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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 Sep 25. 2020

우리는 교대근무 중입니다

유치원 선생님들을 응원하며

유치원 선생님들을 응원하며

헬스장에서 나오는 길에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하나 주웠다. 시럽을 바른 것처럼 말갛고 노란 빛을 띄었던 이파리가,ㅡ깨끗하게 한답시고 소독기에 넣었다 빼었더니ㅡ순식간에 십 년은 늙어버린 것처럼 거칠한 갈색이 되어 버렸다. 아이가 정든 유치원을 마지막으로 등원하는 날이었다.

2019, 안녕히

무르익은 가을에 갑작스러운 작별이라니. 이사와 전학을 이야기하던 2학기 상담 날, 선생님도 울고 나도 울고. 경음악이 흐르고 있던 상담실은 눈물 바다가 되었다.

우리는 그리 자주, 많은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지만 아이에 대해, 이 아이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며 어떤 사고를 주로 일으키는지. 가끔 만나며 멀리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보다도 더, 많은 것을 파악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걔가 그래요. 김치는 잘 먹는데 튀긴 건 입에도 안 대죠?” “맞아요. 내성적인 것 같으면서도 관심받고 싶어해요."

누가 먼저가 되었든 운을 띄우는 동시에 맞아 맞아, 맞장구를 치며 대화가 척척 진행되던 사이였다. 말하자면 선생님은 오전에, 나는 주로 오후에 근무했을 뿐, 우리 사이에는 직장 동료와도 같은 전우애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전한 가을 낙엽은 지금쯤 어떻게 변해 있을까. 편지봉투 안에서 쪼그라져 부스러진 후일까? 낙엽이야 아무래도. 괜찮을 것이다.


대책 없이 까부는, 스무 명의 아이들을 돌보는 매일의 수고. 이 나라의 공무원이 아닐지라도, 생활기록부라는 칼자루를 든 서슬퍼런 갑이 아닐지라도,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매일같이 샘솟고 우러나는 것이 아닐지라도, 아이들을 존중하며 성실히 일하시는 모든 유치원 선생님들을 마음 깊이 존경한다.


나도 실천하지 못할 친절과 희생을 기대하기보다는 내가 종일 가르치고 돌보지 못하는 아이를 먹이고, 가르치고, 돌봐 주신 것에 대한 감사가 더 큰 학부형으로써. 그저 내가 전한 마음이 선생님의 피곤한 일상을 조금이라도, 응원할 수 있었기를 바란다.


내가 담근 귤청.


*2019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돌봄부터 방역까지, 어려운 상황에도 아이들을 위해

 애써 주시는 모든 선생님들, 힘내세요,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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