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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Oct 22. 2020

타인의 고통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에 관심이 많다. 

어떠한 난관도 없이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쉽게 성공을 이룬 스토리에는 큰 감흥을 느끼지 않는다. 지독한 가난, 참혹한 사고, 기나긴 투병 생활을 이겨낸 누군가의 고통과 극복기에 감동하고 '내 불행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를 깨달으며 힘을 얻는다. 타인의 고통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서 더 나아간다. 한 사람의 고통이 개인의 히스토리라면, 다수가 겪은 유사한 고통은 사회의 문제, 나아가 인류의 문제가 된다. 


한 사람이 자살을 했다. 사람들은 그가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개인사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애도한다. 특정 지역, 환경, 연령대에서 다수의 비슷한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사람들은 이 사건이 이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인식하게 된다. 사회 시스템에 문제는 없는지 돌아보고 개선점을 찾기 위해 공동의 관심과 노력을 기울인다.  



그래서 다수의 고통은, 개인적 차원이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 드러나고 공유될 필요가 있다.


여행 에세이를 집필하며 개인의 추억을 끄집어내던 내가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두 번째 책을 작업하면서부터이다. 이 책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겪은 사건(고통)을 듣고 편집해 낸 것으로, 인터뷰 대상은 약 서른 명 정도의 탈북자들이었다. 


두 달의 기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으니 평균 하루 걸러 한 명씩 만난 셈이다. 고향이나 연령대는 다양했고, 북한에 있었을 당시의 직업도 교사, 외교관, 의사, 농장원, 군인, 방송예술인 등으로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이 들려주는 북한 사회는 직군에 따라 다채로운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전반적으로 공통된 고통의 종류가 존재했다. 감시, 통제, 폭력, 거짓에 의한 고통들...


다수의 공통된 고통을 아는 것은 조금 더 확장된 가능성으로 연결된다. 그것의 개선을 요구하는 여론을 형성하거나 정책 결정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세상에 알려 시스템의 변화를 이끄는 어느 정도의 순기능을 담당한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집필을 마친 후로 벌써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북한) 이야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들의 고통을 말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고 민감하다. 독자는 이들의 인간적 고통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정치적 스탠스에 따른 해석을 덧붙인다. 그것이 메신저(작가)로 하여금 본래 목적 이외의 계산을 더 하게끔 만든다. 그러나 그 계산에 의한 고뇌는 나 개인의 고통에 불과할 뿐. 나의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다수의 고통을 전달하는 것은, 사회를 위한 일임을 이해해주길 오늘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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