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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

CH III. 100 깡마다 공포, 그리고 교육

by 관계학 서설 II

Imparting and sharing one’s knowledge is a task that not everyone is capable of undertaking.

KakaoTalk_20250222_031944277.jpg 헬륨을 사용하여 수심 100m에 도전하던 날, TDI 정의욱본부장과 함께!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난 선생님을 무조건 존경한다. 단순히 유교적인 가르침 때문이거나 어릴 때 일방적으로 강요를 받은 세뇌교육 때문만은 아니라 믿는다.


다이버에게 배우고 ‘가르친다’는 것은?

직접 학교 강단에도 서 보고 기업 연수원에서 강의를 한 적도 있다 보니 '선생님'의 입장과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결과라 생각한다. 축적된 지식과 정보, 그리고 경험을 자신만을 위해 잘 활용하는 것과 이를 다른 사람에게까지 잘 이해시키고 설득하여 '도움'을 주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더구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남이 가지 않았던 길을 새롭게 개척해 나가는 '솔선수범'의 자세에서 선생님의 진정한 모습을 보곤 한다. 더 나아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덧붙여 '자신감과 '즐거움'을 누릴 기회까지 제공해 준다면 어떻게 그 뒤를 안 따를 수 있을까?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15년 전만 해도 굳이 왜 더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칠흑같이 어두운 수중동굴을 1km씩이나 들어가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기꺼이 ‘사부‘라 부른다

그러나 그런 주변의 몰이해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수십 번 수백 번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테크니컬 다이빙이란 새로운 세계를 우리들이 경험하고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같이 공부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함께 토론하여 새로운 지식과 정보의 문을 하나하나 열 때마다 느낀 희열과 만족감은 잊을 수가 없다.


감압시간만 100분 이상이 필요한 대심도 다이빙, 위기상황에도 즉각 수면 위로 부상할 수 없는 수중동굴 다이빙, 얕고 짧은 호흡이란 수중호흡의 기준 원칙과 전혀 다른 재호흡기 다이빙, 60-70m 이상 수심에 있는 침몰선의 선미에서 선두까지 관통하는 곡예와 같은 난파선 다이빙 등 테크니컬 다이빙을 난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다.


'직업도 아닌데 취미론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란 투정 섞인 푸념을 할 때마다 말없이 웃기만 하던 그때 그 교육과정의 선생님이 참 많이 그립고 보고 싶다.


취미생활과 일상의 삶은 끝 지점에선 서로 맞닿아 있음을 일깨워 준 스쿠버다이빙 선생님들을 난 이젠 강사(Instructor)라고 부르지 않는다. '사부!', 의미와 뜻이 참 잘 담긴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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