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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Nov 01. 2020

부끄러움은 나의 몫

작가라면 첫 출간을, 화가라면 첫 전시를 떠올렸을 때 그 설렘과 부끄러움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의 눈, 내 가족과 지인의 눈이 아닌 '대중'의 눈은 다소 두렵다. 


나의 창작물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는 자부심이 들다가도 이내 발가벗겨진 것 같은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가까운 지인들이 보내주던 응원과 칭찬의 말은 어느새 귓가에서 멀리 떠나버리고, 대중이 보내는 냉철한 '평가'가 하나둘씩 눈과 귀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은, 그것을 만든 작가의 의도와 대중들의 해석으로 포장되는데 그 두 개가 꼭 같지는 않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더 좋게 해석이 붙는 경우도 있지만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그래서 상처 입을 것이 두려워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놓은 결과물을 결국 내놓지 못하고 묵혀두는 일도 많다. 사랑은 그 자체만으로 고귀한 것임에도 마치 이별이 두려워 시작도 못한다는 말처럼... 



2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써서 출간했는데 어느 서평가가 쓴 두 줄짜리 글에 무너질 수 있다. 결국 글이란 건, 양보다 질(깊이)의 힘인가 보다.


몇 년 전 취미 미술로 시작해 완성했던 그림들을 그룹 전시회에 내건 적이 있다. 같은 화실에서 활동해 온 아마추어 작가들의 전시였는데, 당시 스무 명 남짓이 참여했었다. 전시 첫날 케이터링 파티를 열고 참여 작가들 간에 소감을 공유할 때 어느 한 분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전문가의 그림이 아니라서 사실 많이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드러내야 그것이 동기부여가 되고, 그로 인해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부끄럽다'는 단어의 긍정적 의미는 무엇일까. 잘못을 저지르고도 뻔뻔한 자에게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걸 보면,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건 개선의 여지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 같다. 아마추어들이 자주 느끼는 부끄러움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발전적이고 희망적이다. 그 어떤 전문가도 아마추어를 거치지 않는 경우는 없으니...  


그림은 다소 상징적이고 모호한 구석이 많은데 반해, 글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래서 개인의 생각이나 주장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즉각적인 대중의 반박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의 글이 '발행'되기 전에는 주저함이 생기고, 발행된 후에도 끊임없이 반응을 살핀다. 수명이 짧은 직업군 중 하나가 작가라고 하더니, 혹시 이 부분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작가들은 계속해서 글을 토해낸다. 한번 신으면 춤을 멈출 수 없는 '빨간 구두' 이야기처럼 한번 글을 써낸 작가들은 마법에 걸린 것처럼 글을 멈출 수 없다. 나는 이것을 작가의 '소명'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전적 의미로 '개인적 삶의 목적을 실현하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뜻하는 소명이 이 시대의 작가들에게 있다고 본다. 처음에는 좋아서, 재능이 있는 것 같아서 시작했다면 그것으로서 개인적 삶의 목적은 실현되었다. 여기에서 나아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위해 글을 쓴다면 소명을 다하는 작가로 인정받을 것이다. 


요즘 말로, 예술가라면 당연히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어야 한다. 나의 결과물들이 사회에 작고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만 있다면, 나는 계속해서 '기꺼이' 부끄러움을 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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