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의학과 교수인 처형이 언젠가 강연에서 첫 화면에 “通하였느냐?”는 영화 대사를 화두로 꺼내신 적이 있다. 건강하게 살려면 혈관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서였다. 양분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옮기며 온기를 전하는 피가 잘 통해야 건강하니 혈관과 심장 관리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자동차 엔진에도 이런 피와 같은 역할을 해주는 엔진 오일이 있다. 매일매일 수 만 번의 폭발이 반복되는 엔진을 돌아다니면서 엔진 오일을 무수한 일을 해 준다.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실린더와 피스톤, 회전하는 크랭크 샤프트, 캠 샤프트, 흡기 배기 밸브를 열고 닫는 캡 프로파일 등 금속이 서로 맞닿아 움직이는 모든 부분에 들어가서 움직임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윤활 역할을 담당한다.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엔진 내 여러 가지 찌꺼기들을 씻어내는 역할도 한다. 칼을 숫돌에 가는 것과 같이 금속과 금속이 만나면서 나오는 쇳가루들, 불완전 연소로 나오는 그을음 등을 엔진 오일이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씻어 내서 엔진 오일 필터에서 걸러 줌으로써 엔진 내부를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청소부 역할도 하는 것이다. 쉽게 녹이 쓰는 철로 된 부품들이 공기에 노출되는 것을 최소화해서 녹이 스는 것도 방지하기도 한다.
엔진의 연료가 폭발하는 순간에는 그 강한 압력이 틈새로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기밀성을 유지하는 역할도 한다. 엔진 오일 덕분에 연료가 연소해서 나오는 에너지가 온전히 피스톤으로 전달되어 회전 에너지로 바뀐다. 그리고 엔진 운전 상태에 따라서 흡기 배기 밸브가 열리는 시점을 다르게 가져가는 VVT 같은 조작은 유압을 통해서 동작하니까 엔진 오일이 없으면 이런 기능도 작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빠른 움직임이 있는 곳에서 생기는 열을 식혀 주는 냉각 기능을 수행한다. 특히 피스톤이나 베어링처럼 빠른 회전이 이루어지는 곳에 오일이 부족하면, 순간적으로 급격하게 온도가 오르면서 팽창해서 실린더 벽면에 늘러 붙게 된다. 그야말로 엔진이 망가지는 거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 엔진 오일이 윤활과 냉각 역할을 잘 수행하려면 최소한의 양은 유지해야 한다. 차를 정차한 이후 20분 정도 지난 후에 보닛을 열고 엔진 룸에 노란색 엔진 오일 게이지를 뽑으면 지금 엔진 오일의 레벨을 확인할 수 있다. MIN 이하로 내려가 있다면 보충이 필요하다. 특히 고속 주행이 많은 장거리 운전하기 전에 엔진 오일이 충분한지 확인해 보고 주행 중에라도 만약 오일 압 센서에서 오일이 부족하다고 하면 바로 채워 주워야 한다.
오일 자체도 적절한 점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너무 끈적거리면 틈새로 잘 스며들지 못하고 너무 물같이 밍밍해지면 금속이 맞닿는 접점에 머물러 있지 않고 흘러내려 버리게 된다. 식용유를 프라이팬에 부은 후에 가열하면 처음에는 끈끈하다가 덥혀지면서 점점 물처럼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엔진 오일도 온도에 따라서 점도가 크게 달라진다. 엔진 오일 박스에 보면 적혀 있는 5W-30이나 10W-20과 같은 숫자들은 오일의 온도에 따른 끈끈한 점도 특성을 나타낸다. W는 겨울(Winter)의 약자로 W가 붙는 숫자, 속칭 앞 점도는 저온에서의 유동성을, W가 붙지 않는 숫자인 뒷 점도는 100 ℃ 에서의 점도를 나타내고 있다. 앞의 숫자가 낮을수록 저온에서 시동성이 좋고 뒤쪽 숫자가 높을수록 높은 온도에서도 점도를 잘 유지할 수 있다.
보통 대한민국의 승용차는 사계절용으로 5W-30 엔진오일을 많이 쓰며, 연비 위주의 경우 5W-20 점도도 많이 사용한다. 연비 개선을 위해서 0W-20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연비는 좋아지는 대신에 너무 뜨거운 초고온 내구 사이클에서 문제없는지를 추가로 검증해야 했다.
이런 물성치는 기본적인 용매에 여러 첨가물을 섞어서 만들고 용도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 엔진 오일이나 고급 엔진 오일이나 큰 차이는 없다. 다만 고급 엔진 오일은 석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나프타를 원료로 만들어 성분이 일정하다. 그리고 특정 온도 이상 주행을 장기간 할 시에 엔진 오일 자체의 물성치가 변하면서 열화 되어 점도가 떨어지는 현상이 덜하다. 일반 엔진 오일은 석유를 정제해서 연료 성분을 다 뽑아내고 남은 광유를 기본으로 만들기 때문에 저렴하지만 성분이 완전히 일정하지는 않아서 열화가 더 빨리 찾아온다. 최근에는 순수 광유를 그대로 쓰는 경우는 거의 없고 수소환원 정제라는 과정을 거쳐서 일반 엔진 오일도 성능이 많이 개선되었지만, 일반적으로 고급 엔진 오일은 초고온에 강하고 좀 더 긴 마일리지까지 성능을 유지한다고 보면 된다.
두 오일의 가격도 그 주기만큼 차이가 나기 때문에 소비자는 본인의 패턴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보통 일반 정품 엔진 오일도 20,000km 까지는 내구 시험 검증을 하기는 하지만 실도록 주행은 여러 변수가 많으니까, 1년에 10,000km 정도 혹은 1년에 한 번 오일을 주기적으로 간다고 하면 일반 엔진 오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자주 정비를 가지 못하고 1년에 한 번 가는데 20,000km 정도는 충분히 타는 고속, 장거리 주행이 많은 운전자는 고급 엔진 오일로 한 번에 가셔서 다음번 정비까지 시간을 충분히 벌어 두시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도 고급이든 일반이든 본인 차량 엔진의 사양(5W-30같이)에 정의된 점도를 가진 오일을 사용하시는 것이 중요하는 걸 잊지 말자. 잘 달리려면 잘 통해야 하고 잘 통하려면 상황에 맞는 선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