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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Jun 19. 2024

책을 쓰는 법 - 배우고 소화해서 내 말로 정리한다.

새로운 분야도 배우면 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바로 어제 세 번째 책의 퇴고를 마쳤습니다. 인쇄소로 넘어가면 7월 초에는 출간이 될 것 같아요. 주제는 이곳 브런치에서 오랫동안 연재했던 자율주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출판사의 배려로 저는 매주 2~3 주제 정도를 이곳에 올리는 형태로 8개월 정도 꾸준히 작업했었는데 그 결실이 곧 세상에 나옵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autonomusdrive


퇴고를 위해 출판사에서 보내 준 조판을 앞둔 PDF 파일을 보고 있으면 글을 쓰던 시간들이 새록새록 생각납니다. 교과서 시리즈로 출간되는 책의 형식이, 한 페이지에는 설명이 그 옆 페이지에는 관련된 자료들이 배치되는 형태다 보니 한 주제에 대해서 보통 700~800자 내외의 글을 써야 했습니다. 자율 주행에 관심은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제가 직접 개발에 참여한 적은 없었던 터라 사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참 막막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자동차도 어디 제가 차에 들어가는 모든 걸 잘 알아서 만드나요? 잘 몰라도 물어보고 공부하고 이해하고 문제가 있으면 함께 해결해 가면서 만들었던 것처럼, 책도 그렇게 공부하면서 써보자고 덥석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합니다. 


일단 벤치마킹부터 해야 했어요. 국내외에 출시된 자율 주행 관련 책들을 살펴보면서 어떤 주제들을 다루고 어느 정도 깊이로 다루었는지를 살펴봤습니다. 분야별로 파고들면 너무 전문적인 이야기들이 많았고, 시중에 나온 책들은 모빌리티 산업 전반에 대한 소개하는 책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조금 더 기술적인 내용은 기술 전문 서적이 보편화되어 있는 일본 책들의 구성이 괜찮아 보였습니다. 그렇게 여러 책들을 보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기초로 쓸 아이템을 모아 목차를 구성하게 됩니다. 

 

https://brunch.co.kr/@nostalgia9/429


대통령 연설문 작성자로 유명한 강원국 선생님도 글쓰기 강연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세상에 나만 아는 것 같지만, 이미 비슷한 고민들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무수한 책들을 내고 있어요. 그러니까 일단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다른 사람들은 어떤 책을 냈는지 한번 찾아보세요. 그리고 그 책들을 보면서, '아 나라면 그 주제를 이런 관점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나만의 방식으로 마음속에 이야기를 풀어내면 됩니다." 


세상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 써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저는 이번 책 작업을 하면서 더 깊게 느끼게 됩니다. 여러 가지 지식과 생각들이 글이라는 형태로 정리되어 나오려면 꼭 "내 안에서 소화되어서 내 것이 되는" 과정을 필요로 하더군요. 엔진에 대해 주로 다루었던 첫 번째 책이야 제가 20년 동안 고민했던 내용들이라 그냥 제 안에 있는 걸 잘 꺼내기만 하면 됐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책은 예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카메라로 찍힌 영상을 분석하는 라플라시안 미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일단 제가 그게 무언지를 알아야 했습니다.



방법이 있나요? 자료를 찾아보고 배워서 이해하는 수밖에요. 각종 코딩 사이트들에 들어가고 여러 논문들이나 사례집들도 보고 강의도 들으면서 일단 제가 적어도 왜 그게 필요하고 어떤 원리로 작동하고 어떤 장점이 있는지를 알아야 했습니다. 참 다양하신 분들이 너무도 고맙게도 복잡한 수식이나 코딩이나 인공지능과 같은 새로운 영역들을 친절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제가 작업한 책은 전공서적도 아니고, 논문도 아니라 관심 있는 마니아들에게 기술적 배경을 소개하는 형태로 주제에 대해서 800자 내외로만 설명하면 되는 형식이어서 저는 주로 아무것도 모르는 가상의 대학생을 앞에 두고 설명해 준다는 마음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자료를 찾아본다고 해도 내 것으로 소화하는 데는 시간이 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글을 바로 쓰기보다는 사전 조사를 한다고 생각하고 이런저런 관련된 자료들을 쭉 봅니다. 그리고는 다른 일들을 했습니다. 하루 정도 묵히고 나서 아침에 샤워를 하면서 그래 오늘은 써야 하는데 무슨 이야기로 어떻게 시작하면 될까 하고 고민하다 보면 지나쳤던 그 많은 정보들 중에 마음에 남아서 이야기했으면 하는 내용이 걸러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살아남은 포인트를 뼈대로 둘째 날에 휙 하고 써 버립니다. 


800 자라는 분량이 정해져 있는 것도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자칫 너무 구체적인 이야기를 다 담기에는 짧고 그렇다고 너무 대충 넘어갈 수도 없는 적당한 분량 안에서 한 주제를 정리해야 했으니까요. 일단 생각나는 대로 쭉 써보고 분량이 넘어가면 한 텀 쉬고 한 바퀴 주변을 걸으면서 생각을 추슬러 봅니다. 그러면 남길 이야기와 버려도 될 이야기들이 나뉘면서 좀 더 심플하고 명확한 표현으로 다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누스 출판사의 교과서 시리즈 중 일부 - 세상은 넓고 배울 건 너무 많네요. 


그렇게 매일 꾸준히 한두 시간 정도를 쌓은 덕분에 이렇게 또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전공한 분야가 아닌 영역에 대해서도 글을 쓰게 되면서 책을 쓴다는 활동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조금 더 이겨내게 되었습니다. 꼭 내가 해 보지 않더라도, 꼭 내가 1부터 100까지 모든 걸 알고 있지 않더라도 남들보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남들이 어디까지 필요한지 고민해 보고, 남들보다 조금 더 들여다봐서,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소화하고 그래서 내 안에서 차고 넘치는 걸 꾸준히 꺼내서 정리해 보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라면 나이가 들어도 오래오래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계속 배우고 소화해고 제 말로 정리해 보는 일들을  계속하려고요. 20여 년 전에 전공했던 내연기관은 이제 사양 산업이 되어 가듯이 세상은 계속 변하겠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세상이 빨리 변한다는 건 그만큼 배워야 할 새로운 것들이 더 많아진다는 뜻일 테니까요. 부디 이 귀한 호기심을 앞으로도 계속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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