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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그모어 Mar 25. 2024

REPLACE YOUR ID CARD

사원증 대신 이거 어떠세요?

음,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제 이전 직장은 비영리 기업이었습니다. 그래도 비영리 쪽에서는 제법 규모가 큰 곳이었고, 나름 오래 운영된 곳이라 고연차 선배들이 많은 조직이었습니다. 제 또래가 소수고 40~60대 선배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었죠. 그 조직이 누린 영광의 시대는 창립 초기라, 선배들이 경험한 조직과 후배들이 경험한 조직 사이에 큰 간극이 있었어요. 라떼는 선배들에게 따뜻하고 고소한 우유커피였다면, 후배들에겐 그저 차게 식어버린 맹맹한 우유커피였던 것이죠.


그래서 좀 젊은 조직에서 일해보고 싶단 생각이 커졌습니다. 소위 우리가 ‘스타트업’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교류하고, 영어 닉네임으로 호칭하고, 타운홀 미팅을 통해 전사 방향성을 전달하며 서로를 으쌰으쌰 북돋아주는 그런 환경이요.


그리고 무엇보다 사원증. 입사지원서에 첨부했던 딱딱한 증명사진이 아니라, 다채로운 포즈로 자신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사진이 사원증으로 들어가는 곳. 그런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름 열심히 이직 준비를 했죠.


업무 중 타 회사로부터 날아온 입사제안서를 열어보는 감흥은 아마 한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아요. 여기를 뜰 수 있다는 해방감. 동시에 익숙한 사람들과 헤어지게 된다는 아쉬움. 물론 당연히 전자의 감정이 더 컸어요. 가슴이 벅차고 들떠왔으니까.


전 그렇게 퇴사 예정자가 되었습니다. 주변으로부터 아쉬움과 축하를 동시에 받았죠. 송별받는 분위기는 제가 여길 떠나려는 이유를 흐릿하게 만들었어요. 꽃도 받고 롤링페이퍼도 받고 식사도 참 여럿하고. 드디어 제 퇴사 공지가 올라왔을 땐 기대보다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셨죠. 저도 커뮤니티 게시판에 마지막 인사글을 올렸습니다. 꽤 촉촉한 마음으로요.


퇴사를 하고 2주 남짓한 입사 예정자로서의 삶은 정말 행복했어요. 우선 여자친구와 해외여행을 갔습니다. 일본. 스무 살에 맞이한 인생 첫 해외여행이 일본이었는데, 무려 16년 만에 일본을 다시 간 것입니다. 나고야를 갔는데 누구는 ‘노잼도시’라고 부르는 그 공간이 저에겐 적당히 조용하면서도 도시적이라 참 좋더라고요. 달달하고도 꿈같은 시간이었죠.


사진 기사님 덕에 돌을 맞이한 아기의 기분을 오랜만에 느껴볼 수 있었어요.


시간은 야속하게 어김없이 흐르고. 대망의 이직 회사 첫 출근 날. 오리엔테이션 후, 정말 제가 바라던 대로 사원증 사진을 인근 스튜디오에 가서 따로 찍는 일정까지 가졌습니다. 셔터 빛 앞에서 수줍게 손하트 포즈를 하며 어색하게 웃어댔던 기억이 있네요. ‘아 내가 이직을 했구나.‘ 사뭇 실감이 나던 순간이었습니다.


塞翁之馬


하지만 출근 이틀 차. 저는 전사적으로 구조조정 예정이라는 메일 내용을 받게 됩니다. 함께 일하게 될 팀원 분들 표정이 다 안 좋길래 처음엔 전 제가 무얼 잘못했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면 새로 온 제가 마음에 안 드나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구조조정 메일 때문이었어요. 혹여나 그 대상자가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회사 전체에 드리운 것이죠.


회사와 제가 유대감을 쌓아가기도 전에 이런 일을 겪으니 힘이 쭈욱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결론적으로 지금에 와서 보면 저는 그 대상자가 아니었지만, 언제든 그리 내쳐질 수 있다는 전제가 깔린 채 일을 해나가게 되었으니까요.

이 일은 제게 일종의 트리거가 되어, 필히 저는 ‘나의 것’을 해야겠다는 큰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때 제 머릿속에 스쳐간 것이 바로 DANSTORE​ 대표님의 사업 교육 모집 글이었습니다. 꽤 즉흥적으로 퇴근길에 연락드렸고, 꽤 즉흥적으로 그 주 주말에 청주를 찾아갔습니다(지금은 DANSTORE 매장이 서울 연남동에 있습니다).


그렇게 23년 2월부터 6월 초까지 주말마다 틈틈이 DANSTORE 대표님을 찾아가 배워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TAG MORE[태그모어]​입니다. 2023년 6월 12일 오후 7시에 온라인을 통해 오픈했습니다. 태그모어란 이름은 제가 기존에 인스타그램으로 새 옷 사면 달려있는 택을 버리지 않고 모아서 사진 찍어 올리던 계정, TAG MOA[태그모아]​에서 파생되어 지어진 이름입니다. 태그(TAG)가 곧 패션 아이템을 의미하며, 다양한 일본발 패션 아이템을 더 많이(MORE) 소개하겠다는 제 포부를 담아냈습니다.


OPEN 폰트를 한참 고민했어요. 참고로 왼쪽은 아버지 글씨 폰트입니다.


그렇게 회사를 다니며 태그모어를 동시에 운영해 온 지 어언 10개월 정도가 되었네요. 태그모어가 아직 부업이라는 이유로 구매하시는 분들에게 많은 양해를 드렸고(특히 당일 출고가 불가한 점), 저 또한 마음가짐이 어쩌면 어쩌면. 열심히 했다고는 하지만 솔직하게 직장이라는 울타리가 있으니, 그저 제가 좋아하는 일본을 오갈 수 있는 명목 혹은 수단 정도로만 여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가오는 2024년 4월 19일. 저는 손하트 포즈를 한 제 사원증을 반납하고 태그모어를 전업으로 맞이합니다. 이제 제 ID CARD는 TAG MORE 단 한 장뿐입니다. 당분간 ‘요 아이템에 요 이야기를‘ 연재는 태그모어 오프라인 매장 오픈기가 주된 내용이 될 것 같습니다.


치열하게 온 마음을 다해보겠습니다.

앞으로도 태그모어 많이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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