 상처처럼 실핏줄이 벌겋게 일어난 눈동자로 천장을 가만히 올려다봤다. 한동안 혜인의 눈은 딱 두 가지 상황에만 기운을 되찾았다. 나와 아빠가 엄마 물건에 손을 댔을 때, 그리고 아빠가 한 시간 이상 연락을 받지 않았을 때. 혜인은 엄마가 죽은 날 아침에 벗어두고 간 잠옷 조차 치우지 못하게 했다. 엄마가 옷가지들을 빨아 개어놓은 옷장문을 열지도 못하게 했다. 아빠랑 몇 개월에 한 번씩 통화를 했던 아이가 밤낮으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댔고, 아빠가 한 시간만 카톡을 보지 않아도 당장 실종신고를 할 기세로 난리를 쳤다. 혜인은 스스로를 야금야금 갈아먹었고, 그만큼 살도 야금야금 빠져 나갔다.


 혜인은 엄마에게 더 잘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외할머니 장례식 때 엄마에게 청심환 하나 사다 주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엄마를 떠내보낸 우리의 엄마가 힘든 걸 알면서도 학교 수업때문에 서울에 있었던 걸 후회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생업에 뛰어들지 않고 대학에 간 걸 후회했다. 엄마에게 보약 한 채 지어주지 못했던 걸 후회했다. 엄마와 나이대가 비슷해보이는 아줌마들을 볼 때마다, 머리가 하얗게 새고 허리가 굽었는데도 여전히 정정해보이는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혜인은 분노했다. 왜 우리 엄마만 60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죽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질리지도 않고 되물으며, 가슴에 난 상처를 손톱으로 벅벅 긁어댔다. 



나는 엄마와 계획했던 것들을 하지 못해 아쉬웠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고스란히 위염으로 이어지는 나는, 이상하리만치 잘 먹었다. 삼시세끼를 모두 먹어도 허기가 졌다. 장례식이 끝난 바로 다음 주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던 식당에서 다시 서빙을 했다. 취업이 급해져 학교 모의 면접 프로그램에도 성실히 출석했다. 모의 면접관들은 나를 두고 밝아 보인다며 입을 모아 칭찬했다. 여지껏 들어본 가장 수치스러운 칭찬이었다. 주말엔 고향에 내려가 개판 오분전인 집을 치우고, 새벽같이 일을 나가는 아빠가 평일에 꺼내 먹을 수 있도록 반찬과 찌개를 준비했다. 틈틈이 엄마의 흔적도 정리했다. 주민센터에 가서 사망신고서를 제출하고, 보험회사와 연락해 엄마 명의로 된 보험계약도 정리했다.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셨고, 마치 엄마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엄마와 싸웠던 이야기를 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울때마다 눈물을 쏟았던 나는, 그 모든 것들을 하면서도 울지 않았다. 


 엄마와 계획했던 것들을 하지 못해 아쉬웠다. 자가였던 아파트를 팔아 빚을 갚고도 갚아야 할 빚이 남아, 월세집에 근근히 살며 겨우 빚을 청산한 우리는 다시 원래 살던 아파트로 이사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이사갈 집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한껏 들뜨곤 했다.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었다. 첫째딸이 스물 다섯살이 된 기념으로 가족반지를 맞추고 싶어했었다. 먼훗날 우리가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꼭 당신께서 그 아이들을 키워주고 싶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남의 일인데도 엄마는 그렇게나 열정적이었다. 대학시절 이 도시에서 6개월을 보냈던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 엄마에게 약속을 했었다. 취업을 하면 열심히 돈을 모아 가족 모두를 데리고 이곳으로 꼭 여행을 오겠다고. 이젠 그 모든 것들을 하는 순간에 엄마가 없을 거라는 사실이 아쉬웠다. 왜 우리 엄마만 60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죽었어야 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진 않았다. 쭈그리고 앉아 텅 빈 가슴을 지그시 바라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야. 엄마의 생이 거기까지 였던 거야.



같은 부재


 혜인은 몇 개월 내내 엄마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엄마라는 단어 조차 입에 올리지 않았다. 내가 엄마 얘기를 하려고 들면 손바닥으로 양쪽 귀를 틀어막았다. 혜인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몸 속 가장 깊숙한 곳에 쳐박아 놓고, 한 줄이라도 새어나올까 두려워 입을 고무줄로 꽁꽁 동여맨 사람처럼 굴었다. 라면을 먹은 걸 들키지 않으려 휴지통 밑바닥에 라면 봉지를 고이 접어 숨겨둘 때처럼.


 하지만 혜인은 몰랐다. 라면 봉지를 다른 쓰레기들 사이에 쳐박아 둔다고 공기에 밴 라면 냄새가 사라지진 않는 것처럼, 엄마에 대한 혜인의 그리움은 이미 혜인의 몸 밖을 비집고 나와 방바닥에 그 흔적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는 걸. 그리고 나는 그 조각들을 주워다 가장자리를 훑어보고 냄새도 맡아보며, 혜인의 마음은 이런 모양일까, 아니면 저런 모양일까ㅡ하며 끼워맞춰보곤 했다는 걸. 혜인은 내가 라면 냄새만 잘 맡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곪아갈 때 나는 쓰린 내도 곧잘 맡는다는 걸 알지 못했다.

 

 한 번은 점점 말라가는 혜인에게 제발 뭐라도 먹으라며 대뜸 소리를 쳤다. 그러자 혜인은 차갑게 말했다. "여기서 밥 잘 챙겨먹는 거 언니밖에 없어." 꾹 틀어막았던 혜인의 입을 비집고 흘러나온 그 조각에서, 나는 경멸의 냄새를 맡았다.


너는 엄마가 죽었는데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어? 
어떻게 밥을 그렇게 잘 먹어? 밥이 넘어가?
어떻게 친구들이랑 웃고 떠들지?
언니는 지금 지원서가 써져? 나는 공부가 안되는데?

 

 우리는 가족이라서, 같은 부재를 겪었으므로, 더욱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라면 한 냄비를 먹어치운 뒤 설거지까지 해치운다. 스프 봉지로 가스레인지 근처에 떨어진 라면조각들을 쓸어 라면 봉지에 담는다. 그리고 라면 봉지를 쓰레기 통에 대충 던져놓는다. 이제 혜인도 라면 봉지를 숨겨야 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조금 마음이 편해졌을까. 역시 라면은 먹는 게 아니었나 보다. 속이 더부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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