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도 갔다. 물색없이 많은 비가 내려 애호박 하나 값이 사천 원을 오르내리던 이상한 여름이.
지긋지긋한 여름. 그만 가버려라, 썩 물러가라 하다가도 막상 더위가 맥을 못 추기 시작하면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심한 태풍이 불어닥쳤던 작년에도, 폭염이 꽤 오래 지속되었던 재작년에도, 매년 그랬다.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올 테고, 가을은 너무 짧아 곧 겨울이 오리라는 걸, 그렇게 한 해가 또 저물어 가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실감하는 순간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일 년에는 분명 사계절이 있는데도, 지나고 나면 온통 여름밖에 없었던 것 같은 기분이다. 내게 있어 과거의 장면들은 언제나 그 해 여름의 기억들로 채워져 있다.
남편이 물었다. "당신 이름은 어쩌다 여름밤이야?" 그리고 덧붙였다. "별론데." 나는 속으로 '그까짓 거, 얼마나 대단해야 하기에?' 싶으면서도 왜 그렇게 지었느냐는 물음에는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 필명을 '여름밤'으로 정한 건 브런치 작가 심사를 위해 무엇이든 적어넣어야 하는 그 순간이 우연히도 여름이었고, 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인생에서 특별했던 일들은 대개 여름에, 그리고 여름의 밤중에 일어났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 뭐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엄마가 되고 보니, 이 지당한 명언은 어쩌면 수 천년 전부터 아이 엄마들이 체득하여 구전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당최 아이가 곯아떨어지기 전까지는 내 세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무더웠던 여름의 밤, 브런치 연재를 시작한 것도 무료했던 나의 인생을 찾아온 특별하고도 소중한 사건이었다.
부지런히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내 영혼은 아직 청춘을 그리워한다. 뜨거웠던, 그래서 보내기 싫었던 그 여름을 그리워한다. '여름'이라는 계절의 기분과 '밤' 이 허락하는 자유가 합쳐지는 순간, 별 볼일 없는 아줌마의 인생에도 여전히 뭔가 설레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