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깊고 아득한 심연에 대하여
언니 저예요. 점심시간이 지났을 시간이네요. 오늘은 운동을 하셨을 지 식사를 하셨을 지 궁금해하면서, 운동을 하셨더라도 식사는 하셨기를 바래보면서.
요즘 바쁘시지요? 일 말이에요. 가끔 일이 바쁘지 않다고 하실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도 언니는 늘, 항상, 바쁘실 거라고 짐작하곤 했어요. 몸도 마음도 정신없이 바쁜 날도, 몸이 아니면 마음이 힘든 날, 마음이 괜찮으면 몸이 지치는 날도 있겠죠. 직장과 아들 둘이 언니를 기다리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도착시간을 체크하는데. 몸은 하나 역할은 서너 개. 때로 엄마라는 자리가 너무 벅차 잠시 피해 있고 싶은 순간도 있지 않을까. 저는 짐작만 해요.
언니. 이사를 오면서 언니랑 멀어지게 되었을 때, 저는 많이 서운하지 않았었어요. 물론 무척 아쉬웠었고, 동네도 언니 얼굴도 며칠만에 금세 그리워졌지만 저는 자신이 있었나봐요. 무슨 자신감이었을까요? 집은 멀어지더라도 마음은 쉬이 멀어지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고, 한편으로 저희 사이에 점차 극복할 수 없는 간극이 생기리라는 걸 어렴풋이 예상하면서도, 그렇더라도, 제 마음은 괜찮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어요. 저도 어른이니까요. 만나고 헤어지고 멀어지고,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니까. 그렇게 되더라도 괜찮을 거다. 나누었던 마음과 좋았던 기억들로 충분하리라.
그런데 역시 저는 쿨한 사람은 평생 못 되나 봐요. 이래서 연애도 잘 못했나 봐요. 충분하지도 않고, 괜찮지도 않고 그래요. 정해놓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출근하셨어요? 퇴근하셨어요? 점심 드셨어요? 그렇게 여쭤보고 싶고 무슨 이야기든 소식이든 듣고 싶어요. 답이 없으면 오해를 해요. 언니는 더 이상 나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다. 언니는 너무 바쁠 것이다. 아니다. 언니는 나를 잊었다. 아니다. 맞다.. 이런 생각들이 오갈 만큼 제 일상은 언니에 비해 너무 편하고 한가로운가봐요.
언니가 '태윤이 어머님'이셨을 때, 또 제가 '주원이 엄마' 였을 때 우리는 할 이야기가 참 많았어요. 아가였던 태의가 원인 모를 설사를 하고 침독이 올랐을 때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한 대화는 진지하고 끝을 몰랐죠. 같은 아파트의 주민이었을 때는 주말에 가볼만한 곳이라든지 인근에 새로 생긴 가게 같은 것들이 훌륭한 이야깃거리가 되어줬어요.
이 년 전 언니가 복직하신 뒤 저는 언니가 보고싶을 때, 언니와 이야기하고 싶어질 때 이제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냥 늘 출근은 하셨어요? 점심은 드셨어요? 하는 거예요.
언니는 빵을 참 좋아하셨어요. 저는 아직도 빵보다는 밥을 먹어야 편해요. 그래도 언니를 위해서 빵을 만드는 게 좋았어요. 정확하게는 언니가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은, 저를 위한 빵이었죠. 아무튼 표현에 서투른 저에게 빵만큼 좋은 구실도 애정표현도 없었을 거예요. 빵 만들었어요. 드셔보세요. 그 외에 무슨 말도 필요하지 않았거든요.
이사를 온 뒤 언니가 보고싶어질 때, 열심히 빵을 만들었어요. 코로나 사태가 터져 만날 수 없었던 봄에도, 언젠가 점심시간에 언니를 만나러 갈 날을 위해 언니가 좋아하는 빵을 찾아 연구했어요. 연습 삼아 만들어 놓고 다 먹지 못해 쌓아둘 때도 많았어요. 마음도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그때 전하지 못한 빵이 쌓여간 것처럼, 마음도요. 어쩌면 저는 출근 하셨어요? 점심 드셨어요? 같은 무심한 말들 대신 좀 더 솔직한 마음을 표현했어야 했었는지 모르겠어요. 보고 싶어요.라고.
한 동네,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 친구 엄마로 서로 많이 닮아있던 일상을 살았던 때가 그리워요. 묻지 않아도 서로의 하루 일과를 익히 알고 있었던 그때가. 인스타그램의 좋아요 대신 아침 저녁으로 화장을 지운 서로의 맨얼굴을 만나던 그때가.
빵언니, 밥동생. 서로 다른 것을 먹고 서로 많이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우리의 궤적이 언젠가 다시 겹쳐지는 날이 오기를, 바라요. 그때까지는 이렇게 물을 수밖에요. "언니, 출근 하셨어요? 점심은 드셨어요?"
사람의 일생을 그래프로 그린다면 아마 사람마다 다른 모양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아주 비슷한 모양의 사람과, 비슷한 길을 잘 걸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가 흔히 있는 일은 아니겠지요. 그래도 신기한 것은 너무 나란히 달리는 두 선은 절대 만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서로 많이 다르기에 겹칠 수 있는 선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떤 사람도 다른 이와 온전히 같은 시간을 살 수는 없습니다.
윤덕원, <두 계절> 앨범 소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