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가님. 000갤러리 전시 담당자 000입니다. (중략) 저희 갤러리에서 작가님의 작품들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초대 전시를 진행하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연락 남겨드립니다. 혹시 전시 가능하시면 작품의 포트폴리오 부탁드립니다. (후략)"
뜻밖의 연락이었다. 취미로 유화를 시작한 지 대략 3년쯤 지났을 무렵, SNS DM을 통해 전시 제안을 받았다. 종종 그림을 그려온 과정들과 완성작들을 SNS에 올려놓았고, 마침 다니던 화실에서 취미 미술인들의 그룹전을 열어주어 전시회에 참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화가들은 어떻게 돈을 버는지 궁금했는데, 아마도 이런 제안을 통해 기회를 얻고 이익 창출로도 이어지는구나 싶어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된 것 같은 신선함을 느꼈다.
연락을 취해 온 담당자는 자신들의 갤러리가 국내의 어느 대학, 미술관, 백화점 등과 연계되어 있는지, 홍보전략은 어떠한지 등도 간략히 설명을 덧붙이며 답변을 받기를 요청했다. 문득 '나를 전문가로 착각하고 잘못 보낸 건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어 지체 없이 답장을 보냈다.
본업은 글을 쓰는 작가이며 전문가(미술 전공자)가 아닌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러한 취미 미술가에게도 전시나 판매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는가를 되물었다. 전시 담당자는 "전업으로 하는 작가인 줄 알고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혼동을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짧은 '마지막' 문장을 보내왔다. 잠시 잠깐 혹했던 기분 좋은 상상이 아주 싱겁게 끝나버린 순간이었다.
예술의 기준은 무엇일까.
보기 좋은 그림, 듣기 좋은 음악, 잘 읽히는 글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예술의 영역 또한 이상보단 현실에 그 기준이 맞춰져 있는 듯했다. 물론 한 번 더 다시 생각해 보면, 예술은 현실이기도 하다. 감상의 몫은 이상에 가깝지만, 구매의 몫은 현실이니까. 잘 팔리는 예술이 경영자에겐 필요할 테니, 그런 의미에서 갤러리 담당자가 가졌던 경영자적 마인드를 이해한다.
소비자는 '누가' 그렸는가, '누가' 작곡했는가, '누가' 집필했는가에 따라 지갑의 크기를 결정한다. 나 또한 책을 고를 때 유수 문예지에 당선된 작가의 이력에 더 신뢰감을 느낀 적이 있다. 그림을 배우겠다고 화실을 찾아가 비용을 지불했을 때, 유명 미대 출신의 선생님들이 있는 곳이라 더 만족해했던 것도 사실이다. 유명한 작가의 문장 한 줄에, 유명한 화가의 붓 터치 하나에 뭔지 모를 더 깊은 스피릿(영혼)이 담겨있는 것만 같은... 그래서 그것이 소비자이자 감상자인 나에게도 하나의 기준으로 작용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싱겁게 끝나버렸던 첫 갤러리로부터의 연락 이후, 또다시 5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2024년을 기준으로, 이제는 자그마치 8년의 그림 경력을 가진 셈이다. 그리고 취미였던 그것은 이제 직업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종종 사람들 앞에 시각 예술가(Visual Artist)로 소개되기도 하고, 여러 예술인과의 모임에도 나의 자리가 마련된다. 소위, 이제는 취급 대상이 됐다.
그때 일찍이 취미로만 즐기다 그만두었다면 오늘도 나는 또 누군가의 작품 앞에 서 있는 한 명의 소비자에 불과했으리라. 비전공자이면 어떠한가. 유경험자에게도 생산의 기회는 오기 마련이니, 쉼 없이 계속한다는 게 더 중요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