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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 Oct 07. 2020

Put your records on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의 여름. 열일곱,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나의 여름도 뜨거워지고 있었다. 인터넷 방송을 시작한 것이다.

물론 요즘 말하는 아프리카 bj로 데뷔했다거나 유명 유투버로 활동했다거나, 그런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스톤라디오'라는 이름의 스트리밍 사이트에, 직접 선곡한 음악과 짤막한 글을 적을 수 있는 라디오 방송에 푹 빠져 있었다.




2000년. 인류가 쫄딱 멸망하리라던 밀레니엄의 아침이 밝았을 때만 해도 우리의 견고한 일상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김이 샐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후에 일어난 변화들을 이제와 생각해 보면 정말로 세상은 달라졌다. 그것도 아주 많이.


닷컴의 시대가 열렸다. 포털의 홍수였다. 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집은 없어도 이메일 주소쯤은 하나씩 가지게 되었다. 하나가 아니라 서너 개씩은 가지고 있었다.

읽지 않은 청구서는 쌓여가고 간간히 업무 메일을 확인할 뿐, 요즘의 사람들은 이메일로 사적인 '편지'를 주고받지 않는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편지를 주고받기 위한 용도로 이메일을 사용했다. 매일 장문의 아침 편지를 써서 보내는 어른들도 있었다.

 

긴 줄이 늘어서던 공중전화 앞은 개인 휴대폰의 보급으로 파리를 날리기 시작했다. IMF를 지나 치킨 가게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사이 동네마다 한 둘 쯤은 기본이었던 음반 가게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지직거리는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듣던 나는 워크맨을 선물받아 뛸 듯이 기뻐하던 것도 잠시, 곧 오빠의 CD플레이어를 물려 받았고 그 CD 플레이어가 채 구형이 되기도 전에 MP3플레이어를 샀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우리는 그 세찬 급류를 유유히 타고 넘었던 세대였다.


밤이면 밤마다 안테나를 길게 뺀 카세트 플레이어를 껴안고 잠들던, 라디오 키드였던 나 역시 21세기의 흐름에 발맞춰 인터넷 음악방송을 시작한 것이었다.




256회 방송, 스톤라디오는 2009년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듣는 방송에서 직접 만들고 들려주는 방송으로. 그것이 그 작은 인터넷 방송국이 사람들을 끌어들인 마력이었다. 음악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댓글을 달며 그 의미에 대하여 소통할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 그것만은 분명했다. 사람들은 모두, 이해받고 싶어했다. 아주 절실히.

하루 중 어떤 시간, 어떤 상황, 어떤 기분 속에서 혼자 듣던 음악을 통해 우리는 소통할 수 있었다. 시간과 공간, 닿을 수 없는 존재의 아득한 거리를 넘어 공감하고, 공감받을 수 있었다.




2020년. 손가락 클릭 몇 번이면 무궁무진한 세상이 펼쳐진다. 2020년의 세상은 3D의 세상이다. 코 앞에서 요리사가 레시피를 가르쳐 주고, 집 안에서도 요가 선생님이 알려주는 동작을 따라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내 집, 내 방, 내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랜선에 접속하기까지의 여백조차 사라져 버렸다. 지하철에서도 거리에서도,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손에 든 채 5G의 촘촘한 데이터망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외롭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계속해서 누군가와 이어져 있기를 원한다. 그건 어쩌면 가까운 사람들과 어울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것만으로는 해갈되지 않는 갈증이다. 무한의 인파 속에서 우리는 밀실한 내 방 안을 그리워한다. 방 안에서는 여기 아닌 어딘가, 먼 곳에 존재하는 다른 영혼을 그리워한다.


우리는, 흩어지고 사라져버리는 대신 세상에 의미 있는 존재로 남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래서 누군가는 글을 쓰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어떤 이는 음악을 만들어 들려준다. 어떤 방식이든 상관없지만, 그 안에는 '자신의 이야기'가 있어야 하리라. 모든 창작은 그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고유한 이야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원한다면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소통한다. 자기만의 방 안에서,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과, 이야기를 통해서. 그리고 그들은 비로소 이해받는다. 위대한 것이든 사소한 것이든, 무엇이든.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 그것이야말로 꿈꾸던 모든 것이 가능해진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꿈 꿀 수 있는 영혼이 남아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외로운 사람들. 나는 묻는다. "당신은요?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Put your record on, Tell me your favorite song.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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