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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Jul 25. 2024

이사 후 변화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며 배우는 것들






나는 신도시 끝자락에 산다. 새 아파트에 입주한 지 2주가 되었다. 방마다 창문 너머로 숲이 보인다. 근거리에 초중고가 있다. 이를테면 숲세권, 학세권이다. 하지만 우리 집엔 학생이 없다. 학세권을 빼면 해당하는 이점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거실 소파에 앉아 숲을 바라보며 눈이 호강한다. 하지만 현관문을 열고 나서면 교통이 불편해 두 발이 고생한다.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말을 건넨다. 새집으로 이사하니까 좋겠다고. 그 말에 선뜻 '너무 좋아요.'라고 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교통 때문이다. 나는 교통에 대한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아파트살이를 선망하지 않았다. 어떤 형태로든 내 집 마련에 대한 열망이 컸고, 우여곡절 끝에 청약에 당첨되어 입주하게 되었다.


나는 이십 년 이상 서울에서 살다가 경기 북부 신도시로 이사왔다. 이사오기 전까지는 비교적 교통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새집에 입주하는 즐거움보다 교통에 대한 불편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네이버 길 찾기 창에 집과 인근 지하철역 동선을 검색하며 눈이 빠지도록 지도를 들여다보곤 했다. 미지의 공간으로 이주해야 하는 예정된 시간이 다가올수록 먼지처럼 떠도는 마음을 붙들기 위해서였다. 손가락으로 도로명을 꾹꾹 눌러쓰며 새 지도를 눈에 익혔다. 그렇게 추출한 최단 거리는 인근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두 정류장을 이동한 후, 환승해서 지하철역까지 세 정류장을 가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집 근처에서 버스를 타지 않고 환승 구간까지 이십 분 정도 걸어가서 버스를 타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운동 삼아 걷자는 소소한 명분도 생겼다.


이사 온 다음 날 후자의 방법으로 지하철역까지 사전답사했다. 신호와 버스 대기 시간까지 고려해 삼십 분가량 소요되었다. 서울로 나가는 본격적인 이동 시간은 지하철역에서부터 한 시간 이상 걸렸지만 낯설게 느껴졌던 지도가 두 발을 딛고 생생하게 그려졌다. 지하철역에서 집으로 되돌아오는 발걸음이 사뭇 가벼웠다. 어떻게 적응할지 생각만 무성했던 이전의 시간은 과거로 밀려나고 몸으로 부대낀 오늘이 어제의 기억 위로 내려앉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낯섦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다. 새로운 환경에 놓일 때마다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진다. 긴장도를 낮추는 방편으로 사전 계획하는 습관이 몸에 붙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계획하고 눈에 익히며 불안감을 상쇄시키는 중이다. 지하철역까지 삼십 분 내외로 오가는 나만의 지도를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서야 힘을 뺀다. 새로운 공간을 걷고 호흡하는 횟수가 반복될수록 낯섦이 친숙한 활기로 바뀌며 안도감을 준다.


이사 온 후 또 하나의 변화는 저녁형 인간에서 아침형 인간으로 달라진 것이다. 출퇴근 시간이 두 시간 이상 소요되는 남편을 지하철역까지 태워다 주면서 시작되었다. 모닝 루틴을 시작하면서 하루가 무척 길다고 느껴졌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늦잠을 자는 일이 많았는데 오전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났다. 그 대신 잠드는 시간이 빨라졌지만 상대적으로 늘어난 시간이 더 크게 다가왔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의 생체 리듬을 오랜만에 느끼게 되었다.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면서 배움이 늘었다. 익숙한 것들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불편함을 감수하게 하지만 공기를 순환시키듯 생각의 전환을 가져온다. 운동 삼아 걷기와 모닝 루틴의 이점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점차 익숙해질 새로운 삶의 형태에 기대감이 싹튼다. 잃은 게 있으면 얻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신도시 끝자락에 다다라 터벅터벅 걸어오는 나를 숲이 마중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배울 때, 우리는 성장한다. - 마야 안젤루(Maya Angel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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