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5일 새벽 · 전라도 광주>
탄은 문고리를 잡았다. 소리 없이 열려고 했지만—
삐걱.
금속이 쩍 벌어지는 듯한 소리.
놈은 벌떡 일어나 칼을 뽑더니 입꼬리를 찢으며 말했다.
“꼬맹이가 겁도 없이···”
탄은 말 대신 자세를 낮췄다.
무릎을 벌리고, 발끝으로 바닥을 더듬는 사냥꾼의 호흡.
바람을 계산하며 땅의 떨림을 읽는 늑대의 눈빛.
놈이 먼저 튀어나왔다.
상체 중심으로 돌진하는 특전사의 전형.
정면 돌파, 전광석화의 일격.
그러나—탄은 바닥에서 9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몸을 틀었다.
정면을 비껴 측면을 잡는 회전.
그 놈의 옆구리가 드러나는 순간, 탄의 무릎이 그 틈을 파고들었다.
뚝! 하고 뼈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놈은 숨을 삼키며 비틀거리면서도 곧장 칼을 휘둘렀다.
그 순간 놈의 눈이 번뜩였다.
저 회전, 저 무릎 각도— 놈의 머리에 떠오른 세 글자.
구르카!
“이야~ 구르카였냐? 하긴, 그쪽이 기습 하나는 끝내주지.”
탄은 대답하지 않았다.
재빨리 뒤로 구르며 칼날을 피했고, 구르던 반동 그대로 오른발로 테이블 다리를 걷어찼다.
날카로운 쇳덩이 하나가 휘익 날아가 놈의 허벅지를 스쳤다.
피가 터졌지만, 놈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
“그게 다냐? 구르카도 별 거 아니네!”
순간, 탄의 손이 조용히 뒤로 움직였다.
그가 꺼낸 것은 부드럽게 휘어진—뼈를 가르는 칼.
쿠그리!
놈이 다시 돌진해 칼을 내려칠 때, 탄의 시선은 칼이 아닌 발목을 꿰뚫었다.
놈의 균형이 무너진 그 순간— 탄의 몸이 허리를 중심으로 회전했다.
쿠그리가 허공을 가르며, 쓱—
칼날이 번개처럼 스치고, 피가 새처럼 흩날렸다.
놈은 숨이 꺾인 듯 비명을 토해내며 쓰러졌고, 놈의 피가 바닥의 녹물과 뒤엉켰다.
탄은 쓰러진 놈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그의 눈동자엔 불타는 분노도, 들끓는 광기도 없었다.
그저―임무를 완수한 자의 냉정함만 담겨 있었다.
그는 쓰러진 놈의 몸을 굴려 뒷목을 살폈다.
피와 먼지에 얼룩진 살갗 사이, 작고 정교하게 새겨진 문신 하나가 드러났다.
R.K.
정확한 위치, 균형 잡힌 폰트··· 잘 잡힌 체계의 냄새.
두 글자는 분명하게 말했다.
“이건 한 놈의 범죄가 아니다.”
탄은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낮게,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 시작이네.”
폐공장의 어둠이, 조용히 그를 삼켰다.
그리고 그 어둠 너머 어딘가에서―또 다른 무지개가, 불길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몇 분 뒤, 놈은 끙— 하는 신음과 함께 의식을 되찾았다.
놈은 피로 얼룩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다른 손으론 허둥대며 주머니를 뒤적였다.
떨리는 손끝에서 구겨진 담배 한 개비가 나왔다.
탄은 어둠 속에서 가만히 그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놈은 피투성이 손으로 담배를 입에 물고, 낡은 성냥갑을 꺼냈다.
툭— 첫 번째, 불이 붙지 않았다.
툭— 두 번째, 불꽃이 일었다.
작고 불안한 불씨 하나가 담뱃잎을 살짝 태웠다.
‘여긴 화학약품이 가득한 폐공장이야. 언제 폭발도 이상하지 않아.’
그런데도 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불꽃이 코앞을 스칠 때조차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놈은 깊숙이 연기를 들이마시고는, 피범벅 얼굴로 느긋하게 웃었다.
그 비릿한 웃음이—탄의 척수를 타고 소름처럼 기어올랐다.
놈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 핏발 선 눈동자로 탄을 올려다봤다.
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찰나—
퍽!
탄의 전술화 앞코가 어둠을 가르며 놈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놈은 비틀거리다 고꾸라졌고, 공기마저 얼어붙는 듯한 침묵이 흘렀다.
탄은 곧바로 무릎을 꿇고 놈의 양팔을 꺾어 묶었다.
노련하고도 침착한 손놀림이었다.
굵은 밧줄이 놈의 손목과 발목을 단단히 죄었다.
덜컥.
검은 지프의 뒷문이 열렸다.
탄은 피와 먼지로 범벅이 된 놈의 몸을 낚아채듯 끌어다 그대로 던졌다.
퉁~
철컥.
지프의 문이 닫히자, 세상은 다시 고요해졌고, 폐허 속의 어둠은 다시 가라앉았다.
탄은 피와 땀이 밴 손을 한 번 털고, 녹슨 드럼통들이 쌓여 있는 폐철 더미 앞에 섰다
그는 놈의 성냥갑에서 꺼낸 성냥을 그어 낡은 천 조각에 갖다 댔다.
기름 냄새가 밴 천들은 곧 붉게 타올랐고 탄은 그것을 주저없이 던졌다.
불길은 먹이를 찾듯, 바람을 타고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