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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의 기록 Oct 05. 2022

위대한 마음이란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가 1928년 처음 발간되었을 때 소설은 전기류로 분류되었다. 제목이 『올랜도: 전기 Orlando: A biography』 인 까닭이었다. 하나의 농담 같은 일은 울프의 전략이기도 했다. 실제로 울프는 『올랜도』를 기분전환 삼아 썼고 과장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정신의 이완은 울프에게 상상력의 날개를 달아주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이 바뀌는, 300년을 사는 인물, 올랜도. 등장인물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환상소설이지만 환상은 실험을 위한 장치이자 도구이다. 한 인물의 정체성과 삶을 보여주기 위한 실험. 자아와 정체성은 시대와 성별에 어떤 영향을 받으며 혹은 받지 않는지. 올랜도를 과연 누구라고 말할 수 있으며 올랜도는 어떻게 올랜도 자신에 이르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적 소설이다.      



소설은 올랜도의 출생부터가 아니라 열여섯 살 올랜도부터 시작한다. 시대는 16세기. 발그레한 뺨이 복숭아처럼 솜털에 덮여 있는 아름다운 귀족 소년 올랜도. 그는 여왕의 총애를 받아 토지와 저택을 양도받는다. 여왕이 병들어 세상을 떠나고 유례없는 한파가 닥친 어느 날, 올랜도는 러시아 대사를 따라 영국에 온 샤샤 공주와 강렬한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사랑의 정열은 올랜도 혼자만의 것이었고 샤샤에게 배신당한 충격의 여파로 올랜도는 깊은 잠에 빠진다. 혼수상태의 긴 잠에서 며칠을 보낸 올랜도는 잠에서 깨어나 고독을 벗 삼아 시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다. 귀족들의 눈 밖에 나 궁정에서 추방되었기에 올랜도는 철저하게 고독에 빠질 수 있었다. 이때 만난 시인 닉 그린에게 시를 보여 주지만 그에게 조롱받고 난 후 올랜도는 인간관계에 환멸을 느낀다. 무명의 안락에서 그는 말한다. ‘오로지 내가 즐겁게 쓸 수 있는 것을 쓰겠어.’           



외교관이 되어 가게 된 콘스탄티노플에서도 올랜도는 계속 시에 관한 원고를 품고 있다. 그곳에서 폭동을 목격한 올랜도는 정치적 압박으로 다시 깊은 잠에 빠진다. 7일 동안 죽은 듯이 긴 잠을 잔 올랜도는 놀랍게도 여자의 몸이 되어 눈을 뜬다. ‘성이 달라짐으로써 미래가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정체성이 바뀌는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올랜도』, 열린 책들, 144쪽) 여자 올랜도는 산에서 집시들과 함께 생활하며 드넓은 자연을 경험하면서 자신이 자부심을 느꼈던 365개의 침실이 있는 저택과 5백 년 된 가문의 전통이 집시들의 2천 년 넘게 이어온 혈통에 비해 보잘것없음을 알게 된다. 집시들을 떠나 영국으로 돌아온 올랜도는 이제 본격적으로 여자라는 성을 의식하고 자신의 손은 칼을 잡는 것이 아니라 숄이 흘러내리지 않게 쓰인다는 걸 인식한다. 한편으로는 자신을 저버렸던 샤샤 공주의 마음을 보다 이해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미 남성으로서의 경험이 있는 여성 올랜도는 보다 확대된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양성성에 대한 긍정은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 잘 나타난다. 위대한 마음이란 양성적이다. 여성 남성 이라는 이분법의 경계를 허물고 인간은 남성적 여성이거나 여성적 남자여야 한다고 말한다. 남성이더라도 여성적인 부분을 사용하고 여성이더라도 남성적인 부분을 사용할 때, 마음은 온전히 풍부해지고 제 기능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울프의 생각이다. 그러므로 여성 남성 모두 공존하는 올랜도는 울프가 생각한 양성성을 구현한 인물. ‘옷이 우리를 입는 것이지, 우리가 옷을 입는 게 아니다.’라는 말은 옷입기가 얼마나 세계관에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바지와 스커트를 번갈아 입었던 올랜도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양쪽 세계관을 경험했고 의심할 여지없이 인생 경험을 풍부하게 만들어주었다. 당시, 여성이 입던 크레놀린이라는 불리는 스커는 도저히 도저히 혼자서는 입고 벗을 수 없는 매우 어려운 옷이었다고 한다. ‘코르셋을 하고 끈을 졸라매고 몸을 씻고, 분을 바르고 실크 옷을 벗고 레이스를 벗고’…(163쪽) 경험은 인식을 확장한다.  



많은 변화와 함께 찾아온 19세기 시대정신은 올랜도로 하여금 결혼에 대한 생각을 품게 했고 자신을 옥죄는 갑갑한 옷(크레놀린)에 억눌려 기대고 싶은 누군가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때마침 나타난 말을 탄 남자, 셸머다인. 두 사람은 보자마자 곧바로 사랑에 빠진다. 당신은 여자군요, 셸 ! 당신은 남자군요, 올랜도 ! 서로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성)을 발견하며 서로에게 신속하게 공감하면서 결혼에 이른다. 이후 아들을 낳은 올랜도는 여자로 바뀐 후 박탈 당했던 저택 소유권을 안정적으로 양도받고 300년 동안 쓴 것이나 다름없는 시집을 출간한다. 시집의 제목은 <참나무>. 올랜도에게 참나무는 단단한 뿌리이자 대지의 등뼈, 기댈 수 있는 곳이다. 소설이 시작하는 장소이자 끝나는 장소에 있는 참나무. 참나무의 모습은 변했지만 1588년경부터 1928년까지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변하지 않았다. 올랜도의 나이 서른여섯. 올랜도의 현재이자 소설의 마지막이다.       


    

참나무에서 1600년  열여섯 올랜도

          


참나무에서 1928년, 서른 여섯, 300년이 지나도 영원한 젊음을 간직한 올랜도

          




올랜도의 삶은 파란만장하다.  나이로 따지면 20여 년간의 시간이지만 올랜도가 살아낸 시간 범위는 엘리자베스 시대 1600년대부터 1928년까지 300년에 이른다. 이러한 시간의 불일치를 어떻게 해명하고 이해해야 할까. 마음에 대해 지대한 관심이 있었던, 마음 탐구자 울프에게 한 사람의 전기를 기록하는 일이란 연대기적 업적이나 경험의 나열이 아니라 그 사람이 겪는 마음의 연대기를 기록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한 사람의 인생이 단순히 물리적 시간만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시간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울프는 보여주고 싶었다. '시계의 시간과 마음의 시간이 희한하게도 일치하지 않는 사실에 대해서는 보다 많이 알려져야 하고 더욱 깊이 연구할 만하다.' (102쪽)고 말하지 않았던가.       



시공간을 초월해 문학작품에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한 사람의 마음 안에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기 때문이 아닐까.  ‘스스로 서른여섯 살이라고 말하지만 수백 살이 된 사람들도 있다. 인간의 삶이 진실로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가는, 늘 논쟁거리이다. 시간을 재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315쪽) 소설을 이끌어가는 화자의(울프) 목소리는 사람의 인생을 기술하는 어려움을 고백한다. ‘인생의 길이를 측정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로 인생은 무척 길면서도 한편으로는 순식간이니까. 시간을 재는 것은 어렵고 시계의 시간과 마음의 시간은 따로 존재하기 때문에 동시에 살펴야 올바로 기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마음속에 서로 다른 시간대가 동시에 재깍거리고 있다면, 인간의 영혼에는 이 시간대나 다른 시간대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수없이 존재하지 않을까?’ 300년을 사는 올랜도에게는 여러 자아가 있다. 고독을 사랑하는 올랜도, 향락에 빠져 문란한 올랜도, 귀족이면서 신분이 낮은 자와 어울리는 올랜도, 시에 대한 열정을 지닌 올랜도, ‘울울함, 나태 열정, 고독을 즐기는 기질이 뒤섞인’ 올랜도. 남성이자 여성인 올랜도. 모두 올랜도의 자아이며 다양한 내면이다.           



‘인생아, 인생아, 그대는 무엇인가?’ 소설에서 단 하나의 질문을 꼽으라면 이것이다. 인생에서 변하는 것들과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올랜도의 인생은 구름처럼 흩어지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과정이었다. 행복에 대한 환상, 사랑에 대한 환상, 명성에 대한 환상, 시와 시인에 대한 환상... 모든 환상이 허물어진 끝에는 무엇이 있었나. 수 많은 자아에서 단일한, 진정한 자아에 이른 올랜도는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된다. 그것이 올랜도가 인생에서 찾던 본질이요 진실이었다.           





영화와 문학 사이           



영화에서 배우 틸다 스윈튼이 올랜도가 된다. 179센치의 장신 틸다 스윈튼의 신비로운 얼굴은 남자 올랜도와 여자 올랜도를 자연스럽게 소화한다. 틸다 스위튼이 아닌 올랜도를 상상할 수 없다. 한마디로 대체 불가. (틸다 스윈튼은 『올랜도』를 읽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책은 나의 인생과 미래가 상호 작용하는 모습을 담은 환각적인 전기라는 생각이 든다.’)          


울프가 시간을 운용하는 방식. 『댈러웨이 부인』이 하루 동안에 펼쳐지는 일을 담고 있다면 올랜도는 300년의 시간을 아우른다. 시간 범위는 다르지만 연속적 시간이 아니라 분절된 시간이라는 점에서 같다. 혼수상태의 깊은 잠은 시대를 건너뛰는 장면을 전환하는 역할을 한다.  하나의 죽음이며 새로운 탄생을 예고하는 장치다.

     

무엇보다 어떤 의미심장한 일이 일어날 때마다 틸다 스윈튼이 카메라 정면을 응시한다. 울프가 소설 속에서  독자를 ‘우리는’으로 호명하며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듯이, 틸다 스윈튼 역시 관객을 바라보며 올랜도의 세계로 초대한다.  





샐리 포터 감독의 《올랜도》(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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