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4~5일 · 대전&광주>
그날 밤 9시.
병원에서 나온 탄은 주차장 구석 어둠 속에서 깊은 숨을 들이켰다.
온몸을 휘감은 분노는 식지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더 뜨거워졌다.
폐부 끝까지 밀고 들어온 공기는 차가웠지만, 그 차가움은 날선 칼날이 되어 그의 마음을 베고 지나갔다.
가슴 속 어딘가가 찢기는 것 같았다.
눈앞엔 병실 침대가 겹쳐 떠올랐다.
기계음 사이사이, 아버지의 굳은 손과 동생의 창백한 얼굴이 파편처럼 번졌다.
탄은 천천히 주차장 구석으로 걸어갔다.
어둠 속,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던 검정색 지프 랭글러.
그는 문짝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을 타고 들어왔고, 오래된 힌지에서 철컥— 소리가 흘렀다.
탄은 마치 전장으로 뛰어드는 특공대처럼, 단숨에 운전석에 뛰어 올랐다.
그리고—왼손으로 문을 거칠게 당겨 닫았다.
탕!
철컥!··· 탕!
총을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기는 그 익숙한 소리.
적을 겨누고, 끝장을 내는 그 소리.
그 소리에, 그의 심장도 반응했다.
마치 가슴 속에 숨겨둔 총이 지금 막 발사된 것처럼···.
시동을 걸기 직전, 탄의 손이 멈췄다.
조수석 글로브박스를 열었다.
오래전 단종된 구형 폴더폰 하나가 그 안에 누워 있었다.
전원 버튼을 길게 누르자, 희미한 녹색 불빛이 어둠을 뚫었다.
그는 곧장 번호를 눌렀다.
뚜— 뚜—
두 번의 신호음 뒤, 수화기 너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저씨. 접니다. 네. 네, 알고 계셨군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필요한 말만 오갔다.
둘 사이엔 침묵이 정보였고, 한숨이 약속이었다.
탄은 통화를 마친 뒤, 전원을 끈 핸드폰을 조용히 글로브박스에 넣었다.
크르르르··· 부르릉!
짚차에 시동이 걸리고, 기어가 물렸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자마자, 어둠을 향해 뛰쳐나갔다.
광주까지는 세 시간 남짓.
지금 그가 달리는 길은 아버지와 동생이 흘린 피의 궤적이었고, 돌아갈 수 없는 복수의 진입로였다.
* * *
자정 무렵, 광주.
도심은 조용했고, 도로엔 비에 젖은 콘크리트 냄새가 배어 있었다.
탄은 후드를 눌러쓰고, 리차드가 보내준 좌표를 따라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폐공장은 시 외곽, 오래 전 버려진 골목 뒤편에 있었다.
발로 차면 무너질 것 같은 담장에 덜렁덜렁 달려 있는 표지판.
[위험-출입 금지]
빗물에 번진 경고문을 가볍게 넘긴 그는, 그림자처럼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안은, 이미 무너진 것들이 서로를 삼키며 썩어가고 있었다.
산소보다 먼지가 더 많은 공기, 벽 곳곳엔 곪은 종기처럼 갈라진 금이 퍼져 있었고, 철골은 녹물에 절어 엿가락처럼 휘어 있었다.
폐공장 특유의 화학약품 냄새가 벽 틈에서 스멀스멀 배어 나왔다.
탄이 살며시 바닥을 디딜 때마다 사각사각 바스러지는 파편들이 숨 죽인 비명을 질렀다.
탄은 호흡까지 누르며 그 어둠 속을 읽었다.
목표물을 눈 앞에 둔 사냥꾼처럼 아니, 사냥 그 자체처럼.
공장 가장 안쪽, 벽에 바짝 붙은 낡은 사무실.
철문 아래로 스며 나오는 한 줄기 불빛.
그가 다가갈수록 그 빛은 숨소리를 냈다. 거칠고 낮은 호흡.
‘그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