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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Oct 16. 2020

퇴근 후 화실로 가는 이유

“올해는 반드시 활자가 없는 곳으로 여행을 가겠어!” 다짐을 하며 호주 사막으로 떠났던 날이 있다. 매일 글을 읽고 쓰고 고치는 일상을 반복하던 때였다. 신문 편집자였던 나는 언제나 '마감'이란 무게에 눌려있었고, 발행일이 다가올 때마다 새벽잠에 시달리며 ‘글자가 없는 세상’을 부르짖었다.


그런데 글자가 없는 세상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언어가 다른 외국엘 간다 해도 거리 곳곳엔 간판들이 널려있고 군중 속에 있다면 듣고 싶지 않아도 누군가의 재잘거림이 귓가를 울릴 것이었다. 눈과 귀가 방해받지 않는, 그래서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그런 곳은 정말 없을까? 그러던 차에 누군가의 여행 후기 속 “휴대폰도 안 터지는 곳”이란 문구에 사로잡혀 일사천리로 여행계획이 세워졌다. 목적지는 호주의 울룰루(Uluru)였다. 


그해 여름, 

나는 붉은 흙과 메마른 풀, 거대한 바위만으로 채워진 사막 한가운데 있었다. 다소 직업병이 되어 글씨 하나, 띄어쓰기 오류에도 신경을 쓰던 나지만, 눈을 씻고 봐도 간판 하나 발견하기 쉽지 않은, 말 그대로 '글자가 없는 세상'이 그곳에 있었다. 전화도 안 터지니 답답한 건 내가 아닌 직장 상사였을 테고, 자다가도 울리는 "까똑" 소리 대신 야생 동물의 울음소리에 눈 떠 밤하늘의 은하수로 눈을 정화했다. '그래, 이런 게 힐링이지. 사막, 나 같은 사람들에게 딱 좋은 곳이네...' 


Uluru, Australia


딱 거기까지였다. 사막 효과는 그곳을 벗어나자마자 바로 수명을 다했다. 그 효과가 좀 오래가면 좋으련만, 휴대폰 신호가 터지자마자 (직업적)일상은 또다시 무섭게 밀려 들어왔다. 역시 여행만으론 부족했다. 스트레스를 몰아서 풀기보다는 매일매일 조금씩이라도 해소해 줄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일단 '활자'로부터는 멀어져야 하니 독서는 내 취미 리스트에서 첫째로 제외됐고, 벨 소리에도 심장이 두근거리니 음악적 활동도 하고 싶지 않았다. 고요할 것. 배열과 규칙에 얽매이지 않을 것. 그러나 재미는 있을 것. 그렇게 만난 게 '그림'이다. 


어느 날은 사자의 수염을 휘갈겨 칠하며 분노를 털어냈고, 또 어느 날은 사막에서 보았던 밤하늘의 '별 하나, 나 하나'를 찍어가며 심신을 가라앉혔다. '그래, 이런 게 힐링이지. 이제야 나에게 딱 맞는 취미를 찾았네...'



딱 좋았다. 글쟁이에게 그림은 신경안정제 효과를 가져왔다. (편집자들은 공감할)쉼표 하나 찍고 지우기를 반복하느라 문장 하나에 갇혀 있던 내가, 캔버스에 흩뿌려진 물방울들의 무질서한 배열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며 (때론) 조증을 의심하기도 했다. 그만큼 매우 효과적이었단 뜻이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의 좋은 점은 무엇일까? 가끔 그림을 그리다 보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하며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시간을 아쉬워할 때가 있다. 굉장히 몰입했다는 방증이기도 한데, 그림을 그리는 동작이 집중력을 키워준다는 글을 어디에선가 본 듯하다. 생각해 보면 맞는 것도 같다. 누군가와 한참 통화를 마친 후 손 아래 받쳐있던 노트에 빼곡히 채워진 패턴들을 본 적이 있다. 내가 그려놓고도 "언제 이걸 그렸지?" 싶을 때가 많은 걸 보면, 통화에 집중할 때마다 나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아도 하게 되는 무의식적 행위들이 종종 있는데, 가령 흥얼흥얼 허밍을 한다거나, 대화 중에 손으로 그림을 그린다거나 하는 것들.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거나 '의도를 품지 않'아도 저절로 하게 되는 자신만의 습관적 행동이 있지 않은가? 만약 몇 개가 있다면, 거기에서 확장하여 자신만의 취미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은 뭔가 나의 '기질', 내가 느끼는 '편안함', 나를 이끄는 '열정', 그런 것들과 연관돼 있을 것만 같다.


한때 유행했던 유산슬(유재석)의 '합정역 5번 출구'에 회사가 있었다. 노래 가사처럼 '합치면 정이되는 합정인데...' 회사 생활에 도통 정이 안 생긴다며 농담 섞인 푸념을 내뱉고는 퇴근하자마자 10분 거리의 화실로 직행하곤 했다. 합정에서 홍대까지 한 정거장 사이를 두고 주변에는 취미미술 학원들이 많았다. 지역적 특색이기도 한데, 그 덕에 바쁜 직장 생활 중에도 나의 취미생활은 지속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1년, 2년, 3년, 그렇게 직장을 옮기지 않는 한 취미생활도 이어졌다. 지금은 비행기로 12시간은 날아와야 캐나다 캘거리에서 그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있고, 전에는 홍대에 살았었다 하면 많이들 홍대 미대라도 나온 줄 안다. 정확히 하자면, 나는 '홍대 앞 미술학원'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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