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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Oct 16. 2020

퇴근 후 화실로 가는 이유

“올 해는 반드시 활자가 없는 곳으로 여행을 가겠어!” 다짐을 하며 호주 사막으로 떠났던 게 벌써 4년 전의 일이다. 매일 글을 읽고 쓰고 고치는 일상이 반복되고, 마감 주간에만 접어들면 월간지 발행일에 쫓겨 새벽잠을 자던 때였기에 그 해 여름 휴가지의 조건은 ‘글자가 없는 곳’이었다. 


언어만 통하지 않는다고 만족할 수 없었다. 길거리 간판도 없는 곳이라면 더욱 좋겠다 생각했는데, 마침 누군가 쓴 여행후기에서 결정적 문구 하나를 발견했다. “거기 휴대폰도 잘 안 터져요.” 그 길로 난 울루루(Uluru)행 왕복 티켓을 끊었다. 


그 해 여름, 

나는 붉은 흙과 메마른 풀, 거대한 바위만으로 채워진 사막 한가운데서 캠핑을 하며 철저하게 고립된 즐거움을 만끽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이 힐링이라면, 나에게 힐링은 보고 읽을 수 있는 문자로부터의 탈출이었다.


Uluru, Australia


그런데 어찌 매번 사막, 정글, 외딴섬으로만 여행을 가겠는가. 일 년에 한 번, 큰 맘먹고 돈과 시간을 챙겨야 누릴 수 있는 해외여행보다 매일매일 조금씩 투자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시작한 게 그림이다. 


어느 날은 사자의 수염을 휘갈겨 칠하며 피로를 풀었고, 또 어느 날은 여행 때 보았던 사막의 밤하늘을 그리며 심신을 가라앉혔다. 


울루루를 다녀온 후부터 그림을 시작했으니 화실을 다닌 지 어느덧 4년이 흘렀지만, 올 한 해 세계를 뒤덮은 지독한 전염병(COVID-19) 때문에 화실 방문을 못하고 있다는 점 하나가 아쉬움으로 남는다.



여행도, 그림도 즐기지 못함에도 다행인 점이 하나 있다면... 일적인 스트레스도 같이 줄었다는 점일까. 마감때면 정신을 못 차리게 했던 월간지는 격월간지로 바뀌었고, 잦은 인터뷰와 행사 취재로 외근이 많던 예년에 비해 올해는 행사들도 줄줄이 취소되거나 축소됐다. 다시 말해 취재거리(써야 할 글의 분량)가 줄었다.


일상은 조금 여유로워졌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재미있지도 않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던가. 


참으로 무미건조한 일상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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