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팅은 아무 말 없이 앞장서 걸었어요.
카페 밖은 어두컴컴했죠.
하지만 캡틴을 따라가는 길은 어딘가 묘하게 낯이 익었어요. 쏠과 넬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쯤, 키팅이 발걸음을 멈췄답니다.
“쏠, 넬! 여기가 어딘지 기억나니?”
둘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다 화들짝 놀랐어요.
그곳은 바로, 예전에 고양이 가족이 농약 섞인 사료를 먹고 죽었던 그 화단이었거든요!
넬은 꿀꺽 숨을 삼켰고, 쏠은 온몸의 털이 쭈뼛 섰어요.
“따라와!”
키팅은 짧게 말하고는 화단 옆 큰 나무 위로 폴짝 뛰어올랐어요.
쏠과 넬도 서로를 한번 바라보고 폴짝 뛰어올라 굵은 나뭇가지 위에 나란히 앉았죠.
그때, 키팅이 앞발로 한 곳을 가리켰어요.
불이 환하게 켜진 따뜻한 거실 안. 작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느릿느릿 걷는 늙은 고양이 뒤를 신이 나서 졸졸 따라가고 있었답니다.
키팅이 물었어요.
“저 새끼 고양이, 누군지 알겠니?”
쏠과 넬은 그저 눈만 말똥말똥 뜰 뿐이었어요.
어딘가 낯이 익긴 했지만 누군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죠.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키팅이 천천히 입을 열었어요.
“쏠, 넬! 내 말 잘 들어봐. 너희가 그날, 농약 사료를 먹고 죽은 고양이 가족의 영혼을 쉼터로 안내했을 때… 사실 그 화단 구석에는 아주 작은 막내 고양이 한 마리가 살아 있었단다.”
쏠과 넬은 깜짝 놀란 눈으로 키팅을 바라봤어요.
“그 녀석은 끔찍한 일이 일어나기 이틀 전부터 배가 아파 움직이지 못했어. 그날도 구석에 웅크린 채 엄마가 사료를 물고 다가와 꼭꼭 씹어서 입에 넣어 줄 때만 기다리고 있었단다.”
키팅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차분했어요.
“그러다… 엄마랑 형제들이 농약 사료를 먹고 그만 쓰러지고 말았어. 사료를 먹지 않은 그 아이만 유일하게 살아남았단다.”
쏠과 넬은 입을 꾹 다물었어요.
넬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고, 쏠은 말없이 앞발을 꼬옥 쥐었어요.
“무서움과 배고픔에 떨고 있던 그 아이를 캣맘이 데려가 치료해 줬단다.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저 예쁜 새끼 고양이가 바로 그 녀석이야. 이름이 ‘모카’라고 하더구나.”
바로 그때였어요! 식탁에 저녁이 차려졌죠.
캣맘 가족은 셋이었어요. 아저씨, 아줌마, 그리고 딸 릴리.
고양이는 두 마리였고요.
식탁 위엔 여러 가지 음식이 많았지만, 식탁 옆 바닥에 사료 그릇은 딱 하나였어요. 늙은 고양이는 사료 그릇에 코를 박고 ‘우걱우걱’ 소리를 내며 신나게 먹기 시작했답니다.
그런데, 새끼 고양이 모카는 사료 그릇이 아니라, 릴리 옆에 있는 빈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있었어요.
아저씨가 투덜거리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모카 요 녀석은 왜 사료를 안 먹고 꼭 사람 먹는 고기만 달라고 하는 거야?”
모카 앞에 놓인 접시에 작게 자른 고기 한 점을 올려주던 릴리가 아빠의 팔을 살짝 꼬집었어요.
“아빠. 쉿! 모카 다 듣는다니까. 모카는 사료 먹는 걸 무서워하잖아.”
아줌마도 살짝 눈을 흘겼어요. 아저씨는 조금 민망한 듯 웃으며 말했어요.
“아차차! 그랬지… 아빠가 정말 미안해~”
그러고는 큼지막한 고기 한 점을 모카 앞 접시에 올려줬어요.
릴리가 아빠 팔을 한 번 더 꼬집었고, 아저씨는 “아차차!” 하며 고기를 작게 잘라 주었어요.
그 장면을 내려다보던 쏠과 넬은 코끝이 찡해져서 눈물을 흘리다가 작게 “큭큭” “히히”하고 웃었어요.
그 순간, 키팅이 조용히 말했어요.
“쏠, 넬! 너희들은 그날도, 그리고 오늘도 정말로 최선을 다했어. 다시 한번 말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해. 그렇게 했는데도 때로는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어. 그래서 슬프고, 절망하기도 하는 거지.”
키팅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 말했어요.
“그럴 땐 이 말을 기억하렴. ‘이 또한 지나가리라.’ 잠시 주저앉아 울어도 괜찮아. 하지만 슬픔과 고통은 언젠가는 반드시 끝나니까… 다시 힘을 내서 일어나렴. 알았지?”
그는 말을 마치고, 나무에서 사뿐히 뛰어내렸어요.
쏠과 넬은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동시에 대답했어요.
“네, 캡틴. 오 나의 캡틴!”
식탁 앞에서 행복하게 웃는 모카를 바라보며 둘의 얼굴에도 따뜻한 미소가 피어올랐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