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밤 Sep 22. 2020

오래된 아파트에 산다는 것

이사를 온 지 벌써 한 달이 되어간다.


이 집의 단점이라면 불편한 점이 많은 구식 아파트 단지라는 것인데, 모순되지만 장점 또한 세월이 쌓인 아파트 단지가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이다. 아무렇게나 기대어 있는 녹색의 플라스틱 빗자루, 녹슨 자전거들, 정돈된 분리수거장 대신 주차장 한켠에 비를 맞으며 쌓여 있는 세간살이들. 어수선하거나 낡았다고 느껴질 법한 것들이 익숙하고 정겹다.


복도식 아파트의 풍경

옆집 노부부 댁 앞 복도에는 시래기도 (화분에 심겨 있는 것 같지는 않은) 대파도, 건조 중인 나물바구니도, 가지런히 벗어두고 들어가신 등산화도 왕왕 놓여 있다. 아마도 수납이 부족한 탓일 테지만, 대파가 있고 시래기가 있고 널어놓은 나물 더미가 있는 풍경이 나는 싫지 않다.


얼마 전에는 이 좁은 집 부엌에서 얼마나 많은 김장을 하셨는지, 커다란 김치통을 각 1통씩 안고 돌아가시는 그댁 친지 분들과 한 엘리베이터에 탈 일이 있었다. 이 자그마한 집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이 걸어나오는 풍경은 마치, 경차 안에 구겨져 있던 사람들이 한 명씩 빠져 나오던 옛날 예능의 한 장면 같았다.


그 날 이후 옆집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가짐은 더욱 공손해졌다. 이렇게 작은 부엌에서도 저렇게 많은 사람들을 겨우내 먹일 김치를 담글 수 있구나. 대파나 등산화쯤이야 얼마든지 쫓겨나 있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한줄평.
이 집의 단점: 집이 오래되었다.
이 집의 좋은 점: 집이 오래되었다.


이전 14화 내 집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