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를 투고하면 됩니다. 그러면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올 거예요."
책을 출간하는 방법을 나는 책을 통해 배웠다. 너무 오래되어 그 책의 제목도, 작가의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우연히 읽게 된 책 속에서 발견한 내용이다. 작가는 자세하게 방법을 설명했다. 출판사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공지 사항이나 별도의 투고 페이지를 살펴보라. 원고 투고 안내에 따라 자신의 원고 파일과 출간 계획서를 제출하라. 그중 연락이 오는 출판사들 가운데 인세 조건이 잘 맞는 곳과 출간 계약을 맺어라. 이게 다였다. 뭔가 대단한 방법을 알려주는 줄 알고 잔뜩 기대했는데,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는 방법(냉장고 문을 연다 - 코끼리를 넣는다 - 냉장고 문을 닫는다)과 다를 게 없었다. 좀 허무했지만... 속는 셈 치고, 나는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어보기로 했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여러 권 뽑아 책상 위에 쌓아 놓고 각 커버 하단에 적힌 출판사들의 이름을 노트에 차례대로 적었다. 인터넷 검색도 더 추가해서 마음에 드는 출판사들의 홈페이지 주소들을 모았다. 하나씩 들어가 보며 원고 투고 페이지에 적힌 대로, 출간 계획서를 작성하고 원고 파일을 첨부했다. 어느 출판사는 (말도 안 되게) 제출한 지 1분도 안 돼 거절 회신을 보내왔고, 또 어떤 곳들은 (그나마 검토를 한 듯이) 서너 일 만에 거절 연락을 보내왔다. 초기 또는 무명작가라면 수십, 수백 번 거절당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기에 나는 전혀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았다. 둘, 셋, 넷... 거절 회신은 계속 누적됐다.
아홉 번째. 또 한 곳으로부터의 회신이 도착했다. 그런데 이번엔 느낌이 달랐다. 제목에서부터 기존의 출판사들이 보내온 제목과는 달랐다. 내용은, 나의 출간 계획서와 원고에 관심이 생겨 더 논의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몇 차례 더 연락을 주고받은 후, 나는 그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다. 내 인생의 첫 번째 책이었다. 원고 투고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나는 계약서에 서명을 했고, 또 그로부터 한 달 만에 나의 책은 서점 평대에 놓여졌다. 더 인기를 끌지 못해 비록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그 경험은 내게 아주 큰 교훈을 남겼다. 코끼리는 냉장고에 들어갈 수 있었다.
벌써 10년 전(2014년)의 일이다. 작가가 된 지 얼마나 됐냐는 질문에 십 년이라 답하면서 나는 이 첫 출간의 기억을 떠올린다. 문학 전공자도, 엄청난 독서광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인도 아닌데,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나도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한 적은 있지만, 그런 생각은 누구나 해볼 수 있는 거니까. 그래서 스쳐 지나가는 여러 바람들 가운데 하나로 그냥 흘려 두었었다. '그래서 실제로 써 봤는가?'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기 전까지는.
매일 일기 쓰듯이 하루에 한 꼭지씩만 쓴다면, 언젠가는 책 한 권 분량의 글이 모아지지 않을까? 그 생각이 나를 움직였다. 가끔 출판사들이 신간을 내놓을 때마다 하던 서평 쓰기 이벤트에 참여해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무료로 책을 얻어 보기도 하고, 서평 쓴 게 당첨되어 커피 쿠폰이라도 하나씩 받곤 했기에, 내가 영 글재주가 없진 않구나 싶었던 게 그나마 용기를 줬다. 200페이지 이상의 분량을 완성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14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두 계절에 걸쳐 집필, 계약, 출간, 판매가 순식간에 이뤄졌다. 그 과정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일 것이다. "그때 뭐에 씌었나 봐요."
너무 생각이 많아지면 한 발 앞을 내딛는 게 쉽지 않다. 대체로 생각이 많고, 예민하고, 계획 없이 잘 움직이지 않는 성격이지만, '속는 셈 치는' 시도가 필요할 때가 있다. 이 절판된 책을 나는 가끔 친구들에게 선물로 건네곤 한다. 나는 스스로 오글거려 잘 읽지 못하는 책이지만,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싶을 때, 그럴 때 아주 가끔 내 깊은 책장 속에서 한 권씩 세상 밖으로 빠져나온다. 막연하지만 시작점에 있는 이들에게 건네지는 이 책의 제목은 '우리는 낯선 곳에 놓일 필요가 있다'이다.
첫 출간은 그저 한 번의 좋은 추억으로 끝나지 않았다. 처음이 있었기에 두 번이 있었고, 작가에서 기자로, 기자에서 편집자로 집필 영역이 계속 확장됐다. 작가님 또는 기자님으로 불리는 완전한 직업"꾼"이 되었고, 캐나다로의 이민을 준비할 때에도 그 글발은 너무 성능 좋은 무기가 되었다. 지금도 가끔 질문을 받는다. "출간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듣는 이들은 여전히 '냉장고 코끼리' 같은 소리라고 하겠지만, 나도 어쩔 수 없이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속는 셈 치고 일단 한번 해 보라고. 적어도 냉장고 문짝 하나는 열고 생각해 보자고. 그다음 일은, 운명이 알아서 해 주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