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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나 Oct 15. 2020

우리가 한 건 뭐였을까요?

001.  M에게

우리는 글을 쓰는 플랫폼에서 처음 만났다. 나는 M의 글을 무척 좋아했다.

M의 글이 업데이트 되면 알람이 오도록 설정해놓고, 새글이 올라오면 바로 달려가서 장문의 감상을 적었다.

대부분 "어떡해, 너무 좋아요!"라며 벽을 부수는 시늉을 하고, 당신은 천재라며 발을 동동 구르며, 나는 영원히 M의 팬이라며 깨방정을 떨며 중간중간 틈새 유머를 끼워넣는 식이었다. 글 쓰는 이를 동경하는 마음은 나의 오랜 버릇이었고, 그녀는 그 플랫폼에서 자신의 글만큼이나 작가로서 인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웃긴 사람이 되어서라도 튀고 싶었다. M의 눈에 들고 싶었다. 무해하게 유쾌한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다행히 M은 매번 정성스럽고 웃긴 댓글을 줄줄 쓰는 나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성공적이게도 이런 대댓글을 남겼다.


저, 보나 님의 댓글을 기다리게 되었어요!


작전 성공이었다. 그즈음 주로 쓰던 발랄하고 웃긴 일상 수필을 쓰던 나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새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엔 M이 내 글의 팬이 되었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두 종류의 글 사이를 오가는 나의 '갭'에 반했다고 했다. 평소에 몰랐던 면을 보게 되면 호감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은가. 차갑고 까칠해 보이던 사람이 섬세하게 날 챙겨준다든가, 마냥 해맑고 즐거워 보이는 사람이 진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든가. 물론 이걸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정말 운이 좋게도 나는 수많은 경쟁자를 제치고 M의 절대적인 호감을 얻었다. 왠지 어깨가 으쓱했다.


먼저 손을 내민 쪽은 M이었다. 댓글로만 소통하긴 답답하니, 모 메신저 계정을 파는 게 어떻냐고 했다. 그 제안을 받고 날아가듯 기뻤다. 메신저라니! 실시간으로 M과 대화할 수 있다니! 우리는 그 메신저에서 가명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M도 나도, 친구가 서로뿐인 메신저였다.

나는 아직도 그녀의 첫 인사를 기억한다. 그건 말이 아니라 사진이었다. 단어가 아니라 이미지였다. 키스의 사진. 뒤따라 온 말은 더 이상하고 뜬금없었는데, "저랑 결혼해주세요, 여보!"라고 했다. 나는 이것저것 건너뛴 갑작스러운 결혼 신청에 믿을 수 없을 만큼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M이니까, M이라서, 그녀라서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나는 "좋아요, 여보"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메신저로 서로의 취향을 끊임없이 공유했고, 같은 점을 찾으면 기뻐하고 다른 점을 찾으면 경탄했다. M과 나는 흡연자였고, 같은 담배를 피웠다. 우리는 독서를 즐겼다. 나는 음악 듣는 걸 좋아했고 M은 싫어했다. M은 고전문학을 읽었고 나는 현대문학을 읽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른 이의 취향을 아무런 장벽 없이 받아들였다. 그건 정말 놀랍고 황홀한 경험이었다. M이라는 커다랗고 신비하고 아름다운 우주가 내게 도착한 것 같았다.


생일도 챙겼다. 우리는 무엇을 갖고 싶은지 절대 물어보지 않았다. 어떻게든 서로를 놀래켜주려고 애를 썼다. 좋은 곳에 가면 서로를 떠올리고 기념품을 샀다.

그리고, 몇번 정도 만났다. 첫만남은 한국에서였고, 마지막 만남은 일본에서였다. 만남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자연스러웠지만, 서로를 마주한 우리는 예상치 못한 호칭의 문제에 부딪혔다. 우리는 서로를 이름으로 부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음, 뭐라고 부르죠? 여... 여보는 쫌 그렇죠?"


나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름으로 부를까요?"

"아, 보... 보나 씨?"


우리는 마주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웃으며 술을 마셨고, 선물을 주고 받았고, 언제 그랬냐는듯 호칭의 문제는 잊었다. 이름 대신 서로의 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난 보나 씨가 쓰는 글의 이런 구성이 좋아요. 마치 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환영 인사를 받는 것 같아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뮤즈가 되었다. 나는 M을 주인공으로 한 글을, M은 나를 주인공으로 한 글을 썼다. 나는 글을 완성했고 M은 완성하지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글을 쓸 수 없다고 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M은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일했다. 내가 연락을 하면 갑자기 독일로, 이탈리아로 가는 출국장에 있기도 했다.

서로가 알맞게 편안해졌을 때쯤, 뜻밖에 M이 영국에 정착하기로 마음 먹었노라 알려왔다. 나는 내심 섭섭했지만 내가 섭섭할 권리가 있는지 아리송했다. 사실은 내심 섭섭한 정도가 아니라 서러웠지만, 어느 정도 서럽고 서운하면 평범한 반응인 건지 우리 사이에는 그 지표가 없었다.


"그렇구나, 이제 자주 못 보겠어요. 시차도 있고."


그래서 비겁하고 안전하게 겨우 이 한마디만 했다. M은 영국으로 가던 날 한국 집을 정리했다. 나는 영국으로 M을 보러갈 계획을 세웠다. 그즈음 그녀는 영국의 온갖 맛있는 것들을 내게 보내며 편지를 쓰곤 했다. M은 그때까지도 내가 먹는 걸 아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었다. 나는 M이 보고 싶은 대로 보여지는 면이 있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굳이 음식은 내가 인생에서 가장 관심없는 것 중 하나라고 정정하지 않았다.


"저는 요즘 여보가 영국에 온다면 함께 가고 싶은 곳들을 적어두고 있어요."


함께 축구를 보러 가고 싶다고 했다. 스쿨버스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공원에 가고 싶다고 했던 것도 같다. 내가 좋아하는 비틀즈 관련 명소에 함께 가서 사진을 찍자고 했다. 자기 집에 게스트룸이 있으니 숙소는 절대 잡지 말라고 했다. 내가 있는 동안 최대한 모든 스케줄을 비워두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해 영국에 가지 못했다. 비행기 표값이 생각보다 높게 뛰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훗날을 기약했다. 내년 쯤에 영국에서 만나자고. 따뜻한 봄이 오면 맑은 런던 하늘을 함께 보자고.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가장 후회된다. 영국에서 M을 만났더라면 뭔가 달라졌을까? 물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란 언제나 해보지 않은 선택을 후회하는 어리석은 존재다.


생일에 그녀가 다섯 권의 책을 보내왔다. 그중 한 권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였다. 영국의 유명한 서점에서 샀는데, 나중에 꼭 내게 보여주고 싶다는 말도 함께였다.

책을 펼쳐보니 소네트 18번에 종이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손으로 직접 옮겨 쓴 번역본이었다.


내 그대를 한여름 날에 비할 수 있을까?
그대는 여름보다 더 아름답고 부드러워라.
거친 바람이 5월의 고운 꽃봉오리를 흔들고
여름의 빌려온 기간은 너무 짧아라. (...)


여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5월, 내 생일이었다.

이건 M이 축하해준 내 마지막 생일이 되었다.

1년 뒤 내 생일이 오기 전, M은 사라졌다.


마지막 만남은 M의 생일이었다. 겨울이었다. 우리는 일본에서 생일을 축하하기로 했다. 그녀의 생일은 1월이었지만, 자주 만날 수 없다 보니 조금 당겨서 서로의 일정이 겹치는 12월에 만났다.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늦은 시각이었고, 도쿄 치고는 옷깃을 여며야 하는 추운 밤이었고, 연말 분위기로 묘하게 달뜬 술집이었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취해 있었다. 나는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다같이 홀린 듯한 연말 분위기 덕분인지, 외국이어서 그랬는지, 하나도 창피하지 않았다. 어쩌면 M에게 불러주는 노래라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옆 테이블에서 생일이냐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때 나는 일본에 간 김에 만날 사람이 많았고, M은 체류일정이 매우 짧았다. 나도 그녀도 몇몇 사람들을 서운하게 하고 서로를 만났다.


"여보는, 인기가 너무 많아. 내가 먹여 살리고 싶은데."


M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해가 바뀌고 둘이 쓰던 메신저에서 그녀가 사라졌다. 카카오톡 메시지의 1은 몇달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M의 이름이 (알 수 없는 사용자)가 되었다. 그녀는 완벽히 사라졌다. 한국 핸드폰 번호가 남아 있었지만, 전화를 거는 건 무서웠다. M이 받아도 무섭고, 받지 않아도 무서울 것 같았다.

대신 나는 영국으로 편지를 보냈다. 고작 편지를 보내는데 몇만원이 들었고 코로나 때문에 몇주나 걸린다고 했다. 매일 내 편지가 어디까지 움직였는지 확인했다. 3주쯤 지났을 때 드디어 '배달완료'가 떴다. 영국의 우편시스템상, 편지가 반송되거나 수취인불명으로 뜨지 않고 배달이 완료됐다는 건 M이 아직 영국 그 주소에 살고 있다는 의미였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너무 기뻤다. 답장이 온다면 나에게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고 전하고 싶었다. 오지 않는다면, 어딘가에 당신이 살아 있어서 기뻐하고 싶었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어떻게 될까.


얼마 전에 영화 <윤희에게>를 보았다. 우리 중 누군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아니 우리 둘다 포기한다 해도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면 중년이 된 M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묻고 싶다.



M, 그때 우리가 한 건 뭐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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