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바디 한번 측정해 보죠.
맨발로 기계 위에 올라가 막대 모양의 기계를 양손으로 잡고 양팔을 벌린 채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서 있으면 ‘인바디’가 몸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알려 준다. 키, 체중, 근육량, 골격근량, 체지방량 등 적나라한 숫자가 기계판에 나타나는 것이다. 체성분 숫자가 표준에서 얼마나 멀고 가까운지, 여러 사람들의 통계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가 종이로 인쇄되어 나온다. 종이에 찍힌 숫자는 운동의 동기가 되는 동시에 좌절의 이유가 된다. 운동을 한다고 했는데, 몸무게는 늘고 근육량은 줄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밤음주와 아이들 야식을 만들어준다는 핑계로 먹게 된 떡볶이와 피자가 늘어난 몸무게의 주범으로 추정되는 반면, 근육량이 줄어든 이유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기대한 수치가 거꾸로 가는 것 같아 운동을 잘못하고 있는 것인가, 점검하게 되었다. 먹는 음식을 사진으로 남기고 유산소 운동을 늘리기로 했다. 나는 내가 먹고 마시는 것이 곧 나라는 사실을 되뇌며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인바디 수치를 이해하고 몸을 관찰하는 과정은 읽기와 비슷하다. 결국 운동이란 몸을 읽는 일이 아닐까? 오른팔과 왼팔 근육량이 동일하지만 오른다리는 왼다리보다 근육이 더 많다. 평소 오른다리로 짝다리를 자주 짚어서인가? 내가 어떤 동작을 어려워하는지, 나의 골반이 얼마나 비뚤어졌는지, 오른쪽 보다 왼쪽으로 목을 돌릴 때 더 힘이 들어가는지, 나의 앉은 자세가 얼마나 내 몸을 망가뜨리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결국 나의 몸을 망치는 건 내 자신이었다는 깨달음에 도달하면 나는 그야말로 겸허한 마음이 된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마음에 대해 알아가듯, 운동을 하면서 나의 몸에 대해 알아간다. 책이 마음의 거울이라면 운동은 몸의 거울이다. 쓰고 보니 몸과 마음을 분리한 것 같지만 사실 몸과 마음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가. 내가 운동을 시작한 이유도 마음의 활력을 찾기 위해서였듯이, 아픈 몸은 종종 아픈 마음에서 비롯되고 아픈 마음은 아픈 몸을 부른다. 몸을 점검하는 일이 마음을 점검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운동을 하면서 자주 마주친다.
운동의 연장선으로 근육을 풀거나 몸의 부위를 손으로 누르며 뭉친 부분을 찾아낸다. 트레이너 선생님이 목 뒤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부위를 건드릴 때, 나도 모르게 악 소리가 난다. 그냥 살짝 눌렀을 뿐인데 비명이 튀어 나온다. 아아아아악. 만져봐야 비로소 알게 되는 아픈 부위. 건드리기 전까지는 모른다. 몸을 점검하면서 오른쪽 고관절이 더 솟아 있었고 왼쪽 허리가 더 긴장되어 있었다는 걸 발견한다. 몸의 여러 지점들을 살피면서 어디가 막혀 있는지 점검한다. 몸의 막힌 부분들이 풀리니, 마음까지 저절로 개운해진다. 마음이 답답할 때는 심리 상담을 할 것이 아니라 운동을 할 일이다.
운동을 몸읽기로 치환하는 것은 몸을 하나의 텍스트로 읽으려는 시도이며 해석해 보겠다는 나의 의지이다. 나의 몸이 숫자로 환산된 인바디 결과지를 읽으면서 무엇이 더 필요하고 바꾸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해석한다.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운동을 하지만 결과가 다른 건 해석의 차이 때문이니까. 나의 바람과는 거꾸로 가는 지표와 그래프를 읽으면서 물을 좀더 자주 마시고 운동 후에는 단백질을 챙겨 먹으라는 사인으로 해석한다. 해석을 읽기에 반영하여 몸을 움직인다. 몸읽기에 진심을 다하면 다음 인바디 숫자는 바뀔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