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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 Sep 28. 2020

소설을 쓰고 싶다면

쓸만한 인생에서 쓸 만한 인생으로.

Q. 소설은 늘 삶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건가요?
A. 거의 언제나 그래요. 글을 쓰는 일은 학문이 아니에요. 물론 예외가 있지만, 내가 알고 존경하는 모든 작가들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삶에서, 또는 삶에서 알아낸 것들에서 이야기를 끌어냈어요. 예를 들어 위대한 대화는 꾸며내기가 매우 어려워요. 거의 모든 위대한 책에는 그 안에 실제 사람이 담겨 있답니다.

소설의 기술_<파리리뷰> 인터뷰, 106p 소설을 쓰고 싶다면, 제임스 설터 산문집 중에서. 마음산책.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다. 그런 내가 어느날 갑자기 '아비는 종이었다.' 로 시작하는 문장을 쓸 수는 없는 것이다. 아직은 경험하지 않은 일을 쓰는 것이 어려워, 내 인생을 요리조리 들여다보며 글로 쓸 만한 것이 있는지 찾는 편을 택한다.


이미 신물나게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나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다. 보이기에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일 테고 말이다. 아무튼 나는 개울에서 가재를 잡고 다슬기를 주우며 자라지 않았다. 다슬기는 작년에 홍천의 계곡에서 어떻게 생겼는지도 처음 보았다.

나무들이 있는 길을 좋아하지만, 이 나무는 무슨 나무이며 어떤 꽃이 언제 피는지는 잘 모른다. 궁금하면 가끔 검색해 보는 정도이다. 오늘만 해도 은행이 열리는 나무는 암나무라는 남편의 말에 무슨, 나무에 암수가 있느냐며 코웃음을 쳤다가 혼쭐이 났다.

명색이 주부가 되고서도 꽤 오랫동안 사시사철 김치찌개, 된장찌개만 먹고 사는 줄 알았었다. 봄에는 주꾸미와 두릅, 여름이면 오이지와 노각무침. 새로운 계절이 오면 어떤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몸으로 익히고 있는 어른들을 보면 존경이 우러날 따름이다.


나는 아파트에서 태어났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벌써 흥미롭지가 않다. 드라마에서  쌍문동의 정다운 골목길이 아닌 것이다. 신시가지 아파트에는 언제나 예쁘고 깍쟁이같은 친구들이 널려 있었다.

학창 시절도 지극히 평범했다. 기억이 남아있는 시간부터는 한 번도 살던 동네를 떠나지 않았고 그래서 그 흔한 '전학' 한 번 해보지 못했다. 느리고 둔한 탓에 따돌림을 꽤 오랫동안 당하기는 했지만 평생 이를 갈며 기억해 둘 정도는 아니어서 그때에는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는지도 이미 다 잊었고 나를 괴롭혔던 아이의 이름이나 인상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물론 어느 여름에는 간첩이 동해안으로 침투하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해가 있었고 성수대교가 붕괴했다는 소식을 티비로 보았으며 영원히 살 수 있을 것 같았던 김일성이 죽고 영영 화해하지 못할 줄 알았던 일본과도 문화 개방을 이루었지만, 그런 것들이 내 삶을 온통 흔들어 놓는 계기가 되지는 않았다. 슬픈 소식에 슬퍼하고 믿을 수 없는 일들에 놀라기도 하면서, 나는 여전히 평화로운 일상을 보냈다.


97년. 평범했던 수많은 가정을 덮친 금융위기에서도 우리 집은 살아남았다. 해안가로 쓰나미가 몰려올 때에는 먼 바다에 떠 있는 배가 오히려 안전하다 했던가. 한국에 계셨더라면 문을 닫아버린 공장과 함께, 다른 모든 동료들이 그러했듯 정리해고를 당했을 아빠는 불과 일 년 전 떠나 있던 중국의 현장에서 회사원이라는 위태한 신분을 간신히 유지할 수 있었다. 우리는 운이 좋았다.

덕분에 아빠는 정년까지 성실히 일했고, 그 때까지만 해도 형편이 빠듯하니 집을 나와 고생하는 워킹맘일 뿐이었던 엄마도 어느새 아줌마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알뜰한 엄마는 자신의 월급을 아껴 생활비에 넘치지 않게 사용했고 아빠의 월급은 고스란히 저축했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백화점에 다녀온 친구들이 자랑하던 '스포츠 리플레이'를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었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소풍날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Mf!나 Fubu로고가 새겨진 옷을 입고 학교에 갈 수 있었고 더 이상 심한 따돌림을 당하지 않았다.


등록금 걱정 없이 대학생활을 했고 어학연수 열풍에 발맞추어 외국에도 나가 살았다. 4년 간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꾸준히 이어가기는 했지만 용돈 벌이 정도에 불과했다. 엄마 아빠가 며느리나 사위를 앞에 두고 겸손인 척, 약간의 자랑스러움을 섞어 하시는 그 말씀처럼, 우리 남매는 부족함 없이 자랐고, 무엇이든 받는 것에 익숙한 철부지인 채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는 일기장에조차 굳이 쓰지 않아도 된다. 이런 이야기를 공유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고(故)박완서 선생님을 존경한다. 그녀는 타고난, 그리고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선생님은 결혼을 한 뒤 무려 오남매를 키우고 시부모님을 모시며 살림하는 주부로만 살았다 한다. 그러다 막내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 마흔이 되던 그 해에 처음 써낸 소설로 등단을 했다.


평생 주부와 엄마라는, 명함 한 장 파지 못할 직업에 만족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우울해 할 때면 남편은 네가 그렇게 좋아하고 존경하는 박완서 선생님은 나이 마흔에 글쓰기를 시작하셨지 않느냐는 위로도 되지 않는 말을 했다. 그건 박완서 선생님이니까 그렇지. 선생님은 본투비 작가로 태어나셨어. 힐난하면서도 선생님을 생각하며 나의 시간도, 아직 모두 끝난 것은 아니리라고 희망을 붙들었다.


하지만 선생님에게는 가슴 속에 펄펄 끓고 있는 불 같은 지난 세월들이 있었다. 선생님은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의 비극을 온 몸으로 겪어낸 세대였다. '엄마의 말뚝'은 분명 허구의 소설이지만, 그건 절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쩌면 나는 그 아픈 이야기의 화자가 그 시절의 선생님이리라 상상하며 책을 읽었고, 그래서 더 뜨겁게 몰입할 수 있었다.


몇 년 전 타계한 제임스 설터도, 헤밍웨이도 마찬가지였다. 두 작가 모두 전쟁의 최전선에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고,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쓸 수 없었노라는 같은 고백을 남겼다. 취재나 인터뷰, 책과 자료를 찾아보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결국 모든 글은 나라는 사람에서 시작되고 나의 삶을 반영하게 되는 것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나는, 나는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다섯 살 위인 남편은 가끔 이런 저런 옛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변은 논밭 뿐이었던 백마의 주택이 일산 신도시 부지로 수용당하며 두 번이나 초등학교를 바꾸어 전학을 다녀야 했던 이야기, 개구리를 잡으며 산천을 누비던 소년이 하루아침에 신도시의 어린이가 되었더라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어린 시절의 이사와 전학이 그 짧은 인생의 얼마나 큰 시련이자 변곡점이었는지를 강조하는 것도 매번 잊지 않는다.


김연수 작가의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에는 두 살배기 딸을 자전거 앞자리에 태우고 논두렁을 달려가던 작가가 문득 어린 시절 아버지와 자전거에 함께 탔던 추억을 떠올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언젠가 나는 아름다운 묘사가 이어지는 문장들에 반해 접어두었던 페이지를 남편에게 읽어 준 적이 있었고, 그 날 남편은 백마의 논밭을 아버지의 자전거에 앉아 달리던 순간을 처음으로 기억해냈다. 지금도 남편은 그 때 내가 들려주었던 그 이야기의 작가가 누구인지 가끔 묻는다. 작가의 이야기와 독자의 삶이 상동하는 그 순간, 글을 쓴 이도 읽는 사람도 한 권의 책으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리라.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며 나는 존재감 없는 아이였던 어린 시절에 대하여, 이제는 부끄럽지 않은 어떤 아픔에 대해서 적었다. 그토록 숨기고 싶었고, 앞으로도 평생을 안고 가야 할 신체적 불편이 글을 쓰고자 하는 오늘의 나에게 이토록 쓸만한 이야기거리가 되어주었다니. 난생 처음 고맙기까지 했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꿈을 이루었다! 는 이야기 대신, 물심양면으로 베풀어 준 모든 이의 응원과 격려, 못난 딸을 대신했던 부모님의 희생을 주렁주렁 매달고도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채 지나버린 나의 이십 대에 대하여도 썼다.

밥을 하고 빨래를 했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썼고 내 아이에 대해서도 썼고 요즘 둘만 모이면 이야기한다는 부동산에 대해서도 겪은 만큼, 아는 대로 썼다. 자, 이제 무엇에 대해서 쓸까? 막막해지는 순간이다. 원점으로 돌아가 묻는다. 내가 살아온 삶이 과연 글로 풀어갈 가치가 있는 것일까?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싶다고 적었던 서문의 당찬 각오에 허무와 회의가 찾아오는 순간이다.


글로 '쓸' 만한 인생이 되기 위해 나는 더 쓸만한 인생을 살았어야 했던 모양이다. 이래서야 내가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소설가가 되겠다는 맹랑한 꿈을, 언젠가는 이룰 수 있을까? 하나 뿐인 꿈이 너무나 높고 아득하게 느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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