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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니 Oct 13. 2019

허무맹랑하고 화려한 꿈에 대한 단상


토요일 아침, 주말을 맞아 내려온 고향집 부엌은 딸들이 좋아하는 갈비찜을 만드는 아빠의 움직임으로 분주했다. 아빠의 갈비찜을 놓고 언니와 둘러앉아 점심을 먹던 중 올해 고3인 사촌동생이 대학교 수시시험 1차에 합격했다는 이야기가 화두로 던져졌다.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사촌동생은 올해 하반기부터 방송 관련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학원에서 대학교 시험과 면접을 준비해왔다. 때문에 주말마다 서울에 있는 나의 오피스텔에서 묵곤 했는데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동생은 방 한켠 1인용 요 위에 작은 테이블을 펼치고 앉아 나를 맞아주었고 내가 잠들고 난 후에도 드라마를 보고 분석하는 공부를 계속했다. 잠도 한창 많을 나이에 새벽까지 공부하고 있는 게 안쓰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동생이 좋아하는 우유도 사다 놓고 고구마도 삶아 놓으며 나름의 뒷바라지를 했다. 그래서인지 동생의 합격 소식에 괜히 뿌듯해졌다.


"난 몰랐는데, 정현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드라마 작가가 꿈이었대. 남들에 비해 뒤늦게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지만 자기가 꽤 소질이 있는 것 같다고 좋아하던데."

자신의 글솜씨가 학원 아이들보다 월등한 것 같다며 뿌듯해하던 동생의 모습이 귀여워서 장난스럽게 말했고 내 말에 언니가 대답했다.


"정현이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필드에 나가서 그 일을 하게 되면 생각했던 것보다 별로라는 걸 깨달을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그냥 일반적인 회사에 다니게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지금 그 꿈에 부푼 모습이 부럽더라. 대학교만 가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에 차 있는 모습이."

"그러게. 나는 언제부턴가 꿈이라는 걸 생각 안 해보고 산 것 같은데."




"너네도 어렸을 때 패션 디자이너로 뉴욕에 가겠다는 꿈이 있었잖아."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빠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가 어떻게 알고 있었지?'

그와 동시에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맞네... 그런 꿈이 있었지."

라는 머쓱한 멘트였다.





열다섯 살은 무엇이든지 꿈꿀 수 있을 것 같은 나이였다. 우리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 뉴욕에 가서 패션잡지 회사에서 일하자는 꿈이 있었다. 그렇다고 딱히 꿈을 이루기 위해 잡지를 매일 한 권씩 읽는다거나 스케치 공부를 한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말 그대로 '꿈'이었지만) 꽤 자주 그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 무렵 언니가 취미 삼아 쓰던 소설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우리는 뉴욕 시내를 활보하는 쌍둥이 자매였다. 닛산의 자동차를 타고 매일 빼곡한 다이어리를 훑으며 미팅을 하는... 소설 속 주인공의 나이 무려 스물네 살에 말이다.



그렇게 보면 열다섯 살의 눈에 스물네 살, 십 년 후의 모습이 얼마나 꿈꾸기 좋은 나이인지 알 수 있다. 어린 나는 미래의 멋진 모습을 상상할 때 떠오르는 그 나이, 스물네 살이 되고 싶었다. 스물한 살, 스물두 살...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어느덧 스물네 살이 되었을 때, 스물네 살은 열다섯 살이 꿈꾸던 모습과 같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물론 그때의 꿈과 같지 않음도 알았지만 말이다. 나는 빠르게 취업했고 다른 직업을 얻었으며 인간관계를 쌓고 사회의 구조에 적응해 가느라 '꿈'이라는 단어를 멀리 하고 살았다.


한창 강연 콘텐츠가 유행하던 몇 년 전 유명한 강사들이 무대로 나와 마무리 멘트로 꼭 날리던 말, "여러분의 꿈은 무엇인가요? 여러분, 꿈을 꾸셔야 해요!"라는 말은 "여러분, 하기 싫은 일 하지 말고 좋아하는 일 하세요!"라는 말만큼이나, 꿈이 없고 좋아하는 일이 뭔지 모르는 이들에겐 압박과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꿈'이라는 단어에 질리기도 했다.

"그놈의 '꿈', '좋아하는 일'. 이제는 그것도 스펙처럼 찾아야 하나? 그냥 나는 현재의 청춘에 충실할 건데?"

그런 생각으로 살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더니 어느새 이십 대의 후반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나에게 꿈에 대해 리마인드 해 준 일이 또 한 번 있었다. 얼마 전부터 꽤 친하게 지내게 된 친구와 양화대교를 건너며 이야기를 하던 중 친구는 문득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 꿈은 40년 뒤에 정말 유명한 패셔니스타 할아버지가 되는 거야. 핫핑크색 비니를 쓰고 흰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양쪽 팔에는 타투를 한 채 목공기계로 나무를 깎고 있는 거야. 의자를 만드는 일을 하는 거지. 가구 공방의 옆에는 작은 카페를 함께 운영할 거야. 그리고 종종 패션잡지에도 나올 거야. 실버 패셔니스타로."


머지않아 서른을 바라보는 친구의 입에서 나온 야심 찬 60살 플랜에 푸핫 웃으며 넘겼지만 신나게 그 이야기를 하던 친구의 모습은 계속 잔상으로 남았다. 자신의 꿈을 물었을 때 그렇게 신나게 스토리를 읊을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있을까 싶었다. 당장 나에게 누군가가 너의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요즘의 나는 다시 허무맹랑하고 화려한 꿈을 꾸고 싶다.


다섯 살 아이가 발레학원에는 다니지도 않고 앞으로 부모님이 보내줄 계획도 전혀 없을뿐더러 발레에 재능이라곤 전혀 없지만 '꿈 조사란'에 [발레리나]라고 써넣는 것처럼, 별이 좋고 우주영화를 좋아하는 아이가 [우주정거장 관리인]이라고 써넣는 것처럼, 시골의 작은 중학교에 다니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영화를 보고 [패션 디자이너로 뉴욕에 가는 것]이라고 써넣는 것처럼.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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