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10

by 서린

수업이 잘 운영되고 말고는 누구의 책임이 클까. 그 비율은 어떻게 될까. 수업은 상호작용이다. 강의가 아무리 좋아도 배우는 이의 마음가짐이 안 되어 있으면 소용이 없고, 학생들이 아무리 열정적이라도 교사가 심드렁하면 소용이 없다.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과 같고, 이렇다면 50:50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90:10으로 설정한다. 교사가 90이고 학생이 10이다.


위에서 나는 '설정한다'라고 했다. 생각한다거나 이게 옳다고 하지는 않았다. 누구인지 어떤 과목인지 무슨 상황인지에 따라 비율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내가 90:10이라고 설정을 한 것은 수업에 대한 내 책임감의 표현에 가깝다. 즉 누가 더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하는가 물었을 때 교사인 나라고 답을 하기 위해서다. 만약 학생들의 자발성이 더 큰 몫을 차지하는 수업이라면 90:10으로 접근하는 게 오히려 안 좋을 수도 있다. 지나친 책임감이 학생들이 스스로 하고자 하는 마음을 누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내 기본값은 90:10이다.


난관에 봉착했던 1학년 글쓰기 수업. '가족'과 '소소한 꿈' 모두 실패를 한 후 계획을 다시 세웠다. 그리고 수업 당일. 이번 수업에서는 반드시 내가 주도권을 다시 갖고 온다는 생각으로 문을 열었다. 짐짓 심각한 듯한 표정으로 앞에 서서 책상 위에 필기구와 노트 외에는 모두 치워달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는 바로 주제로 들어갔다. (빈 틈을 주면 안 된다.)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가족은 어떤 의미인지 무언가에 비유를 해 보고 그 이유에 대해서 말해보자."


이번 수업까지 지난 수업처럼 진행되면 수업이 너무 밀린다는 말을 덧붙였다. 너무나 개별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일반적으로'라는 말을 강조했다. 이렇게까지 해놓고 나니 분위기가 사뭇 진지해졌다.


여러 가지가 나왔다. 불로는 가족의 온기를 설명했고 물로는 생활 중에 스며드는 가족을 비유했다. 그중 가장 깊이 들어왔던 것은 우산. 평소에는 잘 모르지만 비가 오면 지켜주는 존재. 이렇게까지 생각하는구나 싶어서 뿌듯하고 대견했다. 이런 생각들이었으니 글이 잘 나올 것은 안 봐도 뻔했다.


각 수업이 끝나면 어떤 느낌이 남는다. 대표적인 느낌 두 가지를 꼽는다면 찜찜함 혹은 뿌듯함이다. 앞의 두 차시는 찜찜함이었고 이번 차시는 뿌듯함이었다. 이 느낌들은 내 수업 운영이 어땠는지를 먼저 알려주는 신호다. 처음에 '가족'을 소재로 꺼내 얘기를 꺼냈을 때 그렇게 곁가지로 빠질지는 사실 예상하지 못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소소한 꿈'을 소재로 꺼내서 진행을 해보고 나서야 알았다. 소재 문제가 아니었구나. 다른 접근이 필요하구나.


만약 여기서 내가 학생들의 책임을 생각하기 시작했다면 더 이상 진행은 어려웠을 거다. 너희들 마음가짐과 태도가 이렇기 때문에 진행이 안 되고 있다는 잔소리로 연결됐을 가능성이 있다. 혹은 교사로서 이 정도도 진행 못하는가 하는 자괴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내가 자괴감을 느낄 것도 아니고 학생들의 책임을 물을 것도 아니다. 글쓰기 수업의 목적과 흐름을 다시 생각해 보고 수업 운영 전략을 다시 잡으면 될 일이다. 그리고 학생들과도 현재 수업 운영 상황이 어떤지 공유하면 될 일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명확하다. 내가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하는가에 따라 학생들에게서 꺼낼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어떤 학생들이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간에 내게는 그를 움직일 수 있는 '90'의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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