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을 기다렸던 건지 아니면 서른이 되는 게 싫었던 건지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순 없지만 어쨌든 올해로 서른이 되었다. 먼저 서른을 맞은 친구들에게 '서른이 된 기분이 어때?'라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별거 없어. 똑같아."였다.
대답을 들으면서 "그렇지? 그럴 것 같아."라고 했지만 사실 적어도 나라는 사람은 서른이 되는 변화를 그렇게 별거 없게 느끼지는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분주했던 20대 시절이 몇 권의 일기장 속에 고이 보관되는 것도, 다가온 서른이 내가 그려온 모습과 조금 다른 것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줄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서른을 맞은 연초에 고향에 내려갔다가 엄마와 싸우고선 침대에 얼굴을 묻고 흑흑 대고 있는 나를 보았을 때 다른 의미에서 그들의 말을 공감할 수 있었다. 정확히 이 방, 이 침대 위의 이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던 학창 시절의 나와 지금의 모습이 겹쳐 보이면서 '서른이 돼도 똑같네.'라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먼저 나이 듦을 경험해가고 있는 아빠에게 진지하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는 느낌을 받게 되면 그땐 너무 슬플 것 같은데 내가 그걸 극복할 수 있을까?" 고작 이십 대 중반에 갓 접어든 딸이 환갑을 향해 달려가는 아빠에게 했던 질문이었다.
아빠는 질문을 듣고 씩 웃었지만 결코 나의 고민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는 평소처럼, 진지하게 대답해주었다.
"그때가 되면 또 그때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생겨."
30대의 나는 60대의 아빠가 느끼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결코 알지 못하고 80대 노인이 어떤 즐거움을 갖고 살아가는지는 감히 상상도 못 하리라. 여기서 이야기하는 노인은 올해 88세가 되신 이어령 선생님이다. 얼마 전 그의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었다. 그의 지혜를 담은 마지막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싶었던 글쓴이는 '자신이 떠난 뒤 이 책을 출판하라'던 스승의 얘기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글을 모아 세상에 내보였다.
책의 프롤로그에 이런 부분이 있다.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서른을 맞은 내게 '슬픈 꿈을 꾸었느냐'라고 묻는다면 (서른이 된다고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나는 '아니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 꿈의 내용은 젊은 날의 한 때에 머무는 것.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고 누군가의 작은 호의에도 기쁘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발 앞에 펼쳐진 것만 같던 때. 싱그럽고 풀냄새가 나던 그때 말이다.
다시 한번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는 것이냐'라고 물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하겠다. 이 싱그러운 젊은 날에 영원히 머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두 나이를 먹고 늙어가고 약해지고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난다. 많은 것에 큰 감흥이 없어질 것이고 가능성을 손꼽아보게 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이가 들며 우리는 경험을 통해 지혜를 얻는다. 스물다섯의 딸이 세상의 중심에 서있음에도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앞서 슬퍼할 때 쉰을 넘긴 아빠는 지혜로운 문장을 남겨주었고, 쉰을 넘긴 제자가 스승의 마지막 인터뷰를 위해 찾아왔을 때 아흔을 바라보는 스승이 인생의 진리를 알려준 것처럼.
"스님을 찾아온 사람이 입으로는 '한 수 배우고 싶다'라고 하고는 한참을 제 얘기만 쏟아냈지. 듣고 있던 스님이 찻주전자를 들어 잔에 들이붓는 거야. 화들짝 놀라 '스님, 차가 넘칩니다.' 했더니 스님이 그랬어.
'맞네. 자네가 비우지 못하니 찻물이 넘치지. 나보고 인생을 가르쳐 달라고? 비워야 가르쳐주지. 네가 차있어서 말이 들어가질 못해.' 마음을 비워야 영혼이 들어갈 수 있다네."
"아! 마인드(마음)로만 채우고 살았는지, 영혼으로 채우고 살았는지 어떻게 압니까?"
"깨지고 나면 알겠지."
세월의 지혜는 저절로 습득되는 것이 아니다. 생체의 나이는 매해 공짜로 주어지지만 마음의 나이와 그에 따른 지혜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긴 시간 동안 세상은 많은 경험과 교훈을 가져다주고 그 속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배우고 익어가야 한다.
책장을 덮고, 50대를 바라보는 나에게 서른을 맞은 젊은 청년이 인생의 진리를 배우고 싶다고 찾아오는 때를 그려보았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한참을 고민을 들어준다. 마침내 미소를 지으며, 그러나 결코 그의 고민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마음으로 그의 찻잔에 차를 가득 채워주는 중년의 나는 그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게 될까 기대하면서.