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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시 Jun 08. 2023

간호사가 된 이유

슬기로운 병원생활

내가 간호사가 된 이유는 솔직하게 말하면 돈 때문이다. 실업자 100만 시대에 특출 나게 잘하는 것 하나 없는 나는 취업률이 높은 간호학과에 진학하는 것이 가장 빠르게 돈을 버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성적에 맞는 간호학과를 찾아 지방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대학교 진학 중일 때 대게 사람들이 대학생이라고 하면 어느 학교 다니느냐고 물어보고 한다. 사실 난 지방전문대 출신이라 사람들의 그런 질문이 약간은 꺼려졌다. 친구들은 대부분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진학중었고 나만 지방에 있는 학교에 다녀, 다들 거리낌 없이 얘기할 수 있었지만, 나는 어느 학교 다닌다고 말하면 그런 학교도 있나? 어디에 있는 거냐? 왜 거기까지 갔느냐?라는 등의 질문을 하였고, 그 후에는 전공이 뭐느냐고 물어보고 한다. 간호학과에 진학 중이라고 하면 그제야 “오~ 공부 잘했나 봐요?”라고 하였다. 사람들과 이런 식의 대화를 할 때마다 자존심이 떨어졌다. 만약 내가 간호학과가 아니라 다른 학과를 다녔다면 그냥 지방전문대생, 학창 시절 공부 못 한 사람이 되었겠지?라는 생각을 하곤 하였다. 사실 그게 맞았다. 학창 시절 공부를 썩 잘하지도 않았고, 그냥 평범한 전문대생이었다. 단지 간호학과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표정, 말투가 달라졌다.





 취업을 하고 나서도 비슷했다. 어디 병원 다니냐?, 연봉은 얼마냐? 복지는 좋으냐? 등의 질문을 많이 하였다. 친하지 않으면 민감할 수 있는 질문들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학창 시절 별 볼 일 없었던 내가 서울에 이름 있는 학교 졸업한 친구들보다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이 약간은 나 스스로 창피했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 나보다 공부도 못했는데 돈은 나보다 많이 버네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또는 “오~ 돈도 많이 버는데 오늘은 네가 쏴!” “나도 간호학과나 갈걸 그랬나 봐”라는 말들을 하였는데, 이런 대화들이 무의미한 이유는 사람들은 나에 대해 궁금한 것이 아니고, 간호사란 직업에 대해 궁금했던 것이었다. 나도 처음에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월급을 받을 때 내가 병원의 이만큼의 이바지를 했나? 내가 돈을 받을 가치가 있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사람들이 겉보기에는 내가 운이 좋아서, 학과를 잘 선택해서, 취업을 잘해서 버는 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니었다. 그만큼의 돈을 벌기 위해서 정말 힘들었다. 3교대를 뛰고, 휴일도 다 못 쉬고, 쉬는 날에는 공부해야 하고, 밥을 거르며 일하는 것은 기본 정시퇴근은 꿈이고, 환자와 보호자들 선배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내가 실수할까 봐 여러 번씩 확인하고, 일이 밀리면 다음 듀티한테 피해가 갈까 봐 손도 느린 내가 최대한 빨리 일하려 노력하였다. 또한, 나는 다른 사람 피를 보면 무서워서 벌벌 떨었는데 그걸 극복하는 것도 힘들었다.

 동기들이 피를 무서워하는데 IV(정맥주사)를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면 하면 다 된다고 한다. 나도 안될 줄 알았다. 극복할 수 없을 것만 같았지만, 많이 연습하고 동영상도 찾아보고 실제로 자주 피에 노출되어서 익숙해질 수 있었다.  





 간호사로 임상에서 일하면서 점점 성격이 급해지고 화가 많아지는 나를 발견했다. 일하기 전에는 병원 의료진들이 차갑고 쌀쌀맞은 것이 너무 불친절해서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했는데, 일을 해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충분히 이해했다. 그리고 문득 든 생각이 간호사는 서비스직이 아니라 전문직이기에 친절함 보다는 똑똑함이 더 중요했었다. 내가 환자라면 친절한데 나의 상태에 대해 잘 모르는 간호사가 내 담당인 것보다는 차갑고 하라는 대로 안 하면 혼내면서 내 상태에 대해 다 설명해 주고 물어보면 다 대답해 주는 간호사가 내 담당간호사인 것이 더 신뢰가 갈 것 같았다. 그래서 퇴근하고도 모르는 약과 진단명에 관해서 공부를 했고, 환자가 물어보는 말에 내가 아는 만큼 최대한으로 설명을 해주었다.


 가끔씩 실수해서 선배들한테 깨진 날에는 반성하며, 혼자 힘들어하곤 하였다. 타지에서 병원에 다녀 기숙사 생활을 해서, 부모님께서 속상해하실까 봐 힘들어도 절대 힘든 내색을 할 수 없었고, 그만두고 싶어도 함부로 얘기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동기들이 많고 다들 잘 지내서 서로 속상한 일, 힘든 일을 이야기할 수 있어 버틸 수 있었다.

 간호사가 아닌 엄마나 친구들이 다른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며 “걔에게 비하면 넌 힘든 것도 아니지 뭐” 이럴 때마다 너무 힘이 빠지고 속상하기도 하였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지만 나를 공감하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이해 못 해주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사람들은 흔히 겉모습만 보고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결과 만으로만 판단을 하지 말고 그 자리에 있기까지의 과정을 한 번씩 생각을 해주었으면 한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만 힘들고,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만 힘든 것이 아니라, 결과가 어떠한들 그 사람이 그 위치까지 가는 길이 쉽게 얻은 것이 아니며,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온 힘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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