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보나 Feb 24. 2021

쇼핑 중독에 걸리다

마음이 허해서 할 일이 없어서

텅.

문밖에서 뭔가를 던지는 소리가 나면, 나는 침대에 누워 그 물건이 무엇인지 추측하기 시작한다.

퍽,이 아니라 텅, 소리가 난 걸로 봐서 박스 포장이 아니라 비닐 포장일 확률이 높다. 비닐 포장이라면, 파손될 위험이 적은 의류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난 무엇을 샀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어쩌면 어젯밤 쿠팡에서 새벽배송으로 속옷 세트를 주문했을 수도 있다. 며칠 전 단골 쇼핑몰에서 원피스를 주문했을 수도 있다. 반려동물 쇼핑몰에서 고양이 장난감을 주문했을 수도 있다. 알라딘에서 책을 샀을 수도 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샀는지 머릿속으로 되짚어보지만, 헛수고다. 기억이 날 리가 없다. 요즘의 나는 뭐 하나 제대로 기억하는 게 없기 때문이다. 나는 왼쪽으로 눕혔던 몸을 오른쪽으로 돌린다.


나가서 확인해볼까?


왼쪽 귀에서 속삭이면,


하지만 귀찮은데.


오른쪽 귀에서 누군가 대답한다.

그래 봤자 중요한 물건도 아닐 것이다. 구매할 때는 너무 갖고 싶었지만 막상 받을 때 까먹는 물건이 내 인생에 그렇게 중요할 리가 없다. 나는 겨우 몸을 반쯤 일으키고 두 발을 침대 아래 바닥으로 내디딘다. 바닥은 배달음식 봉투들과, 테이프만 제거해서 윗부분을 열어젖힌 택배 상자들이 가득하다. 나는 그것들에 발이 걸려 넘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일어서지만, 결국 발로 상자 하나를 차고 만다. 속이 빈 상자가 툭, 슥, 소리를 내며 밀려난다. 이 상자에는 뭐가 담겨서 배달이 되었던 걸까.


상자 중 어떤 것에는 음식물이 들어있기도 하다. 주로 과일일 확률이 높다. 상자는 따뜻한 바닥에 방치되어 조금씩 썩어간다. 나는 그걸 보면서도 치워야지, 치워야지, 생각만 하고 오늘도 그냥 지나친다.


문을 살짝 열어 택배물을 스캔한다. 열린 현관문 사이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젠장, 오늘도 날씨가 좋다. 기분은 안 좋다. 우리 집은 햇빛이 잘 들지 않아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에도 어둡다. 그래서 문을 열 때마다, 우리 집이 채광이 안 좋다는 걸 온몸으로 실감한다. 그럼 기분이 더 상한다. 나는 택배만 들고 다시 어둠 속으로 숨어든다.


비닐을 뜯자 보이는 건 빈티지 의류다. 알록달록 도톰한 니트, 나풀거리는 스커트, 사장님이 서비스로 넣어주신 양말, 스카프 따위의 것들이 바닥에 펼쳐진다. 나는 포장을 대충 제거한 다음 입어보지도 않고 옷들을 옷방에 던져버린다. 옷방에는 이렇게 내가 입어보지도 않은 옷들이 쌓여만 간다. 입어본 옷과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이 거의 비등할 정도다.


인정해야 한다. 나는 쇼핑 중독에 걸렸다. 매일매일 무언가를 사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이 허전하다. 백수이자 집에만 머무는 히키코모리인 내가 물건을 산다는 것은 내가 아직 여기에 살아 있음을, 존재하고 있음을 외치는 행위에 가깝다. 물욕이 아니라, 돈을 씀으로써 내가 아직 이 사회의 일원임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스타 라이브 판매'에 푹 빠져 있는데, 판매자와 직접 소통을 하며 물건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나의 쇼핑 중독은 세상을 향한 소통 욕구라고도 할 수 있다. 누군가 봐주길.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살아 있음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런 욕망을 인스타 판매 방송으로 풀다니, 내가 생각해도 찌질하기 짝이 없다.


나는 모 방송에서 거의 VIP에 등극했다. 사람들은 내가 접속하면 '보나 님 오셨다!' '**방송 명예 사원 보나 님!' '보나 님 너무 재밌어요!' '보나 님 어제는 왜 방송 중에 잠드신 거예요?ㅋㅋ'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또 인정해야 한다. 쇼핑중독에, 인정 중독까지 걸렸다. 창피하지만, 묘하게 뿌듯했다. 내가 이 작은 커뮤니티에 자아 의탁을 하고 있다고 해도 좋았다. 이게 내 마지막 생명줄이자 소통의 창구였다. 우리 집에 입지 않는 옷들이 쌓여간 이유다.


물건을 사지 않으면 마음이 허전하고 허했다.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린 것만 같아서, 그 구멍을 물건으로 메우려고 했다. 그런데 그 구덩이는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아무리 물건을 가져다 쏟아부어도 도무지 차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소비로는 메울 수 없는 구멍이었다. 그래도 가끔 물건을 그 구덩이 속으로 던지면, 아주 희미하게, 택배가 던져지듯, 텅, 소리가 들렸다. 그러면 이 구덩이에도 끝은 있구나 싶어서 조금 마음이 놓였다. 나는 그 실낱 같고 작은 희망을 붙들기 위해 그렇게 물건을 사댔다.


지금은 돈이 정말 없어서 강제로 쇼핑 중독에서 조금 벗어났다. 인스타 판매의 다행스러운 점은-순전히 나에게 다행인-현금으로만 거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내 통장 잔고는 32,000원이다. 나는 다시 취직을 했다. 쇼핑중독 증세는 사그라들었지만 여전히 우울증을 반려하고 있다. 다음은 어떤 증상이 날 괴롭힐지 예상할 수 없지만, 내 마음속 구덩이에도 밑바닥은 있다고 믿으며. 오늘도 그저 무탈히 살아내기를 기도한다.


아, 출근하면 옷방에 쌓인 옷들 입고 나가야지.


이전 06화 집에 가스가 끊겼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