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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의 기록 Jan 11. 2022

운동할 기분


이른 아침 불 꺼진 헬스장. 갑자기 내려간 기온에 실내 온도도 그대로 내려가 있다. 난방을 틀지 않은 탓이다. 겉옷을 벗기가 망설여 지지만, 두툼한 후드티를 입고 운동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옷을 벗자 찬 기운이 훅 들어온다. 오소소 몸이 떨린다. 냉랭한 공기를 느끼며 스트레칭을 하고 러닝머신 위에 선다. 서서히 속도를 올리고 걷기 시작한다. 보폭을 넓히며 팔을 90도로 접고 주먹을 쥔 채 과장되게 앞뒤로 흔든다. 속도를 더 올린다. 팔과 발의 움직임도 속도에 맞춰 빨라지기 시작한다. 몸의 온도가 올라가니 공기가 더 이상 차갑지 않다. 데워진 몸이 마음 까지 데워준다. 몸의 온도가 올라가니 마음의 온도가 올라가는구나. 위축되었던 몸이 펴지면서 가라앉았던 마음을 덩달아 일으켜 세운다.           



'몸을 돌보는 일이 마음을 돌본다'  ‘요가 강사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닌 요가를 시작한 지 2년째 접어든’ 요가 수련생이 쓴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에 나오는 말이다. 몸의 세계보다 마음의 세계를 보여주는 일상 회복 에세이는 무엇을 회복한다고 말하는가 ? 초 단위로 사는 방식을 동경하고 ‘뼛속까지 사무친 경쟁본능’을 장착하고 숨 가쁘게 달렸던 삶을. 요가를 알고 나서부터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뻣뻣했던 몸이 유연해지고 빡빡했던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따라하는 삶이 아니라 나만의 속도와 행복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자 마음이 말을 걸었다.”      


    

나에게도 몸을 움직이자 마음이 말을 걸었던 경험이 있다. 기록적인 폭염을 기록한 어느 해 8월. 나는 펄펄 끓는 집안에 있었다. 동남향이라 정면으로 해가 들이치는 집이어서 오후가 되면 지는 해의 빛이 대단히 강렬했다. 둘째 아이를 낳은 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몸조리를 이유로 에어컨 틀기를 자제하면서 그렇게 불가마 같은 더위와 싸우고 있었다. 약해진 몸으로 아이들과 지내다 보니 20개월 된 첫째 아이와 한 달 된 둘째 아이와 감기, 장염, 독감 등을 주고받으며 사이좋게 아팠다. 1년 중 아픈 날이 더 많았던, 일상처럼 병원을 가던 날들이었다.           



몸이 아프자 마음이 아팠다. 변해버린 몸, 스스로 정의하고 믿었던 모습이 무참하게 깨진 순간들. 엄마로서 발견한 나의 새로운 모습은 내가 기대한 모습이 아니었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는 대신 운동을 하기로 했다. 선생님의 권유였을 것이다. 운동할 기분이 결코 아니었지만, 운동복을 입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헬스장에 등록하고 운동을 강제하면서 조금씩 활기를 찾았다. 운동은 시든 몸과 마음에 주는 수분이자 영양분이었다. 그때 확신했다.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것을. 운동할 기분이 아니지만 우선 운동복을 입고 러닝머신에 몸을 맡기고 아령을 들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기분은 조금씩 반전된다. 운동을 하면서 운동할 기분을 갖게 된다.      



캐나다 작가 조이스 캐럴 오츠가 말했다. ‘기분에 끌려다니지 마세요. 어떤 면에서 글쓰기가 기분을 창조하기도 하지요.’ 이 말은 운동에도 적용이 된다. 운동이 기분을 창조하기도 하지요. 기분이 나든 아니든 우선 시작하면 없던 기분이 생겨난다. 이건 마치 웃을 일이 있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까 웃을 일이 생기는 것과 비슷하다. ‘웃으면 복이 와요’ 라는 말이 의심스럽더라도 일단 웃어본다. 무슨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운동할 기분과 쓰는 기분은 닮았다. 운동할 기분은 드물게 찾아오고 글쓰기에 영감을 주는 ‘그분’ 역시도 흔하게 등장하지 않는다. 기분 좋게 자고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고 머릿속이 깨끗해지면 무엇인가 쓰고 싶어진다. 마음속에 수많은 말이 차오르고 혼란스러웠던 생각이 갈피를 잡으면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그럴 때는 글쓰기에 속도가 붙지만 어떤 때는 한 줄도 못 쓰고 노트북을 덮어버린다. 드물게 찾아오는 영감이라는 ‘그분’이 오거나 말거나 우선 노트북을 열고 쓰기 시작하면 어떤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기분과 행동을 분리하는 연습을 한다. 기분에 따라 행동하기에는 기분이 믿음직스럽지 않아서 행동을 앞세워 기분을 따라오게 하는 연습을. 운동과 쓰기. 전혀 달라 보이는 두 가지 일이 서로가 서로를 보충한다. 운동으로 활력을 채우고 그 에너지로 읽거나 쓴다. 쓰는 동안 긴장했던 몸을 운동으로 이완시킨다. 운동하는 삶과 쓰는 삶은 분리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조이스 캐럴 오츠의 말을 ‘조금 바꿔서’ 떠올린다.



 ‘기분에 끌려다니지 마세요. 어떤 면에서 글쓰기와 운동이 기분을 창조하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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