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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한 Jan 14. 2022

소중한 사람들, 가족과 함께하고 싶다

나를 바라보는 순간들

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 친구, 애인, 특별한 인연 등 많은 이름이 떠오르겠지만, 아마 많은 사람들은 가족이라도 답할 것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세상에서 제일 편한 사람들, 내 얘기를 가장 잘 들어주는 사람들, 나를 향한 무조건적인 신뢰와 사랑을 보여주는 사람들, 그것이 가족이다. 나는 그런 우리 가족과 함께 하고 싶다.


나는 어린 시절을 중국에서 보냈다. 8년이라는 긴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는데, 나에게는 정말 좋은 기억들만 남아있는 곳이다. 아버지의 일 때문에 온 가족이 다 함께 밟게 된 낯선 땅에서, 낯선 공기와 풍경, 낯선 사람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언어와 문화까지, 세상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지만 나는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가족이 있었다.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고, 그 모습이 얼굴과 행동에서 다 보이는 어머니와 아버지, 나에게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소중한 동생. 나는 이 사람들이 너무나 좋았다.


중국 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아버지는 우리 형제를 매일매일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며 새로운 환경과 친해질 수 있게 해 주셨다. 덕분에 중국어도 금방 늘었다. 어머니는 매일 맛있는 음식과 손수 만든 빵으로 우리에게 따뜻한 품이 되어 주셨다. 같이 축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보던 동생의 "쌩쑈"도 행복이었다. 가족과 함께 있었기에, 나는 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우리 가족은 급하게 한국으로 이사 오게 되었다. 워낙 급하게 이사가 결정된 탓에, 우리 가족은 잠시 떨어져 지내야 했다. 원래 어머니가 중국에서 해오시던 일이 있었고, 급하게 결정된 이사로 인해 그 일을 끝 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중국어도 잘 못하는데... 혼자 그곳에 계셔야 했다. 너무 싫었다. 그곳에 워낙 정이 붙었기도 했지만, 한국도 아닌 중국이라는 나라에, 어머니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는 기분은, 평생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한국에 나온 후, 나와 동생은 기숙사 학교에 입학했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떨어져 살기 시작했다. 너무 싫어도 어쩌겠는가, 현실이 그러한 것을. 항상 함께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빠, 우리 가족이 헤어짐에 너무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잠시 우리를 보러 한국에 나오신 어머니를 공항에서 배웅해드린 직후였다. 그렇게 떨어져 살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는 혼자 외로이 입국장에 들어가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는 게 익숙하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2년을 흩어져 살았다. 금방 중국에서 나오실 거라 생각했던 어머니는 2년이라는 긴 시간을 타지에서 외롭게 버티셨고, 아버지는 조용한 집안을 쓸쓸히 지키셨다. 나와 동생은 그저 학업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어머니가 한국으로 완전히 오시던 날, 나는 우리 가족이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제는 내 차례였다. 나는 중국보다도 훨씬 멀리에 있는 영국으로 대학 진학을 하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은 소중한 기회였기에, 매일같이 설레는 마음으로 대학 생활을 준비했지만, 출국 전날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족이 배웅해줄 때에는 어린애같이 울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막상 가서는 그 누구보다 적응도 잘하고, 성공적으로 대학 생활을 마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모든 것이 무서웠던 것은 사실이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영국에서의 생활이 적응되고 무르익을 때쯤, 나에게 한 사건이 찾아왔다. 정확히 하자면, 나의 일이 아닌 가까운 사람이 겪은 아픈 이야기였다. 나는 그저 그냥 한 사람에 불과하기에 다른 이의 아픔을 아무 곳에나 막 풀어놓을 수는 없지만, 그때 그 사람의 아픔은 나에게도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다. 우리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지금 듣는 이 목소리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매시간, 매분 나를 찾아왔다. 어찌 됐던 부모님도 점점 연세가 드시고, 나도 동생도 각자의 삶을 만들어나가는 찰나에 가족과의 헤어짐이 여태껏 당연시되고 있었다는 것이 참 버거웠다.


우리 가족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함께 있지 않다. 동생은 이제 영국에서 마지막 학년, 대학교 졸업반 수업을 듣고 있으며, 나는 대학생활을 모두 마친 후 뒤늦게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 다행히 부모님 두 분은 항상 함께 하시지만, 앞으로도 우리 가족 4명이 다 같이 있는 시간은 극히 적을 예정이다. 동생은 졸업 후 귀국하면 나처럼 입대를 할 것이며,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전역 후, 감사하게도, 다시 영국에서 석사 학위 공부를 할 예정이다. 두 군데서 합격통보를 받았는데, 아직 어느 곳으로 갈지 정하지 않은 상태다. 예전이었으면 어느 곳으로 갈지 망설임 없이 기회를 잡았을 텐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더 적합한 학교가 어디일까 고민되기도 하지만, 그냥, 우리가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매일매일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리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멋있는 삶을 살려면 이 기회를 꼭 잡아야 하는데, 기회를 잡는 것이 자꾸 망설여진다. 같이 있고 싶어서. 그리고 나는 너무나 잘 안다. 가족과 함께가 아니라면, 나는 할 수 없다.



2021.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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