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들의 입맛은 정직하다. 바나나가 달지 않고 푸석거린다 싶으면 반나절 만에도 끝장이 났을 바나나 한 송이가 며칠이 지나도 플라스틱 모형처럼 그대로다. 지난 주 홈 마트에서 2500원에 세일할 때 산 바나나가 너무 싸고 맛도 좋아 다시 찾아갔는데 이번 주는 무려 3800원에 파는 데다가 맛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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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이 방치된 바나나에 검은 반점이 생겨나기 시작하면 껍질을 벗기고, 스텐레스 반찬통에 가지런히 뉘여 냉장고에 모셔둔다. 두어 개는 어제 찰토마토와 갈아 마시고 (의외의 꿀 조합이었다.) 오늘은 무려 잘 익은 아보카도가 있으니, 내가 사랑하는 바나나 아보카도 쉐이크를 만들기로 한다.
대충 부셔넣은 바나나, 아보카도에 우유 약간, 이유식 만들던 시절에 구입해 유통기한을 한참 지난 아가베 시럽이나(죽지않아!), 그보다는 안전할 꿀을 두어 번 둘러준 후 사정없이 갈아주면 주스 완성.
아아. 고독한 뒷방 늙은 바나나의 고귀한 환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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