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을 쓰는 게 아니라 가슴을 열고 등 힘으로 잡아당기는 거예요.’ 제대로 안 하면 팔에서 보상작용이 일어나요. 운동 선생님 말에 자세를 고치고 손으로 잡고 있던 막대를 다시 가슴 부위로 가까이 잡아당겼다. 기립근, 광배근, 날개 근육 능형근 운동을 뭉뚱그려 ‘등 운동’이라고 부른다. 두 손으로 막대를 잡고 등 힘으로 잡아 당기면서 하는 운동은 광배근을 키우기 위한 운동인데 충분히 집중하지 않으면 팔에서 보상작용이 일어나는 팔에 힘이 들어간다는 말이었다.
보상작용은 목적이 되는 근육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할 때 다른 부위가 대신 쓰이는 작용을 말한다. 그러니 목적이 되는 부위가 아니라 엉뚱한 부위를 운동하게 되는 것. 써야 할 근육이 정작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의도하지 않은 부위를 동원하여 운동하게 된다.
‘보상작용’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운동 용어가 아니라 심리학 용어로 나온다.
‘육체적·정신적인 의미에서 자신에게 만족스럽지 못한 면이 있거나, 열등감 또는 사회적 지위에 대한 불만이 강할 때, 그 불쾌감을 보충하려는 심리작용.’
심리학 용어가 운동에 쓰이는 걸 보니, 심리(마음)와 운동(몸)은 필연적으로 연결된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도 부위별 운동을 할 수 있을까? 몸이 여러 근육으로 세분되어 있듯이 감정도 세분화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각각의 감정들이 등장한다. 버럭, 불안, 까칠, 당황, 따분, 부럽, 소심, 기쁨, 슬픔. 이들 중에 누가 나서느냐에 따라 주요 감정이 결정된다. 주인공이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불안이 높아질 때, 평소라면 하지 않던 행동이 튀어나온다. 적정한 감정이 나와야 할 자리에 다른 감정이 보상작용한다.
심리의 부위별 운동은 어떻게 가능할까? 타인에 대한 공감을 키우고 싶어서 문학책을 읽는다. 나의 좁은 마음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확장하고 싶어서. 슬픔에 대한 공감, 고통에 대한 민감성. 이해할 수 없는 나를 이해하는데에도 문학은 유익하다. 문학의 쓸모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가 경험했던 지난 시간을 언어화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니까. 풀리지 않는 의문을 언어화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무언가 풀리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감정은 단편적이라기 보다 다층적이다. 슬프면서 웃긴다거나, 씁쓸하면서 재밌다거나. 기쁘면서 질투가 난다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감정의 층위 속에서 어떤 특정한 감정을 발전시키고 싶다면 나의 의도와 노력이 개입될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감사를 통해 기쁨을 느끼는 감정 근육을 키우고 싶다. 감사도, 감정도 습관이라고 말한다. 근육을 키우면 다른 형태의 몸이 만들어지듯, 감정의 근육을 키우면 다른 감정의 길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으면서.
누군가를 오래 미워한 적이 있다.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거절감이 미움으로 바뀌었다. 사람들과 그럭저럭 잘 지낼 수 있다고 자부한 내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알려준 사람이었다. 더불어 미움에는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지도 알게 되었다. 미움이라는 감정은 파괴적이어서 영혼을 고갈시킨다. 너무 발달해버린 미움은 나의 시야를 가렸다. 온전한 기쁨을 누리게 하지 못할 만큼. 미움은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므로 누군가를 함부로 미워하지 않는다. 미움에 에너지를 쏟기에는 나의 에너지에게 미안하니까.
감정과 신체에너지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 책이 있다. 심리학자이자 뇌과학자인 저자가 쓴『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감정을 만들어내는 뇌의 비밀을 밝힌다. 뇌는 생각하기 위해 진화해온 것이 아니라 신체 예산 관리를 위해 진화했다. 뇌의 핵심임무는 ‘생존을 위해 에너지가 언제 얼마나 필요할지 예측함으로써 가치 있는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해내도록 신체를 제어’ 하며 안정된 지점(항상성)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지금 여기 살아있는 이유는 뇌가 신체활동과 정신 활동 신체 예산을 두루 잘 관리한 결과이다.
우울증은 정신질환이 아니라 신진대사 질환이라고 한다. 운동이나 산책이 건강한 감정을 갖는 데 도움 되는 이유이다. 나의 기분은 얼마나 사소하게 뒤집히는가. 몸이 편안하면 마음도 여유로워진다. 너그러워진다. 다정함이 체력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신체 예산이 균형을 이룰 때다.
감정, 정서, 정동, 기분, 느낌이 각각 미묘하게 다르지만 관장하는 기관은 하나, 뇌이다. 감정, 정서, 정동, 기분, 느낌 관리 핵심은 ‘신체 예산 관리’다. 이상적인 진화라면 스마트워치로 신체 예산을 정확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알려줄 것이다. 이를테면, ‘삐이. 포도당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사과 한 개나 초콜릿 한 조각을 드세요. 당신은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해서 뇌 화학물질이 부족합니다. 커피 한 잔, 크림을 곁들인 커피를 마셔서 내일의 에너지를 빌려오세요’ 라고. 하지만 현재는 기분이 엉망이라고만 알려줄 뿐 신체 예산 관리를 어떻게 할지는 나의 몫이다. ‘신체적인 것이 어떻게 정신적인 것으로 변형되는지 여전히 밝혀지는 중이고, 신체 신호가 정신적 느낌으로 전환되는 것은 여전히 의식의 위대한 미스터리다.’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설명하는 일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몸과 마음이 긴밀히 연결 되어있다는 것은 경험으로 안다. 카페라테 한 잔이 주는 기쁨이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이유를 뇌과학 버전으로 말하면 카페라테가 나의 신체예산관리에 꼭 필요한 요소다. 몸 근육을 키우는 일이 감정 근육을 키우는 일과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