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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푸른 탑 삼봉(三峯), 마음에 담으러 오른다!

남미 파타고니아 토레스 델 파인 ‘삼봉’부터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까지

by 관계학 서설 II

푸에르토 나탈레스 3일 차는 토레스 델 파이네(이하 '토텔파'라 한다, 푸른 탑) W 동쪽 코스를 올랐다. 비록 브롬튼과는 같이 하지 못했지만 하이킹과 어떻게 브롬톤을 조화롭게 접목시킬 수 있을지를 또 한 번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였다. 날씨는 가는 동안은 수시로 모습을 달리했다. 바람이 약간 부는 서늘한 초가을에서 산행 입구부터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더니 삽시간에 눈으로 변하고 결국 우박을 겸한 싸락눈으로까지 발전하여 한겨울 환경을 연출해 냈다. 산 아래 휴식 장소까지는 어떻게든 브롬톤을 몰고 가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마음만 앞서고 결과적으로 숙소로 돌아올 때까지 미니버스 밴 뒤 짐칸에서 아예 브롬튼을 꺼낼 수도 없었다. 다음 여정부터는 산악용 타이어도 준비 헤야겠다는 '괜한' 다짐으로 마음만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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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도르 떼(좌측), 청록색 빙하 강(가운데), 토델파 동·서쪽 투어(우측)

토레스 델 파이네 동쪽 W코스 따라 라스 또레스 전망대까지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두 시간 남짓 달리면 토델파 삼봉을 마주할 수 있는 정상 호수로 가는 길 입구에 닿는다. 가는 도중 하늘에는 안데스 맹금 콘도르가 날고, 땅에는 파타고니아 맹수 퓨마가 라마와 과나코를 쫓는다. 모레노 빙하에서 우연히 마주친 콘도르와는 또 다른 감흥을 준다. 떼를 지어 하늘 높이 빙빙 맴도는 날갯짓이 먹잇감을 정하고 무리 전체가 이를 노리는 듯하다.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는 안데스 퓨마를 안내 가이드의 방향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발견하고는 모두들 어린이처럼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그렇다면 오늘 일진(日辰)이 나름 좋다는 말인가! 산행에도 행운이 따라 '삼봉'을 가까이에서 영접(迎接)해 보길 간절히 바라본다. 불현듯 '생애에 3번의 덕을 쌓아야 맑게 갠 백두산 천지를 내려다볼 수 있다.'라는 중국방향 장백산 산행도중 언듯 들은 현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자연과의 교감은 세계 어는 곳에서나 '신비와 행운 그리고 복(福)'을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는 모양이다.

안데스 퓨마의 먹잇감 나들이


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옆, 청록색(turquoise) 빙하물이 강이 되어 흐른다. 몇 시간 힘들게 산행 후, 얻은 잠깐의 휴식 시간에 오른 길을 뒤돌아 보니 안개가 자욱하다. 돌무더기로 가득한 산자락은 휴화산 능선처럼 까맣다 못해 시커멓다. 안 그래도 한기가 스멀스멀 찾아오는데 갑자기 몸전체에 냉기가 흐른다. 가능한 가볍게 꾸린 조그만 배낭조차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이미 비는 눈보라로 바뀐 지 오래고 산자락을 오를수록 세찬 바람과 함께 찬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힘들게 칠레노 오두막까지 도달했다. 이제 토델파 삼봉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라스 또레스 전망대까지는 2-3시간만 더 올라가면 된다. 그러나 남은 2 km 산길이 토델파를 마주하기 위한 마지막 동선이기도 하지만 가장 어렵고 힘든 코스라고 한다. 고도는 400m밖에 안 높아지지만 경사가 심하고 가파르기도 하지만 산행길 전체가 바위투성이기 때문이다. 등산화를 준비 못한 일행까지 있어 악천후는 둘째치고 산악 가이드의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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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탑 삼봉(좌측), 하산 길(가운데), 오르는 길(우측)


토델파 삼봉, 급변하는 날씨 속으로 모습을 감추다

조그만 오두막 안에는 누구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거실 공간이 있고 1년 전부터 예약을 해야만 겨우 한구석을 차지할 수 있는 다인용 숙박장소가 별도로 갖추어져 있다. 휴식공간에는 세계 곳곳에서 온 하이커와 트레커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북적북적을 넘어 거의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음식을 먹기 위한 내 한 몸 움직일 공간을 만들어내기도 쉽지 않다. 그나마 바깥 한기를 차단하고 여러 사람의 '온기'로 몸을 잠시 녹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후딱 점심을 때우고 남은 시간을 이용해 오두막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내부 매점에 진열되어 있는 이런저런 산행 용품과 기념품도 살펴봤다. 오두막에서 잠깐 휴식 후, 나선 길은 세찬 눈보라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날씨는 물론이고 일행들의 준비상태도 최악이라 걱정이 태산인데, 무심(無心)으로 바라보는 자연세상은 별유천지비인간(别有天地非人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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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노 산장 내부(좌, 우측), 전 세계 방문객의 표지판(가운데)


몇 발자국 옮기다 오두막으로 일단 철수를 했다. 산악가이드의 최종 결정으로 우리 일행은 하산을 선택했다. 현재 날씨 상황으로는 우리 일행의 도전? 이 무리라고 그는 최종 판단을 내린 모양이다. 모두 많이 아쉬워했지만 '적절한' 판단이라 수긍하고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의도하지 않게 얻은 넉넉한 하산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토델파 자연을 좀 더 천천히 여유로운 마음으로 감상하기로 마음을 다졌다. '하나를 잃는 순간 다른 하나를 얻을 준비하고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다가올 슬픔을 맞이하자!'를 다시 한번 되뇌어 본다. 현지에서 우연히 만난 듬직한 한국 청년이 토델파를 오르고 내려오는 동안 틈틈이 다양한 각도로 기념사진을 남겨줘서 산행길은 물론이고 라이딩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과나코 고기와 함께 푸짐한? 저녁을 대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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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델파 국립공원 전경(좌측), 자갈밭 하이킹(가운데), 능선 중간지점 전경(우측)


내일은 이번 미주 대륙 여행의 마지막 방문지인 아르헨 우수아이아로 떠난다. 역시 12시간 장거리 버스 여정이고 칠레에서 아르헨으로 다시 국경을 넘는다. 버스에 브롬튼을 어떻게 잘 싣고 내릴지를 걱정하면서 스무 번째 짐 꾸리기를 새벽 늦게까지 마쳤다. 가자! 땅끝으로.


2022년 11월 3일(목), 토텔파 동쪽 칠레노 산장에서

#나홀로 #브롬톤여행 #대륙간열차 #알래스카 #페어뱅크스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 #역병시대 #해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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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0 : Cusco&Lima, Peru > Bogota, Columbia > Buenos Aires, Argentina > Cordoba > Salta_by plane (8 hrs) > El Calafate&El Chaltén_by Bus-Sur (7 hrs) > Puerto Natales, Chile_by Bus-Sur (15 hrs) > Punta Arenas > Ushuaia, Argentina > Buenos Aires

*뱀발 1 : '14 아르헨 남녀가 승용차로 남미 파타고니아에서 북미 알래스카 입구까지 865일 동안 5만 km를 달렸다고 한다. 그럼 페어뱅크스부터 우수아이아까지 라면 약 55,000 km 정도 되지 않을까? 이번 미주 대륙 브롬톤 여정동안 6개국 28개 도시를 방문하면서 11번 비행기, 10번 대륙(간) 기차, 5번 대륙(간) 버스를 탔다. 모든 구간이 1,000km 이상이다. 칠레 푸에르토 나탈레스가 토레스 델 파이네의 관문이라면 푼타 아레나스* 는 남극 건너편 아르헨티나 남미 땅끝 마을 우수아이아로 가는 길목이다.

*뱀발 2 : 80 days of solo Brompton trip in the Americas 55 https://bit.ly/3Jmyx8W To Dear Brompton Owner & Executive Director https://bit.ly/3Grv0o4 My journey in the Americas https://bit.ly/3WlJiMy on 'Brompton Folding Bicycle' http://bit.ly/3vcVJhW on 'Bicycle Travellers'

*뱀발 3 : 이제야 여행 계획(‘21년 12월), 사전준비와 답사('22년 2월-4월)부터 실행(‘22년 9월 14일-11월 14일)까지 ‘기록&보관한' 글과 사진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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