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님의 안부를 더욱 묻고 싶은 5월입니다.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진하게 배인 편지를 읽으면서 어린이날을 어떻게 보내실지 궁금했거든요. (그리고 어제는 어버이날이었죠. 5월은 가정의 달이어서 시간이 더 빨리 지나는 것 같아요!) 저는 어린이날 아침 (뜬금없이) 케이크에 촛불을 불고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달했어요. 날이 좋아 오후에는 자전거를 탔고요. 어린이날을 축하한다는 명분으로 준비한 케이크와 초는 놀이공원이나 어느 멋진 장소에 데려가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만회해 보려는 저의 얄팍한 눈속임 같은 것이었지요.
동네 산책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어쩌면 다른 주말 일상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평범하고도 조금은 심심한 날을 보냈어요. 일 년에 특정한 날만 크게 반짝이기보다 매일이 잔잔히 빛나면 좋겠다는 심산으로 아이에게 보낸 신호였지요. 어린이날을 기대하고 기다린 아이가 보낸 신호와는 전혀 다른 것일 테지만요.
서로가 서로에게 보낸 어긋난 신호를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라고 해석해주신 헤븐님. 덕분에 어긋남이 실패가 아니라 실험이라는 과정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문제는 실험을 계속 이어가는데 있겠지요. 인내의 종착지가 어디냐고 물으셨죠? 실험이 과정인 것처럼 인내도 종착지 없는 여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여정이 무탈하려면 어떤 비밀병기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지쳐서 중간에 그만두지 않으려 면요.
도리스 레싱의 단편 『19호실로 가다』에 나오는 문장을 적어주셨죠. ‘지성은 싸움, 삐치기, 분노, 침묵, 비난, 눈물도 금지했다. 특히 눈물을 금지했다.’ 소설 속 수전은 감정에 굴복하기보다 견고한 결혼 생활을 지켜요. 하얗고 크고 좋은 집, 건강한 네 아이, 경제적 능력을 성실히 수행하는 미남 남편. 더 바랄 것 없는 모든 것이 매끄러운 삶이라서 완벽하게 유지해야 했으니까. 수전은 흠 없는 삶을 위협하는 감정을 ‘적’으로 규정하며 필사적으로 금지시켜요. 그런 감정들이 현명하지 않으며 그녀 자신답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에 감정을 허용할 수가 없었겠지요.
그 ‘적’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수전이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에 헌신하며 키운 네 아이는 수전의 존재 이유였어요. 가정과 아이들이 수전의 삶을 꽉 채우고 있어서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겠지요. 그런데 이제 아이들이 수전의 손을 벗어나면서 비로소 수전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게 되어요. 그때 마주친 것은 허무와 두려움이 아니었을까요. 공허와 초조함이라는 적. 결혼생활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고 자신이 누구인지 묻는 질문이 한 번 고개를 든 이상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수전은 철저히 혼자여야 했어요. 그런데 혼자 있기가 쉽지 않죠. 고독이라는 값을 지불하고 완벽한 결혼을 얻었으니 둘은 양립하기가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이제 수전은 철저히 고독하고자 해요. 다락방에 마련한 ‘엄마의 방’이 곧 가족실로 변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자기만의 방’은 집안이 아니라 반드시 집 밖에 있어야 했지요.
그런데 집 밖에 ‘자기만의 방’을 얻으려면 돈이 필요해요. 안타깝게도 가정에만 충실했던 수전이 방을 따로 얻을 만큼 돈이 충분하지 않죠. 수전의 혼자만의 시간은 남편 매슈가 제공하는 5파운드에 달려있었다는 사실. 수전은 그 돈으로 프레드 호텔 19호실로 갑니다. 수전은 딱 그 5파운드만큼의 자기만의 방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지요.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들에 달려 있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을 빌리면 고독의 자유는 물질적인 것에 달려있는 것일까요?
수전은 규칙적으로 19호실로 가요. 충분한 고독 속으로 잠겨야 부과된 역할을 다시 수행할 수 있어요. 방전된 자기 자신을 충전하는 모습이 그려지죠. 자신을 짓누르던 압박이 사라지고 정말로 혼자가 되는 짧은 시간 동안의 황홀함을 수전은 느껴요. 온전히 고독 속으로 빠지는데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보통 고독을 독대하기보다 다른 분주한 일상으로 채우고 잊어버리곤 하니까요. 소설을 읽으면서 19호실로 가는 수전의 발걸음을 따라갔어요. 수전의 행동을 정당한 이유도 없이 권태에 빠진 중산층 주부의 일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역할을 다른 누군가에게 위임하면서요. 어쩌면 위임이 가능한 상황이 수전에게 행운은 아닐까. 그런 자기만의 방 ‘19호실’을 가질 수 없는 상황도 무수히 존재하니까요.
수전은 일탈하는 주부가 아니었어요. 그저 자기 자신을 찾아 나선 것뿐이지요.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서. 19호실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혼자 있기. 절박하게 혼자 있기. 잃어버린 영혼은 온전히 고독과 독대해야만 만날 수 있었어요. 그래야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여기서 묻고 싶어요. 수전과 매슈는 모두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인데 왜 수전은 인생을 사막으로 느꼈을까요?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고 하지만 수전과 매슈가 어떻게 복잡하게 나쁜 사람인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누가 누구를 비난할 수 있을까요. 가해자는 아무도 없어요. 모든 것이 완벽했고 모자람이 없었어요. 완벽하게 짜인 삶. 그것이 문제일 수 있겠네요.
완벽한 삶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만이 완벽함을 유지하는 방법이었어요. 수전에게는 자기만의 방, 19호실이었고, 매슈에게는 음... 외도였고요. 놀랍게도 수전은 매슈의 외도를 예상하고 있었고 매슈는 수전에게 애인이 생겼다고 믿고 있었어요. 그렇지 않으면 수전의 외출을 도무지 설명할 수가 없으니까요. 매슈처럼 애인을 만들 힘도, 연애에 대한 열정도 없는 수전이지만 가상의 애인을 꾸며내요.
여기서 헤븐님이 언급하신 불온한 사랑이 떠오릅니다. ‘불온한 사랑’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불온하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나와요. 1. 온당하지 않다. 2.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 있다. 그러니까 '불온한 사랑'은 체제에 맞지 않는 온당하지 않은 사랑쯤 되겠어요. 여기서 체제란 일부일처제를 말하겠고요.
불온한 사랑을 하는 남편 매슈가 수전에게 더블데이트를 제안하죠. (하!) 수전은 없는 애인을 만들어내야 하는 궁지에 몰리는데 매슈의 제안대로 더블데이트를 한다면, 불온한 사랑이 온당해지는 걸까요? 그 불온한 사랑으로 부부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이 대목은 두 사람의 결혼이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다는 것을 보여주지요. 그러고 보면 쇼윈도 부부생활에도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창문을 반짝반짝 닦아 창에 비친 모습이 가지런하고 매끈해야 할 테니까요.
수전은 아마 완벽한 결혼생활이 자신을 배신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겠지요. ‘수전이나 매슈의 잘못은 확실히 아니었다. 원래 세상이 이런 탓이었다.’라고 도리스 레싱이 말했듯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어요. 그냥 이러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 소설은 삶의 무게와 압박을 누구나 힘겹게 버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완벽한 결혼생활도 부서질 수 있다면, 불안한 결혼생활에 대해 더 이상 어떤 말을 할까 싶습니다. 자신을 지켜준 것은 지성도, 사랑도, 가족도, 아이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버렸을 때, 수전은 자기만의 방, 19호실로 자신을 지켜요. 19호실이 위태로운 삶을 지탱해주는 허파이자 심장, 숨을 쉴 수 있는 자신의 자아가 있는 곳. 비로소 몸과 영혼이 합치되는 곳이었으니까요. 이제 그 비밀스러운 심장을 외부에 들켜버렸을 때 무엇이 남는가 묻지 않을 수 없어요. 수전은 완전히 혼자가 되기 위해 영원한 고독 속으로 잠이 들지요.
저에게는 ‘자기만의 방’도 ‘19호실’도 없지만 저만의 방을 마련해요. 책이라는 입구로 들어가면서요. 고독 속으로의 침잠이 현실의 버팀목이 되듯 책으로의 침잠이 저를 그럭저럭 버티게 해 줍니다. 그러니까 책 읽는 시간과 공간이 ‘자기만의 방’인 셈이지요. (진짜 물리적인 ‘자기만의 방’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요. 흠흠)
일찌감치 수전이 싸움, 분노를 터뜨렸다면 무너지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수전이 자신의 눈물을 허용했다면, 금지하고 있던 눈물을 터뜨렸다면, 남편 매슈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관계가 멀어지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헤븐님의 눈물을 응원합니다. 눈물이라는 분출을 애써 억압하고 금지하는 것보다 훨씬 건강하니까요. 눈물은 어쩌면 상처가 숨을 쉴 수 있는 출구가 되어 견디기 어려운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는지 도요.
그러니까 이 삶을 지속하기 위한 비밀병기는 ‘자기만의 방’이라고 과감히 말해봅니다. 어긋난 사랑의 신호를 사랑의 실험이라고 여기며 지속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는 방을요. 가족의 달 5월, 가족으로서 부과된 역할을 수행하다가 참고 또 참아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숨을 쉴 수 있는 방을요. 비록 제한된 자유일지라도 한 줌의 자유가 때로는 절실한 법이니까요.
모두가 각자의 방식대로 ‘자기만의 방’을 발명할 수 있기를 바라며
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